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옷장 속에서 나를 만났다

그저 옷을 정리했을 뿐인데, 마음이 달라졌다

by 최자두

여름이 지나고, 가을은 점 하나 찍을 틈도 없이 스쳐간다.

이 맘때면 어김없이 옷 정리를 한다.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작아진 옷들을 챙기고

당장 입힐 옷을 꺼내는 일이 매년의 일처럼 반복된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옷장을 열었을 때

그 안이 왜 이렇게 정신없고 복잡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닳고, 헤지고, 색이 바랜 옷들,

이제는 편하지만 더는 입지 못할 옷들.

그리고 버리지도, 입지도 못하고 그냥 걸어둔 옷들까지.

하나같이 나를 닮아 있었다.


그날은 유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늘 비슷한 옷만 입을까.’

돌아보니 늘 세일 매대 앞에서 멈췄고,

‘이 정도면 괜찮지’ 하며 카드를 꺼냈다.

정작 내가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어떤 옷을 입을 때 표정이 살아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며칠 전 쉬는 날, 동네 엄마들을 만났다.

다들 예쁘게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나보다 여유로워 보였고, 나보다 스스로를 아껴보였다.

집에 돌아와 옷장을 다시 열어봤다.

분명 그때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보잘것없어 보였다.

아마 그 옷이 초라했던 게 아니라,

그 옷을 입은 내 마음이 초라했던 거겠지.


출근길 아침, 바쁘게 걷는 사람들 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옷차림인데, 이상하게 다 비슷해 보였다.

그리고 문득 물었다.

‘나는 왜 그렇게 시선에 갈망했을까.’

누가 봐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왜 늘 누군가의 눈으로 나를 확인받으려 했을까.

사실은 내가 만족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옷이란 참 신기하다.

몸을 가리는 천 조각 같지만,

때로는 나를 숨기던 가림막이기도 하고

다시 세워주는 갑옷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안다.

옷은 남의 시선을 통과해 나를 증명하려던 외피가 아니라,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라는 걸.


이번 가을, 옷장을 정리하며 나는 내 마음의 옷을 새로 입었다.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로서가 아니라,

그냥 ‘나’로서의 옷을.

남의 시선보다 나의 온도를 기준으로 고른 옷.

그 옷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옷장 안은 이제 한결 비어 있고,

대신 마음은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버린 건 옷뿐인데,

오래 묵은 나까지 정리된 기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팔찌가 끊어지고 나서야, 한번쯤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