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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경 Apr 06. 2021

미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았다

회화가 미술의 역사를 주도한 까닭


5. 평면에로의 귀환 – 인상주의


원근법은 평면 위에 입체로 이루어진 실제 세계를 구현하는 회화의 가장 중요한 

표현방법이다. 원근법이 르네상스 시기에 발견된 창작 방법의 원리라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15세기 이전에도 원근법이 사용된 미술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14세기 초 원근법의 씨앗을 뿌린 이탈리아의 화가 조토가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해서, 부르넬레스코에 의해 개발된 건축학적 원근법을 회화에 적용시킨 

마사초를 이어 원근법의 꽃이라는 단축법에 이르기까지 

르네상스 시대에 집대성되고 오늘날까지 고전적 회화의 중심 원리로 된 것이다. 

2차원의 평면 바탕에 3차원의 세상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처럼, 아니 오히려 

더 이상적으로 표현하는 환영 주의(Illusionism)로 르네상스 미술의 꽃을 피우게 된다.



애도. 조토 디 본도네. 중세. 13세기     



 성 삼위일체. 마사초. 르네상스. 15세기 중엽

당시 사람들이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를 보고 ‘벽에 구멍이 뚫린 줄 알았다’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부르넬레스코의 선원근법과 공기 원근법 등을 

회화에 완전하게 구현해낸 최초의 작품이다  



 죽은 그리스도. 만테냐. 르네상스. 15세기 말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는 장례행렬용으로 그려졌다. 원근법의 꽃이라 불리는 

단축법을 사람, 그것도 예수의 신체에 온전히 사용한 최초의 회화작품이다. 

단축법을 사용해서 누워있는 사람을 표현하자면 발에서 머리까지 삼각형의 모양을 

이루어야 하는데, 가장 작게 그려야 할 머리가 더 크게 그려져서 시각적으로 어색하게 느껴진다. 만테냐의 실수나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행렬이 지나가는 동안 

멀리서도 예수의 얼굴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얼굴을 비례에 맞지 않게 더 크게 

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작품이 완성됐을 당시에는 그림 안에 진짜 사람이 죽어 누워있다고 온 마을이 충격과 경악으로 술렁거렸을 뿐만 아니라 신성을 

모독했다는 비난과 소동이 일어났다고 하니, 당시 사람들에게 원근법이 불러온 

미적 충격은 실로 상상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가 지배세력으로 군림한 수백 년 동안, 중세시대의 사람들이 믿고 있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통해 세계관의 일대 전환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신학적 교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중세의 일원론적 세계관과 정체성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새롭게 발견되고 집대성된 원근법적 원리를 통해 

인간적이고 과학적인 시각과 질서의 표현 원리에 점차 그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다양한 원근법적 원리와 정확한 선묘를 통한 입체적 재현 즉, 환영 주의적 표현 방식은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미술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근대 미술의 중심이 된 프랑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아카데미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국가 차원의 미술교육과 작가 배출을 체계화시킨다. 

사진처럼 보이는 사실적인 묘사, 이상적인 비례와 조화를 미술 창작의 원리로 확립하고 <살롱전>과 같은 대규모 관변 공모전의 심사기준으로 삼았다. 


파리의 <살롱전>은 당대 모든 화가들의 출세를 위한 유일한 등용문이었는데, 

1863년에 열렸던 살롱 전에는 무려 5천여 명이 출품해서 3천 명이 넘는 작가의 작품이 탈락하는 일이 발생한다. 입선이 거부된 작가들이 나폴레옹 3세에게까지 거세게 

항의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나폴레옹 3세는 탈락한 작가들의 작품만을 따로 모아 전시회를 열어주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세간의 관심이 오히려 폭증했고, 

살롱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렇게 ‘낙선(한 작가들의) (시회)’을 시작으로 기성 미술계가 답습하고 있는 

아카데미즘에 대한 반발과 새로운 모색이 이루어졌는데, 그중 한 그룹이 주도한 

경향이 바로 현대미술의 출발점이라고 일컫는 인상주의 미술이다. 


인상주의 미술을 검색하면 연관되는 단어들이 있다. 

빛 그리고 사진술의 발명이다. 

사진기와 사진술이 나날이 발전되어 더 이상 미술이 외부 세계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없어졌을뿐더러, 튜브 물감과 이동식 이젤의 발명으로 

인상주의 화가들은 야외에서 작품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빛의 변화가 주는 

시각적 인상을 스케치하듯 재빠르게 그려내는 표현방법은 회화사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회화의 바탕 즉,  

평면성에의 회귀라는데 있다. 


 피리 부는 소년. 에두아르 마네. 인상주의 


더 이상 평면의 캔버스가 평평하지 않은 것처럼 표현하거나,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이상적인 내용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것을 멈추고 ‘이것은 사과이고, 꽃이고, 여인이고, 건물을 그린 그림이다. 다만 이것들은 평면 위에 채색된 이미지일 뿐이다’

라는 것이 인상주의 미술의 선언이며 예술적 전략이었던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스승이라 일컬어지는 마네의 그림은 언뜻 보면 사실주의 화풍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의 작품들 - 특히 신고전주의 미술 - 이 사진을 넘어서 3D 입체 영화처럼 보이는 것에 비해 평면의 캔버스 위에 

최대한 평평하고 밋밋하게 그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튀로스와 님프들. 윌리엄 부게로. 신고전주의 


     

인상주의 미술이 현대 미술의 출발점이라고 부르는 데는 소재의 완전한 전환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인상주의 미술은 프랑스혁명 전후의 

정치 종교 혁명 이념 따위의 거대 담론을 캔버스 위에서 걷어냈으며 

작품의 소재를 일상적인 삶에서 본격적으로 끌어왔다. 더욱이 

르네상스로부터 인상주의 이전의 회화가 그 형식적 

구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상을 중심에 놓고 차등의 순서에 따라 

주변을 배치하는 고전적 형식을 답습했다면 – 이런 의미에서 원근법은 인간적인 서열화를 확고부동하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인상주의 미술가들은 

중심과 주변을 거의 대등하게 표현했다. 화면 전체를 독특한 붓질 기법으로 감싸이게 함으로써 감상자의 눈이 한 곳을 중심으로 이동하게 하지 않았을뿐더러, 

주요 대상과 주변을 구분 짓지 않는 화면 구성 – 인상주의 화가들은 종종 스냅사진처럼 등장인물들의 신체 일부를 화면 밖으로 밀어내기도 했다 -을 채택함으로써 

기존 작품들이 암시하는 계급 계층적 서열과 질서를 타파한 것이다. 

인상주의 미술은 한편으로는 소재 사이의 뚜렷한 경계를 없애는 채색 방식을 통해 인간사의 무상함을 표현한 것이라는 형식 비평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캔버스라는 규격화된 틀 안에서 뿐만 아니라, 그 틀을 둘러싼 

외부 세계에서도 탈 권력화를 시도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점이 인상주의 화가들이 의도했든 아니든 인상주의 미술은 단순히 

표현 양식상의 혁명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예술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국가가 주도하는 아카데미와 살롱전의 출품작들 중에서 최상위의 입상작은 

언제나 그 정치적 의도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으며, 대상의 경계와 서열이 뚜렷한 

역사화라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따라서 인상주의 미술이 정치, 종교, 이념과 같은 

거대 담론의 종속적 역할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주된 미적 대상으로 

취함으로써 형식적으로나 내용상으로도 미술의 자유를 처음으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추구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현대미술의 출발이라고 부르는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인상주의 직전의 그림과 인상주의 그림을 비교해보자.


 야경. 렘브란트. 바로크 미술  


샤를 7세 대관식의 잔다르크. 오귀스트 앵그르. 신고전주의 미술    


 민중을 이끄는 여신. 들 라크루와. 낭만주의 미술 




 튈르리 공원의 음악회. 에두아르 마네. 인상주의 미술

    

 라 그르누이 예르. 모네(왼쪽). 르느와르(오른쪽). 인상주의 미술  



인상주의 직전의 작품들은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를 막론하고 

여전히 르네상스 미술의 원리인 원근법적 시각으로 세상을 파악하고 묘사하고 있다. 

중요한 인물들을 크고 진하고 선명하게 묘사하고 그 주위에 부차적인 인물들이나 

배경을 넣고 화면의 바탕이 되는 시골이나 도시 풍경, 하늘 바다와 같은 자연 등은 저 멀리 보이도록 선명하지 않게 표현함으로 자연스럽게 주제를 중심으로 

서열화를 이루는 창작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인상주의 미술에서는 

제1주제, 제2주제, 배경의 서열화가 없어진다. 한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그린다 해도 

인물과 주위 배경을 감싸는 빛을 특유의 붓질로 산란시키는 채색 효과를 통해 동등한 

위치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고전주의적 화면 구성 방식의 해체는 

감상자의 시선을 보다 자유롭게 만들었으며 인상주의 미술이, 프랑스혁명의 최고의 가치인 ‘자유’에 대한 예술적 성취를 이끌어냈다는데 그 의의를 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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