팔찌가 끊어지고 나서야, 한번쯤 생각을 했다

툭, 끊어지던 순간

by 최자두

24년의 끝자락, 동지를 지나면 세상은 조금씩 다음 해의 기운을 예고한다.
나는 83년 돼지띠, 사람들은 말한다.
“삼재의 시작이래.”
“나는 삼재 끝났어.”
“난 삼재라 요즘 조심해야 해.”
그런 이야기가 오갈 때면,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곤 했다.


2025년, 을사년. 돼지띠에게 삼재라던 그 해에
오랜 지인이 해인사를 다녀오며 삼재팔찌를 선물해주었다.
그 팔찌는 나무 구슬로 엮여 있었고,
그 속에 삼재의 액운을 날려줄 듯한 붉은 글씨가 숨어 있었다.
해인사에서 사왔다고 하니 괜히 더 고귀해 보였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된 계기도 바로 이런 일들의 시작이었다.
25년 1월 1일, 시댁과의 작은 마찰이 있었고
그날 이후 나는 감정을 삼키는 대신 어딘가에 터놓고 싶었다.
누군가의 공감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내 스스로를 해독하고 싶었다.


이직의 이슈와 함께 시작된 25년은
새로운 출발이자, 실로 다사다난한 시간이었다.
그 모든 시간 내내 나는 손목에 그 팔찌를 차고 다녔다.
“괜찮을 거야.”
그 말이 들리는 듯했다.


10월, 추석 무렵.
긴 연휴가 시작되어 가족과 함께 경주로 여행을 떠났다.
가기 전부터 생각했었다.
‘불국사에 가면 새 팔찌를 사야지.’

불국사 기념품점에서 건강 기원 붉은 팔찌와 금전 부자 노란 팔찌가 눈에 띄었다.
그냥 느낌이 좋았다. 손에 쥐자 묘하게 따뜻했다.


나는 절이 좋다.
향 냄새와 종소리,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까지
모든 게 마음을 편하게 한다.


그렇게 다녀온 후 며칠이 지났을까.
여느 때처럼 출근 준비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옷을 입고, 손목에 팔찌를 차고 자켓을 걸치던 순간 —
‘툭.’
소리와 함께 삼재 팔찌가 끊어졌다.

나는 멈춰 섰다.
그리고 이내 바닥에 떨어진 알들을 주워 담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하나라도 잃고 싶지 않아
모든 알을 모아 비닐에 넣었다.

10개월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 손목에 있던 팔찌였다.

그냥 막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비닐에 넣은 채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팔찌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루 동안 가방에 넣어두고 계속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다.
“팔찌야, 고마웠다. 고생했다.”
그건 단순히 팔찌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매일 그것을 착용하고 출근하며, 묵묵히 살아냈던 나 자신에게 해주는 말이었다.

나는 깨끗한 종이에 팔찌를 조심스레 싸서
비닐에 넣어 버렸다.


이제 내 손목에는 불국사에서 산 건강기원 붉은 팔찌와
금전 부자 노란 팔찌가 걸려 있다.
묘하게 밝고, 기분이 좋다.

처음 삼재팔찌를 찼을 때는 ‘나를 지켜줘.’ 하는 마음이었다.
1월 1일, 시댁과의 마찰로 시작된 새해였으니
어쩌면 어딘가 기대고 싶었던가 보다.


얼마나 매일 착용했을까.
나무 구슬은 반질반질 닳고, 고무줄은 결국 늘어져 끊어졌다.

그 순간, 올해 내가 품었던 감정의 긴 찌꺼기들
함께 끊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뭔가 달라졌어요.”
얼굴 표정도, 기운도.


매주 내 감정과 마주하며 연재를 이어오다 보니
나는 스스로를 해독하고 다잡는 법을 배웠다.
조용히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바뀌어가는 나를 마주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에도
조용히 비쳐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삼재팔찌가 없어도 될 만큼 마음이 건강해졌다.
‘삼재’라는 단어가 마음에 박히지 않을 만큼 두려움도 없다.
세상에서 쏟아지는 온갖 말들도 이제는 가슴을 파고들지 않는다.


올 한 해, 감정을 마주하고 흘려보내며 살아낸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알게 되었다.

이제는 무언가에 기대지 않아도, 나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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