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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나는 로또 1등에 두 번 당첨되었다.

Chapter Ⅳ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을 느끼고 있다.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건강해서도 아니고, 내 명의의 집이 있어서도 아니고, 내 명의의 차가 있어서도 아니다. 나는 돈도 많이 없고, 그다지 건강한 것도 아니고, 내 명의의 집과 차도 없다. 하지만, 그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눈에 비치는 눈부신 햇살이 좋고, 밖에 나가서 내 발로 땅을 디딜 수 있다는 게 좋다.


   아침 출근시간이면 인도나 차도 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중에 나도 바쁘게 움직이는데, 그 바쁜 출근시간에도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면서 눈 부신 햇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간혹 새가 지저귀는 것까지 같이 듣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산뜻해진다.


   이렇게 좋은 것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그저 내 앞에 맞닥뜨려진 현실이 너무 괴로웠다. 이 세상이 원망스럽고 내가 살아가야 되는 이유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거의 매일을 울다시피 한 날도 많았다. 그러다 2년 전부터 내가 가보지 못 한 곳들을 가 보고 새로움을 경험해 보면서 조금씩 왜 살아가야 되는 건지에 대한 이유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당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라는 말들을 많이 할 것이고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말에 웃기지 말라며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뇌성마비 장애를 극복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런 와중에 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 난치병을 진단받게 된 이후 깨닫게 된 게 있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지금, 이 순간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뇌성마비 장애로 인해 말하는 것을 연습했고, 지금은 어릴 때보다는 말하는 것이 덜 불편해서 좋다. 어릴 때는 누가 봐도 내가 잘 못 걷고 한쪽 다리를 절면서 걸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구두를 신고도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어릴 때는 컵에 물이 반만 들어있어도 그걸 들고 걸으면 물을 다 쏟았는데, 지금은 매일 점심을 먹을 때 식판에 국을 반 이상 담아서 걸어가도 쏟지 않아서 좋다.


   그리고 매일 점심을 먹을 때 왼손으로 식판을 들고 오른손으로 음식을 뜨는데, 식판에 음식이 있어도 그걸 왼손으로 잡고 있을 수 있어서 매일 점심을 먹기 전부터 이미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이제는 왼손만으로도 식판에 음식이 담긴 걸 들 수 있구나... ' 물론 반찬 밥 국까지 식판에 다 되면, 그때는 왼손으로만 들고 있는 식판이 버거워서 바로 두 손으로 같이 식판을 들고 식탁에 갖다 놓는다. 그럼 항상 수저는 챙기지 못하고 식판을 먼저 갖다 놓게 되지만, 상관없다. 다시 가서 수저를 가지고 오면 되니까. 나는 수저를 가지러 걸어갈 수 있으니까. 그럼 같이 점심 식사를 하는 선생님들이 수저는 왜 안 챙겨 오냐며 나를 챙겨주는 말을 해 주신다. 그럼 나는 웃으면서 "수저 가지러 한번 더 걸어갔다 오면 되죠. 그럼 더 배고파지니까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곤 한다.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병은 솔직히 지금도 두려울 때가 있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이 병과 처음에는 싸워보려고 했고, 내가 이겨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굳이 싸울 필요도 없고 이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병과 같이 살아가 보려고 한다. 자가주사를 일주일에 세 번씩  맞는다는 건 어찌 보면 성가시고 아프고 싫은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나한테 왔고, 벌써 다발성경화증과 같이 살아온 지 햇수로 8년째이기에, 다발성경화증이라는 예민한 녀석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보듬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지금도 같이 살아가고 있다.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병을 통해서 나는 갑자기 눈이 안 보일 수도 있고, 갑자기 못 걷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뇌성마비 장애로 인해 알아가게 된 것과는 또 다른 것을 알게 된 격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햇빛이 내 눈을 부시게 하는  느낄 수 있어서 참 좋고, 매일 아침마다 출근길에 지하철 역까지 걸어갈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참 좋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이렇게 행복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발성경화증을 확진받고도 오랜 시간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흔히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 분의 1이라고 한다. 나도 로또 복권을 꽤 많이 사 봤지만 오천 원도 당첨되지 않을 때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나는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되어서 몇 십억을 수령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 액수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로또 1등에 당첨된 격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고열로 인해 뇌성마비 장애가 오게 된 것도 확률로는 꾀나 드문 확률일 것이고, 현재는 겉모습만 바로 봐서는 장애를 잘 모르겠다는 말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이 듣게 되는데 이 또한 꾀나 드문 확률일 것이다. 거기다 이런 나에게 희귀 난치병인 다발성경화증이 온 것은 또 얼마나 드문 확률일 것인가 싶다.


   내가 로또 1등에 두 번 당첨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까지 나름 오랜 시간이 걸려왔지만, 그 시간들이 결코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부정하고 분노하고 부끄러워했던 모든 시간들이 나에게는 참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들 덕분에 지금의 나는 행운이라 생각하며 나의 삶이 로또 1등에 두 번 당첨된 것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는 것을 매 순간 느끼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좋을 수는 없지만, 항상 나쁠 수도 없다는 말처럼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조금 더 감사하게 그리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지금, 여기, 이 순간 나도 그리고 여러분들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보면 현재가 어느 순간 과거로 될 것이고, 현재가 또 다른 내일이 될 것이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지금, 여기, 그리고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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