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 미술관에 들어서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예술의 전당에서 서양 현대미술전이 열린단다. 미술이라고는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 나는 적잖이 걱정이 앞선다.
게르니카. 파블로 피카소. 입체파
별이 빛나는 밤에. 빈센트 반 고흐. 후기 인상주의
미술, 특히 현대미술은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던데... 전시장에 가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면 어떻게 하지? 너무 앞선 걱정은 NO NO. 걱정이 걱정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걱정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일단 무조건 전시장으로 가보자. 요즘 웬만한 미술관에는 낭랑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작품을 설명해주는 ‘도슨트’가 있지 않은가! 질서 정연하게 잘 따라다니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사전 지식을 얻어 친구에게 조금 우쭐거리고 싶다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활용하면 된다. 여러분이 알고 싶어 하는 작가들의 이름을 검색해도 되고, 혹시 작가 명을 모른다면 그저 ‘미술’ 혹은 ‘현대 미술’이라고 입력만 하면 무수한 정보가 쏟아진다. 그것도 귀찮다면 지금부터 나와 함께 천천히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보자. 대개 전시장에 걸려있는 그림 아래쪽에 작가, 제목, 작품의 크기,
재료 따위가 붙어있어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해준다.
- 제1 전시관 -
제목 : 더 큰 첨벙 (A bigger Splash)
작가 :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 크기 : 242.5cm x 243.9cm
재료 :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Acrylic paint on canvas)
솔직히 말해서 제공된 내용을 단서로 활용한다 해도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현대의 미술작품들을 감상할 때는 정서보다 해석이 중요하다 했으니, 제공된 정보들을 토대로 작품 분석을 해보자.
우선,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무엇을 그린 것일까?
너무도 빤하게 수영장이 딸린 저택을 그린 그림이다. 거의 정사각형의 캔버스를 수영장과 건물을 중심으로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었다. 하단 수영장에는 하늘보다 살짝 더 진한 파란색 물감으로 칠했고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다이빙 보드를 그렸다. 다이빙 보드와 사선으로 마주 보는 건너편에 접이식 의자를 하나 놓았고, 그 의자 뒤쪽으로 커다란 창이 있는 단층 건물과 갈색 계통 물감으로 칠해진 벽 아래쪽에 풀밭을 그렸다. 건물 오른쪽 뒤편으로 길쭉하게 솟아오른 야자수 나무 두 그루를 나란히 배치했고, 전체적인 색조를 약간 가라앉혀서 붓 칠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게 물감을 잘 펴 발랐다. 소재의 각 부분을 반듯하게 구획하고 단순화시킨 것이 마치 포스터 도안 같다. 건물 벽 아래쪽에 있는 풀들과 야자수 나뭇잎은 녹색 계열을 입히고 ‘살랑’ 움직임을 표현해서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마지막으로 다이빙 보드 바로 앞에 이제 막 누군가, 무엇인가가 물속으로 뛰어 들어간 것처럼 혹은, 던져진 것 같은 커다란 물보라가 이 모든 정형적인 구성을 깨뜨리며 튀어 오르고 있다. 파란색에 흰색의 양을 조절해 가면서 표현한 다양한 모양의 물줄기들은 다른 소재들에 비해 제법 정성을 들인 것 같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는 대충 알겠다. 그럼, 도대체,
이 무척 단순해 보이는 그림이 나타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데이비드 호크니가 애초에는 물보라를 그리지 않았다고 상상해보자.
캘리포니아의 수영장이 딸린 저택을 배경으로 화창한 어느 여름날의 오후 풍경이다. 밝은 색조의 물감을 사용하지만 채도를 살짝 낮춰 전체적으로 차분한 느낌을 준다. 건물 안은 불이 꺼져 반대편 건물들과 야자수 나무 몇 그루가 마치 화폭처럼 펼쳐진 커다란 창에 어둡게 비치고 있다. 풀들과 야자수 나무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자로 잰 것처럼 반듯하게 자르고 아주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 적막하다 못해 삭막하다. 야자수 나무의 미세한 움직임과 나뭇잎들, 벽 아래에 피어있는 풀잎들의 상대적 자유분방함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일 정도다.
시간조차 정지된 텅 빈 대 저택과 그 정적의 긴장감이 화면 전체를 팽팽하게 감싸고 있을 즈음 ‘첨벙!’ 하고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 수영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동시에 물보라가 일었고 바로 그 순간, 화가의 눈에 그 모습이 포착됐다. 화가에게는 바로 직전까지 바람 한 점 없는 날 수영장 안에 가득 채워진 물조차 미동도 하지 않는, 물인지 하늘인지 구별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바로 그 찰나의 순간 사이, 그것을 깨뜨리며 튀어 오른 물줄기들이 묘한 감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 정적과 정지 상태 - 반듯하게 나뉘고 정돈된 질서의 세계를 깨뜨리는 무질서한 물보라들, 그 콘트라스트가 불러일으키는 시청각적 쾌감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어두운 저택 안쪽에 서서 자신만이 물보라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듯 즐거워하는 호크니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닌가? 여러분은 어떻게 감상했을까? 여러분에게 <더 큰 첨벙>은 무엇을 표현한 그림이라고 생각하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그저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장면을 최대한 심플하게 그려놓고 관람객의 마음에 <더 큰 첨벙>! 파문이 일어나길 내심
기대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감상하고 분석해보니 화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조금 알 듯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왜 제목이 <더 큰 첨벙>일까? 첨벙, 작은 첨벙, 더 작거나 가장 큰 첨벙도 있나? 이쯤 되면 들고 있던 스마트폰 찬스를 써보자. “있네 있어!”
1966년에 그린 <첨벙>과 <더 작은 첨벙>이 있었네. <더 큰 첨벙>이 1967년에 제작된 그림이니 1년 전에 그린 <더 작은 첨벙>과 <첨벙>을 확대한 작품이었군. 그래서
제목이 <더 큰 첨벙>!
데이비드 호크니는 영국에 있는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와의 인터뷰에서 수영장에 누가 뛰어들었느냐? 는 질문에 ‘나는 모른다. 이는 사진에서 가져온 것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그림이 실제 수영장이 있는 저택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린 것도 아니다. 호크니는 우연히 어느 달력에 있는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열심히 감상하고 분석한 당신, 그렇다고 실망하지 말자.
화가가 창작의 영감을 떠올리는 계기는 다양하고, 작품의 소재로 채택하는 것은 무궁하다. 처음 의도한 대로 똑같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뿐더러, 감상자인 당신의 감상과
해석이 작품을 더욱 풍성하고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하여간 호크니는 수영장을 무척 좋아했나 보다. 수영장에 관련된 시리즈들을 많이 그렸고 그중에는 현존 화가로써 1000억대가 넘는 가격으로 팔린 작품도 있다. 뭐, 웬만하면 다른 작품들도 수십수백억씩이나 한다.
- 제2 전시관 -
제목 : 나의 침대(My Bed)
작가 : 트레이시 에민
터키계 혼혈 영국 작가 트레이시 에민이 자신이 사용하던 침대와 그 주변에 널브러진 생활용품들을 전시장으로 옮긴 <나의 침대>란 작품이다. 현대 미술 장르 중에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는 설치 미술이다. 흐트러진 침대 시트, 이불과 베개들, 아무렇게나
벗어버린 스타킹, 낡은 팬티 쪼가리, 담배꽁초, 빈 술병들, 콘돔, 몇 장의 스냅사진 등등. 며칠 동안 집 밖에 나오지도 않다가 뒤돌아본 자신의 침대와 그 주변의 풍경이
불러일으킨 충격이 작지 않았던 모양이다.
‘세상에.. 내가 만일 저기에서 죽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사람들이 내가 죽은 장소를
보면서 나의 삶을 다 알아버렸겠네!’
그때, 그녀의 머리에 아이디어 하나가 번뜩 떠올랐다. 50대가 된 예술가의 내밀한 침대와 그 주변을 대중들에게 가감 없이 노출시키면 어떨까? 대중들의 예술가에 대한
고정된 인식, 그것도 여성 예술가에 대한 선입견 같은 것을 깨고 싶은 충동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저 침대 위에서 죽으면 뭐 어때? 최악의 장소는 아니야. 죽은 나를 영원히 살아있게
만드는 아름다운 장소가 될 거야.’
트레이시 에민은 즉시 방안에 있던 침대와 주변을 있는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 놨다.
‘나에게 미술가가 된다는 것은 멋진 것들을 만든다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 작품으로 매년 영국에서 수상하는 세계적 권위의 미술상 - 터너상의 최종 후보에
까지 오른 그녀는 과연 어떤 메시지를 건네고자 했던 것일까?
<나의 침대>를 발표하기 바로 직전, 트레이시 에민은 자신과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을 기록한 텐트를 전시한다. ‘~ 함께 잔 = slept with~’라는 말을 성 편향적으로 해석하면 그녀와 ‘~ 관계 한 = sexed with ~’를 의미할 수도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품의 제목을 보자마자 그렇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녀는 텐트 안에 자신의 할머니의 이름, 친구들 그리고 낙태한 아기의 이름까지 기록함으로써 중립적으로 보이는 언어가 ‘어떤 부류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편견과 차별을 낳을 수 있음을 묵시적으로 전달한다. 그렇다면 <나의 침대>는? 인간, 여성, 예술가, 문제 작가의 날 것 그대로의 침대가 있는 풍경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일까? 예술작품은 신비하지도,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는 고고하지도 않은 그저 대중들과 같은 처지의 인간일 뿐이라고 외치는 것일까 아니면, 미술 작품은 마치 연꽃과 같아서 이런 시궁창 같은 토양 위에서
피어난다는 역설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까?
‘나의 삶이 곧 예술이고 나의 예술이 곧 나의 삶이다’라고 트레이시 에민은 말한다. 그녀에게는 일상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저 침대가 작품이고 그 침대를 그대로
전시장에 가져다 놓은 그녀의 행위가 곧 그녀의 삶이고 예술인 것이다.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트레이시 에민. 설치 미술
트레이시 에민은 텐트 안에 자신이 태어난 1963년부터 95년까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다양한 크기의 폰트와 색깔로 빼곡하게 적어 붙여 놓았다.
그런데 만일, 그녀가 그녀의 침대를 전시장 바깥 어떤 불특정 한 곳에다 갖다 놓았다면 <나의 침대>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보통의 사람들은 그것을 미술작품으로 인정했을까? 예술 작품들의 무덤으로 비유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안에서 대중들에게 거리를 둠으로써 동시에 스스로도 소외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거리로, 야외로 나온 것이 설치미술의 근본적인 동기다. 이와 같은 설치미술 초기의 저항 운동적 성격을 트레이시 에민은 몰랐던 것일까? 전시장 밖에서는 그저 가구일 뿐이고 전시장 안에서는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영민한 그녀는 전시장 – 사치 갤러리 -라는 특수한 공간에 자신의 침대를 있는 그대로 옮겨 전시했고, 그녀의 침대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이유로 한껏 유명세를 타게 된다. 영국의 유명한 미술품 수집가이자 투자가인 찰스 사치는 <나의 침대>를 3억 원 정도에 사들였고 크리스티 경매에 내다 팔아 30억 원이 넘는 돈에 최종 낙찰됐으니 결과적으로 그녀와 사치는 제대로
윈윈 한 셈이다.
트레이시 에민의 <나의 침대> 위에서 해프닝을 벌이는 중국의 행위 예술가
표현력으로 따지자면 데이비드 호크니의 <더 큰 첨벙>은 웬만큼 미술을 하는 중고등
학생들도 그릴 수 있을 만한 수준이다. 만일 저 작품이 동네의 어느 카페에 걸려 있다면 십중팔구 무심코 지나치거나 그저 미술을 좋아하는 카페 주인의 취향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이 틀림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술계와 언론이 왜 그토록 열광하는지, 왜 저 단순한 그림에 구구절절 어려운 해석을 갖다 붙이고, 수십수백억의 가치를 지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과연 호크니의 <더 큰 첨벙>! 튀어 오른 물보라들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심오한 의미라도 숨겨져 있는 것일까?
유명 인사들의 사생활을 엿보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의 소품 같았던 트레이시 에민의 <나의 침대>는 어떠한가? 전시장 안으로 들여간 침대는 미술작품이 되고 전시장
밖의 침대는 그것이, 예술가의 침대여도 그저 그런 가구 중에 하나일 따름인가? 아니면 예술가의 아이디어로 인한 것인가? 그래서 현대미술은 작가의 아이디어가 중요하다고 하나? 하지만 나의 아이디어는? 여러분들의 아이디어는? 아무나의 아이디어는 예술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인가? 예술적 아이디어가 먼저인가 예술가로 공인받는 것이 우선인가? 공인된 예술가와 미술관, 예술작품 결국 이 세 가지가 미술의 본질인 것인가?
오늘날 미술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현대미술의 어떤 장르는 감상의 어려움을 넘어서 접근하려는 엄두조차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들 중 하나는, 내가 미술에 대해서 너무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애써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데 있는 것도 틀림없다. 그럼에도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러시아 태생의 화가 ‘카임 수틴’의 작품 앞에서 나도 모르게 솟아올랐던 울컥한 감정은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카임 수틴처럼 이역만리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떠도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 미술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공감하는 것을 넘어서는 다른 영역에 속하는 것인가? 이것은 미술이 될 수 있고 저것은 아니다의 기준은 무엇인가?
도대체 미술이란 무엇인가?
오세르의 바람 부는 날. 카임 수틴. 1939년. 에꼴 드 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