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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2 - 제5회 통합교육 실천 교단일기 공모전 수상작

Chapter Ⅳ

<선생님의 부탁, 그리고 한 통의 편지>



  나: 여러분, 잠시 선생님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학생들: 선생님 첫사랑이요?

  나: 아니, 말 그대로 선생님 이야기


   이때부터 학생들은 그 어느 수업시간보다 더 조용하고 엄숙한 자세로 나의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나의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면, 그때는 통합교육이라는 게 시행되기 전이었다. 학교에 특수학급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도 현저히 좋지 않은 시절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어찌 보면 지금의 장애학생보다 수십 년 전의 나는 더 힘든 교육여건을 겪어 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고열로 인해 뇌성마비 장애가 왔고, 그로 인해 왼쪽 몸 전체가 마비된 채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초·중·고등학생시절 한 학년씩 올라갈 때마다 3월 초에는 항상 긴장 아닌 긴장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엄마가 매년 3월 초에 학교로 오셔서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셨으니까...


  엄마: 우리 진영이가 몸이 많이 불편해요. 어릴 때 왼쪽 몸에 마비가 와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재활치료랑 물리치료를 쭉 받아왔지만, 그래도 아직 몸이 많이 불편해요. 인지능력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체육 수업 할 때랑 활동적인 걸 할 때 불편한 모습이 보이더라도 잘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도 잘 지낼 수 있도록 부탁드릴게요.


엄마의 저 말이 이십여 년 전의 어렸던 나는 왜 그리 싫었을까...


   초·중·고등학생시절의 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한다고 생각했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때는 그들과 내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 수용하기 어려웠다. 그때의 나는 그것을 수용하게 되면, 같은 반 아이들이 나의 장애를 빌미 삼아 나를 때리고 싫어하는 것을 나 스스로도 그냥 포기하고 인정할 것만 같아서... 그럼 정말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된 나는 다른 사람들의 몸과 내 몸이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수용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결코 다른 사람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이 못난 게 아니라, 사람의 생김새가 다른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수용하고 싶은 나와 수용하기 싫은 나, 이렇게 두 개의 생각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엎치락뒤치락했고, 내면의 갈등을 끊임없이 해 오면서 한편으로는 점점 지쳐가기도 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서 성인이 되었고,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나의 장애를 좀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신도 부모님도 다 원망스러웠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게 뭐 어때서?’라는 배짱이 조금씩 생겨난 것이다.

 

    ‘이게 뭐 어때서? 불편하니까 다른 사람과 똑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 나는 늘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고,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나는 열심히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됐잖아. 내가 만약 불편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처럼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필두로 나의 불편함을 알려야 하는 상황이 생기게 될 때면 “저 사실 뇌성마비 장애가 있어서 왼쪽 몸이 불편해요. 어렸을 땐 잘 걷지도 못할 만큼 많이 불편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몸이 좋아져서 지금의 모습까지 오게 되었어요. 그래도 아직 좀 불편한 점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리지만, 그래도 정말 최선을 다 해서 잘해 보겠습니다.”라고 알릴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을 통해서 요즘에는 학교에서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수업받는 통합교육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방과후 수업을 했던 초등학교에 특수교사와 특수학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내 수업에 휠체어를 탄 학생과 그 어머니가 찾아오셔서 “우리 아이도 선생님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순간 나의 어렸을 때와 ‘우리 엄마도 이러셨는데...’라는 생각이 들다가 바로 대답했다. “네. 어머니 당연하죠. 학생이 불편하지 않도록 제가 더 신경 쓰겠습니다.”

  

   처음에는 장애 학생이 내 수업에 참여할 때 비장애 학생들 중 짓궂은 학생들은 장애 학생을 놀리기도 했고,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비장애 학생들을 강압적으로 혼내기보다는, 조용히 따로 불러서 대화를 시도했다.


  나: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리고 너랑 선생님이 서로 생긴 게 다르듯이 장애를 가진 사람은 너랑 다른 것이지, 못 난 게 아니야. 너 감기 걸렸을 때 아파? 안 아파?

  학생: 아파요

  나: 그럼 불편해? 안 불편해?

  학생: 불편해요

  나: 그렇게 네가 아프고 불편할 때 옆에 친구가 너 콧물 흘리는 거 기침하는 거 따라 하면서 웃으면 기분 좋겠어?

  학생: 기분 나쁠 것 같아요

  나: 그래, 기분 나쁘겠지? 그럼 저 친구는 네가 놀릴 때 어떨 거 같아? 기분 좋겠어?

  학생: 아니요

  나: 그럼 네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 것 같아? 지금처럼 계속 그렇게 할 거야?

  학생: 아니요, 앞으로는 안 놀리고 잘 지낼게요 잘못했어요


    이런 대화를 한 이후부터 장애 학생을 놀려대던 비장애 학생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장애 학생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걸면서 도와주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나는 중학교 교사로서 교단에 서고 있다. 그리고 내가 발령받은 학교에도 특수교사와 특수학급이 있고,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같은 교실에서 수업받는 통합학급이 있다. 그리고 몇 달 전, 장애 학생이 내 수업 시간에 배운 노래를 조용한 교실에서 크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학생에게 나는 말을 걸었다.


  나: 00아 아까 불렀던 거 뭐야? 무슨 노래야?

  학생: 네아나자

  나: 넬라판타지아? 00이 잘 기억하고 있네
 

   이때 그 학생의 대답을 듣고 교실에서 비아냥거리는 등의 행동을 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나와 너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수업을 하고 내 자리로 돌아와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바뀌고 있구나... 다행이다.’ 이 생각과 함께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가 수업 시간에 잠시 가르쳤던 노래 <꿈꾸지 않으면>을 수화로 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수업해 본다면, 청각장애인에 대한 비장애 학생들의 인식이 좀 더 좋게 고취될 수도 있을 것 같고, 더 나아가 장애인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생각을 같은 학교 특수교사에게 전달하면서 내 수업 시간에 <꿈꾸지 않으면> 노래를 학생들에게 수화로 알려주실 수 있는지 여쭤봤고, 특수교사는 흔쾌히 나의 제안을 수락해 주셨다.

  

   수화 수업을 시작하면서 우리 학교에 특수 선생님과 특수학급이 있다는 것을 통합학급에 속하지 않은 비장애 학생들에게 알려주게 되었고, 놀라운 사실은 학생들 중 우리 학교에 특수학급과 특수교사가 있다는 것을 아는 학생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수화 수업을 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특수학급과 특수교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특수학급 교실에는 수화 수업을 받았던 학생들이 자주 모습을 비추고 있다는 말을 특수교사로부터 전해 듣게 되었다. 한 시간의 수업을 통해서라도 비장애 학생들이 특수학급 교실을 이전보다 가까이할 수 있고, 자연스레 특수학급에 있는 장애 학생과 대화하고 함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다 얼마 전, 한 학급의 수업 시간에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 여러분, 잠시 선생님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학생들: 선생님 첫사랑이요?

  나: 아니, 말 그대로 선생님 이야기

  나: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참 부러워요

  학생들: 네? 뭐가요?

  나: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으니까

  학생들: 저희가 어린 거요? 교복 입는 거요?


  나: 아니, 여러분들한테 부러운 게 뭐냐면 바로 건강입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이미 눈치챈 학생들도 있겠지만, 선생님은 몸이 좀 불편하거든. 선생님이 어릴 때 심하게 아팠는데, 그 이후부터 왼쪽 몸에 마비가 와서 왼쪽 몸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자연히 걷는 것도 잘 못 걷고 말도 잘 못 했어. 그런데, 정말 열심히 재활치료 물리치료받고 20년 넘게 말하고 걷는 걸 나 혼자 습관적으로 연습해 오면서 지금 여러분들이 보는 선생님의 모습이 되었어.


   그런데, 사람이 이제 좀 남들 사는 것처럼 사는가 보다 싶을 때쯤에 갑자기 오른쪽 눈이 안 보이게 되었어. 그땐 정말 희망이 보이지 않았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남들 해 보는 건 다 해보고 죽어야겠다는 그런 오기가 생겼고, 안 보이는 눈을 보이게 하기 위해서 정말 독한 약 먹으면서도 임용고시 공부를 했어.


   아파서 도저히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몸이 안 되었기 때문에 누워서 공부했고, 결국 합격해서 지금 여러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들이 뭘 하든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 봤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몸이 불편해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의 몇 배는 더 시간 걸렸는데, 여러분들은 걷는 연습 말하는 연습 안 해도 되잖아요. 얼마나 감사한 거니? 그러니까 여러분들, 나도 했는데 여러분들이 왜 못 합니까? 충분히 다 할 수 있습니다.


   정말이에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 봤으면 좋겠어. 혹시 만약에 인생을 살다가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음악선생님도 했는데 나라고 왜 못 해?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해 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수업하다가 불편한 모습이 보이더라도 우리와 조금 다른 모습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해해 줬으면 좋겠고, 여태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선생님이 정말 최선을 다 해서 수업할게요. 마지막으로 여러분들한테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

  

  학생들: 네

  나: 선생님이 여러분들처럼 학생이었던 시절에는 우리나라에서 장애에 대한 인식이 참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들 하지만 선생님이 느끼기엔 여전히 차별 아닌 차별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엄청 많이 불편한 게 아닌데도 그런 게 느껴질 정도면 선생님보다 훨씬 더 불편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차별을 느끼면서 살아갈까요?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분들한테 부탁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성인이 되면, 그때는 편견 없는 사회를 여러분들이 만들어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그 반에 있는 모든 학생들이 나에게 큰 박수를 보내줬다. 박수를 받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박수를 보내주는 학생들을 보면서 내 마음속에서는 뭔지 모를 뜨거운 느낌이 몽글몽글 올라왔다. 또 어떤 학생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울었는데, 이야기가 끝나고서도 계속 우는 그 학생을 보면서 내 마음속 뜨거운 느낌이 더 벅차올랐고, 이내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목이 메어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수업을 이어 나갔다.


   그날 이후 그 학급의 한 학생이 교무실로 나에게 찾아와서 손으로 직접 쓴 편지 한 통을 건넸다. 편지에는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 덕분에 여태까지 포기하고 있었던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되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이 학생이 내 말을 정말 귀담아 들었구나. 그리고 내가 이 학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여태까지 학생들 앞에 서서 수업해 왔던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한 후에 박수를 받았을 때 내가 안간힘을 써서 참았던 눈물이 학생에게 받은 편지를 읽으면서 기어이 터지고 말았다.

  

   이후 나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나의 수업 시간에 잠시 몇 분이라도 내 진심을 고스란히 담아 이야기했을 때 그 말을 들은 학생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통합교육이 결코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서 함께 할 수 있음을 비장애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 다 같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에 나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감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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