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말을 빌려 내 말을 한다. 말의 신용을 서로 빌리고 쓰는 대화 시작
예술가는 쓸데없는 생각을 요리조리 굴려 작은 눈덩이가 커지듯 계속 잡생각을 키워 나가는 존재라고 했나? 그러고 논다고 했나? 모르겠다. 여하튼 그런 사람은 다 스스로 예술가라 한다. 아무렴 어때. 나는 내 속에 예술성이 폭발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으니 어제의 잡생각 중 가장 그럴싸하게 커진 놈 하나를 골라 써봐야겠단 마음을 먹었다.
최근 왓챠 플레이에서 미국 드라마 '뉴스룸'을 정주행 했다. 국제 정세에 해박한 엘리트 저널리스트를 다룬다. 그들은 뉴욕에 살며, 온갖 주제에 대한 시사 상식이 해박하다. 그리고 팩트 체크에 굉장히 능하다. 이들의 삶을 긴장감 있게, 때로는 처절하고 애틋하면서 유치하게 그려낸다. 스토리라인은 다소 유치하나, 다른 요소가 풍부해 볼 만하다.
나는 이 미드를 보면서 '인용의 근원은 어딜까?'라는 고민을 했다. 누군가의 말을 빌려서 시작한 정보는 어딘가 근원이 있지 않을까? 과학적, 이성적으로 분석하면 당연히 근원을 찾아낼 수 있겠지. 그 많은 말들의 근원은 어디인가! 이런 잡생각에 빠져 요리조리 나만의 공상에 빠졌다. 미드 '뉴스룸'에도 나온다. 매력적인 경제 전문 앵커 '슬로언'은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는 누출 사건을 뉴스에서 다룬다. 경제학 박사에 수많은 경제 전문 팔로워를 거느린 명석한 그가(심지어 일본어도 구사한다, 그 덕분에 사건이 발생했지만)
사건은 이렇다. 뉴스 진행 중 일본 도쿄 전력 대변인이 실제 방사능 누출 단계보다 낮춰서 말하자 슬로언은 발끈한다. 일단 그녀는 대변인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으며, Off the record에서 실제 단계는 높다고 듣은 바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방송 중 흥분한 슬로언은 이성을 잃는다. 급기야 일본어로 질문을 던지고 방송사고를 낸다. 방송이 끝난 뒤 편집장은 극도로 분노하며 정직을 내린다.
잘 모르는 우리가 봤을 때 정말 큰 잘못인가? 분명히 진실을 말한 거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순진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가 한 잘못은 '미국 방송'에서 '미국 앵커'가 '미국 사람들'에게 방영하는 뉴스 중 일본어로 진행했다는 점, 대변인은 방송 상에서 그렇게 말한 적 일절 없으나 슬로언이 일방적으로 우기고 스스로 일본 도쿄 전력의 대변을 말해버린 점이다.
여기서 아나운서의 역할을 알 수 있다. 아나운서는 절대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아니 아낀다고 하는 게 맞겠다. 방송에서 나온 말만 전하며, 공신력 있는 기관의 자료, 논문 그리고 통계 등을 빌려 전달한다. 자신의 의견이라기보다 "'누가 ~~ 라 했다'라고 하더라"라고 전달만 한다는 점은 알 수 있다. 이 장면을 통해 난 도대체 인용이란 어떤 거지? (학문적, 정치적이 아닌) 오로지 나만의 주관적인 잡생각을 굴렸다.
내가 무엇을 인용한 적이 있을까? 하고 돌이켜보니 예전 토론 모임에서 책에서 읽은 내용을 인용한 적이 있다. 나는 주로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편이라 보통 책에 나온 내용을 빌려 무언가를 주장한다. 아마 예술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온 인용구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 유명 소설가 김영하의 "예술가가 되지 못할 천 가지 이유가 있더라도, 예술가가 되어야 할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예술가가 되어야 합니다."와 미국 택시 기사의 연극배우 투잡을 예시로 든 바 있다. 모두 김영하가 강연과 책에서 했던 말이고, 지금 기억난 건데 아마 우리나라 예술 문화 발전을 위해서 우리 스스로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중 인용했던 것 같다. 이렇게 유명 소설가의 말을 빌리자 모두 반응이 "오, 이 사람 좀 아는데? 그래? 김영하가 그렇게 말했나 보군. 그렇다면 조금 생각해볼 만해"라고 여기는 듯했다.(모든 게 내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위 경험을 통해 인용의 효과를 알 수 있다. 내 말은 남에게 씨알도 안 먹힌다. 왜냐? 난 유명하지도 않고 변변찮은 보통 사람이니까. 내가 하는 말은 근거가 부족하고 전혀 믿음직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내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무엇이냐? 비슷한 주장을 했던 지식인이나 유명인 혹은 자료를 빌려 입히는 것이다. 마치 로켓에 3단 연료 시스템과 같다. 힘을 보태주는 거겠지.
또 생각해보니,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참 많은 인용을 했다. "우리 엄마가 말하기를 ~, 우리 삼촌이 말해줬는데 ~"라는 레퍼토리. 어릴 때는 주변 어른의 말과 권위를 빌려 친구에게 말한다. 그러면 친구들은 "오, 그런 어른이 말할 정도면 정말 사실이겠다."라고 여긴다. 정말 어릴 때부터 우리는 서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나 출처를 바탕으로 말을 빌려 사실이나 자신의 의견을 전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인용은 언제부터 했을까?라는 생각으로 확장되었다. 쉽게 찾을 수 있다. 기독교인이 조금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성경이 그렇지 않을까? '하느님이 말씀하시길~'하면서 인간을 넘어선 어떤 초월적인 존재의 말을 빌려 이야기하니 가장 강력하고 원초적일 수밖에. 따지고 보면 우리네 삶은 인용의 세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겠다. 경영학 출신은 '피터 드러커(경영학의 대부)가 전하길~ ', 경제학도는 '애덤 스미스(경제학의 대부)가 전하길~'등 산업별, 직업별 저마다 권위자가 있고 우리는 그 권위자의 지식과 말을 인용하면서 살아간다. (끝판왕은 물론 예수님과 부처님, 하나님이겠죠)
다행인 점은 인간이 한편으로 의심의 동물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꼭 확인해봐야 한다. 내 말이 맞는지 확인하고, 네 말이 맞는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아무리 권위가 높은 말을 빌렸다 하더라도 내가 스스로 증명한 말만 쉽게 믿어준다. 예전부터 과학자들이 정말 그랬다. 거의 미친 능력자들이다. 맞는지 틀린 지 자기 몸을 써가면서 증명하니까. '해보니까 아니던데? 누가 ~하면 ~가 된다며? 아니잖아? 나 죽어가고 있잖아! 과학자들이 인간은 이성과 비판, 의심의 동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면, 반대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실용서와 자기계발서라 생각한다. 누구처럼 00일만 하면 성공한다. 100억 모은다 등 근거 없는 권위자 (혹은 스스로 권위자가 되어) 사람들을 현혹한다. 쉽게 증명할 수 없는 애매한 '운'이라는 요소를 너무나 쉽게 써먹고 판매한다.
여기까지 글을 쓰며, '그래서 이 글은 뭘 말하는 거예요? 인용이 나쁘단 거요? 좋단 거요? 성경이 최초의 인용이라고 주장하는 건가? 아니면 실용서는 나쁘다는 건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난처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아니요, 그런 거 없어요. 애초에 잡생각이라 그냥 한번 써봤어요. 시간 뺏어서 미안합니다."라고 답하는 수밖에. 가만! 나도 적당히 말조심, 글 조심해야겠다. "박성현이 그러던데, 성경은 하느님 말씀을 인용한 거고, 최초의 인용을 했단 증 거래."라고 하면 오해받기 십상이니.(제발 이 글이 인용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