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진 두 글자, 생일

이제는, 나도 나를 축하할 수 있다.

by 최자두

11월은 특별한 달이다.
1년 중 단 한 번, 내 생일이 있는 달.
나는 아이 둘을 낳으며 생일을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 생일은 점점 불편한 날이 되어버렸다.


케이크, 꽃, 선물—
그것들 조차 의무감으로 느껴졌다.
1년에 단 하루, 최고의 날로 누려야 할 생일이
이젠 아무 일 없는 날처럼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올해는 시어머니의 칠순이 있다.
기념 여행도 다녀왔지만,
생신 당일엔 가족들이 모두 모여 식사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 것처럼 생일은 이제 나에게
‘챙겨야 하는 날’,
명절 같은 날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은 다르다.
생일이 다가오기도 전에 들떠서
온갖 작은 소원들을 쏟아낸다.
그 모습이 사랑스럽고 귀엽다.
부모인 나는 그 소원들을 들어주는 일이 행복이다.


매월 첫날, 회사에서는 전체 회의가 열린다.
회의가 끝나면 동료들과 저녁을 함께하며
그달의 생일자에게 선물을 건넨다.
이번 달은 바로 내 차례였다.
형식적인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축하를 받고 나니 불편했던 내 생일이
그냥 하루 점 찍고 지나가는 듯 가볍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작은 소원 하나조차 생일을 핑계로 소리쳐본 적이 없다.
어필하지도 않았고, 기대해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챙김을 받고 싶은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내 생일을 마주했는지도 모른다.


카톡에서는 어김없이 생일 알림 마크가 켜진다.
“축하해요!”라는 메시지들이 잇따라 도착하지만,
화면 속 알림이 반짝일수록 내 마음은 더 고요해졌다.

그럼에도 1년에 한 번 연락을 주는 친구가 있고,
가벼운 선물을 보내주는 동료도 있다.
그게 나를 표현하는 지표는 아니다.
그 갯수가 중요하지도 않다.
어쩌면 그건, 내가 챙긴 만큼 돌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올해는, 숫자 대신 마음을 세어보기로 했다.


나는 그렇듯, 생일도 무거워한 사람이다.
하지만 감정을 쓰고 흘려보낸 1년의 끝,
올해 11월. 특별한 이벤트인 나의 생일을
이제는 가볍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가 소중하다.
그리고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내가 나에게 어떤 날을 선물할 수 있는지,
그 또한 내가 가진 마음의 결이고 무게였다는 걸 깨닫고 나니,
보통날보다 조금 더 특별한 생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내 가족의 생일은 마음껏 챙기고,
아낌없이 축하해주고 싶다.
그건 나의 진심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생일도
기꺼이 축하받고 소중히 여길 것이다.


내가 스스로 아무 날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누구도 그리할 것이고,
내가 스스로 나의 날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미역국 한 그릇도 충분히 기쁜 날이 된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건, 나에게 보내는 작은 축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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