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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르도 May 17. 2018

북저널리즘 노동 4.0 서평

결론이 아닌 과정이 부러운 독일

가상의 노동 4.0 이야기? 그러나 벌써 코 앞에 펼쳐진 현실


A 씨는 스타트업 백엔드 개발자다. 1년의 절반은 사무실로 출근하고, 나머지 절반은 원격근무로 일한다. 물론 출근 날짜는 매 달 미리 정하며 총 출근일수만 합산하면 된다. 원격근무를 할 때는 Slack과 구글 캘린더로 업무 시간을 알린다. 지금 그는 발리에 있다. 발리의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코코넛 주스를 마시면서 맥북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근무시간 및 배당받은 업무가 거의 끝나가 얼른 서핑을 하러 갈 준비를 벌써 마음속으로 하고 있다.

B씨도 스타트업 백엔드 개발자다. 자유 출퇴근제와 탄력근무제 말은 비슷하고 언뜻 다른 그런 제도를 가진 회사다. 사실상 출근은 자유롭지만 퇴근은 알 길이 없다. 퇴근하려고만 하면 서버에서 일이 터진다. 어제도 새벽 3시까지 복구하고 업무 시간을 알린 뒤 오늘 늦게 오후 1시에 출근했다. 곧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원했던 발리다. 반드시 맥북은 챙겨야 한다. 신혼여행 중 언제든지 서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휴양지에서도 무선 인터넷과 업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다. 요즘 회사와 가정이 구분이 안된다. 자유 출퇴근제인데 일이 출퇴근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그를 따라다닌다.

위 두 명의 가상 인물은 다른 상황에 놓여있지만 같은 시대의 모습이다. A 씨처럼 살수도 B씨도 살 수도 있다. 개인별 원하는 바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글쎄 어떤 모습이 주류가 될까?

독일은 노동을 신성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신중하다.

북저널리즘의 노동 4.0은 이런 상황을 걱정한 독일에서 나온 말이다. 책은 독일의 노동 4.0 백서를 요약 설명하고 그 뒤 저자가 생각하는 한국이 취해야 할 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다. 독일은 노동이 신성한 사회다. 노동 없는 기본소득 사회가 아닌 전 국민 모두가 건강한 노동을 하고, 사회에 일정 부분 기여함으로써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놀라운 점은 노동 4.0 백서가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보고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 공기업, 대기업, 분야의 전문가, 일반 시민(노동자)까지 사회 각계각층에서 광범위한 토론을 한 결과물이다. 형식적인 조사가 아닌 대대적인 토론으로 앞으로 디지털화로 바뀔 독일의 노동에 대한 대책을 그려나간다.

디지털화는 많은 것을 앗아가고 바꾸고 또 새로움을 제공할 것이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각종 플랫폼이 나타났다. 인공지능 개발에 탄력이 붙었으며, 또한 크라우드 소싱이라는 새로운 노동체계를 만들었다. 이익창출을 위해 직접 고용하고 일정한 일거리를 주고 급여를 주는 게 아니라 서비스를 위해 다수의 프리랜서가 붙어 해결하고 급여도 프로젝트별로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원격근무 및 재택근무를 가능하도록 도왔다. 과거 조상들이 그린 과학 유토피아에 한 발짝 더 다가선 듯하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원격근무, 크라우드 소싱의 이면에는 B 씨와 같은 사례가 허다하고, 적은 급여를 받는 단순 서비스 노동자 우버 드라이버, 배달의 민족 라이더,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나타난다. 누구나 부업을 해볼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진입장벽은 낮고, 플랫폼에 의존한 저가의 새로운 디지털 단순 노동자가 나타날 수 있다. 이는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다. 오히려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독일은 그래서 고민한다. 디지털 물결로 인해 노동이 건강할 수도, 아니면 허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로 인해 일자리를 잃거나, 시장에서 외면받지 않도록 어떻게 재교육하며, 거대 독점 플랫폼은 어떤 식으로 과세를 해야 옳을지, 끊임없이 업무가 따라다닐 수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일과 개인의 삶을 어떻게 구분 지어 삶을 윤택할 수 있게 만들지, 급격하게 증가하는 프리랜서와 1인 기업을 위해 어떤 제도를 마련해야 할지 다양하고 깊게 철저히 노동자의 입장에서 고민을 한다.

반면, 한국은 유난 떨기를 잘한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길 때 ‘이제 우리 모두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뺏기는 거야?’라고 두려움에 떨고, 정부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빅데이터', '크라우드 소싱'이란 말만 붙은 지원 정책을 펼친다. 애초에 질문조차 제대로 한 적 없이 뒤처질까 봐 얼른 따라 시행만 하는 셈이다.

질문하고 토론하자.

마지막 저자의 의견에 많은 부분을 동의한다. 많은 부분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떠올랐다. 지방 자치,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도시 구조, '개인' 단위에서 시작하는 질문, 그리고 사회 각계각층의 구성원들 모두 모여 토론하고 고민하면서 방향을 제시하고 나아가는 것. 


아직 누구도 정답을 모른다. 다만 올바른 풀이과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수학 공부와 같다. 정답 맞추기가 아니라 풀이과정이 중요하지 않을까?) 실행 후 방향을 선회하는 것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방향을 제대로 잡길 바란다. 방향 설정에는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독일의 노동 4.0을 읽고 배울 점은 노동 4.0이란 결과물만이 아닌 독일이 이런 대대적인 노동 대책 가이드를 내놓을 수 있었던 과정이라 생각한다. 난 그 과정이 이미 부럽다.  


마지막으로 보는 독일의 노동 철학 (밑줄 친 구절)


“직업을 가지고 노동 시장에 참여한다는 것은 단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재화를 벌어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직업과 노동이란 한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성, 사회적 인정과 관계의 핵심을 구성하며 그런 의미에서 한 개인의 삶과 역사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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