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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경 Apr 05. 2021

미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았다

회화가 미술의 역사를 주도한 까닭


4. 회화는 불연속적 이미지로 이루어진 

가상의 평면 예술이다.



구석기시대 동굴 벽면에서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의 집대성으로 미술의 내용과 형식의 극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미술 도구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는 캔버스의 발견까지 2차원의 평면은 물질적인 현실 공간이며 동시에 비물질적인 가상의 공간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서있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존재하지만 물질성을 초월한 비물질적인 또 다른 세계이다. 영화에 비유해보자. 

영화는 불연속적인 평면 위에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과 현실적인 공간성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회화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영화도 캔버스, 붓, 물감 같은 미술도구에 해당하는 카메라와 다양한 촬영 기자재 같은 제작도 구들이 있다. 영화의 제작과 감상의 소통방식을 간단히 서술하자면 우선, 

제일 중요한 도구인 카메라를 통해 촬영하고 그다음에, 촬영된 내용을 편집과 

특수효과 등으로 형식적 구성을 완성시킨 후 마지막으로, 

극장(미술로 치자면 전시관) 벽에 설치해 놓은 평평한 천으로 된 막 –영사막(projection screen)- 위에 영상을 틀어주면 된다. 


영화에서 하나의 장면 가운데 정지된 한 순간을 촬영한 것을 1 프레임이라 하는데, 

기본적으로 1초당 24 프레임을 연속해서 보여주게 되면 

자연스러운 전체 장면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캔버스에 밑으로 쳐져 있는 팔을 그리고 그다음 캔버스에 중간쯤 들어 올려진 팔을, 또 그다음에 어깨 위로 치켜 올라간 팔을, 그렇게 24장의 그림을 그린 것을 1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시간의 순서대로 연속해서 

보여준 것이 영화인 것이고 그 1 프레임의 장면이 평면미술, 회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영화는 시간의 인위적 배열과 하나의 장면을 여러 각도와 시점에서 촬영함으로써 필름 혹은 디지털 화면이라는 평면의 공간에 자연스러운 입체성을 녹아들게 해서 

허구의 이야기도 현실적인 힘을 갖게 하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영사기의 전원을 끄면 그저 텅 빈 천으로 된 영사막만이 덩그마니 남는다는 것을, 방금 눈앞에 펼쳐진 진짜 

같은 영상 속의 이야기가 가상의 세계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어떠한 여과장치도 없이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여도 그것은 이미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지나간 사건들이며, 

아무리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비논리적이고 부조리한 이미지들의 

나열이어서 마치 꿈처럼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현실에서 일어난 어떤 것들에 대한 상상을 통해 재조합한 것에 불과하다. 인간의 꿈이 아무리 기괴하고 인간의 상상력이 무한하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 

낼 수 없으며, 다만 우리가 비현실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익숙하게 지각되지 않는 

비서사적이며 비실 제적인 조합으로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영화의 1 프레임에 해당하는 회화가 현실에 존재하는 물질적 대상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든, 추상주의 화가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처럼 

몇 가지 색과 단순한 도형으로 표현을 하든,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작품으로 완성되는 순간 동굴이나 건축물의 벽면, 양피지, 패널, 도화지, 캔버스와 같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는 물질로 이루어진 평면들은 비물질적인 

가상의 공간, 이미지의 세계가 구현된 공간으로 뒤바뀐다. 다시 말해서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캔버스 자체나 어떤 물질로 만든 무슨 재료를 썼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평면 위에 완성된 작품이 무엇을 그렸는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가를 먼저 인지하게 되며, 작가의 예술적 의도와 감상자의 주관적 해석으로 

어떤 질서에 따라 배열된 색채로 뒤덮인 평면은 

다양한 의미 부여와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실제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적인 것이되 

실제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비물질적인 가상의 세계로 바뀌는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그린 최후의 심판을 보고 저 프레스코화는 

석회 반죽에 모래를 섞은 모르타르의 배합비율이 이렇다 저렇다, 

물에 탄 채색 안료로는 무엇이 쓰였고 수많은 인물들의 실제 모델은 누구였을까 등을 논하기 전에, 신의 이름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며 오른손을 쳐들어 선을 행한 자들은 

위쪽 천국으로 악을 행한 자들은 왼손으로 눌러 아래쪽 지옥으로 떨어뜨리려는 

준엄한 심판의 순간, 그리스도의 강렬한 모습과 함께 온갖 인간 군상이 격동적으로 

어우러져 최후의 순간에 펼쳐진 장엄한 파노라마 앞에 압도되어 마치 내가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있는 것처럼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되는 아우라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며,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성당. 프레스코화. 르네상스 미술    


표현주의 화가 마티스가 말년에 이르러 거동이 불편해지자, 

고무를 수채화 물감에 섞어 약간 불투명한 느낌을 내는 구아슈를 만들어 칠한 색종이를 오려 붙이는 제작 방법을 택한 것이 ‘그림을 그리는데 데생이 중요한가 채색이 중요한가라는 논쟁을 종식시키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라는 평가에 앞서, 

작품을 대면하자마자 청량하게 펼쳐진 푸른색의 변조 위에 자유롭게 노니는 

바다생물들의 다양한 모습에서 마치 무중력의 하늘을 아무런 제약도 없이 떠다니는 

뭇 새들의 자유로운 비행을 보게 되는 중의의 묘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폴리네시아-바다. 앙리 마티스. 과슈 채색 종이화. 표현주의 미술    


성당의 벽면 위에 석회 반죽과 물감을 섞어 프레스코 화를 그리든, 

구아슈를 칠한 종이를 오려 붙이는 콜라주 기법을 사용하든, 고흐처럼 유화물감을 

캔버스 두께보다 더 두껍게 겹겹이 쌓아 올려 그리든 또한, 실제처럼 보이게 재현을 하든 지극히 주관적이고 추상적으로 표현을 하든, 회화는 물질로 된 다양한 평면 위에 

물질로 된 다양한 도구로 만들어낸 비물질적이며 불연속적인 가상의 공간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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