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르도 Sep 27. 2018

슬립노모어, 당신을 잠 못 들게 할 이 시대의 공연

현대의 멕베스 '슬립노모어'

나의 짧은 공연 경험 이야기


나는 그다지 썩 좋은 문화 소비자가 되지 못한다. 지금까지 공연을 접한 건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내 기억 속 까마득한 구석까지 찾아보면 중학생 때 졸면서 음악 수행평가를 위해 억지로 들었던 동네 클래식 공연이 있고, 그 이후 20살 대학로에서 처음 접한 라이어가 있다. 한국에서 연극은 아마 딱 두 번 봤다. 그것 중 나머지 하나는 기억조차 안 난다.


하지만 단 하나, 소중하게 간직한 공연 경험이 있으니 영국 런던에서 본 '레 미제라블'이다. 물론 현지 분위기에 더욱 취해 정신을 못 차린 점도 알고 있다. 세계 공연 문화의 중심지 런던에서 레 미제라블 공연을 보다니, 무대 바로 밑에서 곡을 실시간으로 직접 연주하고, 배우들의 명연기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얼레?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극장이 매우 작았다. 잘못 들어간 것인가 싶어 여자 스태프에게 물어봤더니 확실한 영국 발음으로 확실하게 여기가 공연장이라고 했다.


공연은 정말 알찼다. 아니 스토리부터 몰입도, 연기, 무대 구성까지 완벽에 가까웠다. 작은 무대에서 적절한 무대 장비와 연출 효과로 현장감을 더욱 살렸고 배우들은 공간 하나하나 알차게 활용한 동선에 맞춰 움직였다. 공알못(공연을 잘 알지 못하는) 나의 눈에도 이 무대는 정말 훌륭했다. 공연 내내 소름이 돋았고, 끝나고 사람들과 함께 감격에 취해 기립박수를 보낸 기억이 있다. 이것이 연극 강국의 레미제라블이구나 하며 절로 흥에 취해 공연장을 나왔다.


다시 서평으로 돌아와, 책 '슬립노모어'에 대해서


탁월한 저자 덕분에 더욱 풍부해진 슬립노모어 이야기

슬립노모어라는 공연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음에도 자연스럽게 폭넓은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공연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펀치드렁크라는 영국 극단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펀치드렁크가 슬립노모어를 기획할 수 있었는지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공연에 대한 기대는 키우고, 영국 연극 문화와 정책까지 맛볼 수 있는 정보를 다룬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런던의 레미제라블 공연에 취했던 나를 합리화 해주는 좋은 내용이랄까.


무엇보다 책 내용에 적절한 사례와 논문을 발췌해 이해도를 높였다. 특히 슬립노모어를 만든 곳이 인상 깊은 부분은 세계 어느 나라의 극단이 아닌 영국 극단일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부분이다. 연극 문화의 선진국답게 다양한 시도를 하며, 더 이상 관객을 기존의 개념인 학습시키고 정보를 주입해야 될 객체가 아닌 동등한 존재로 인식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런 변화가 점점 관객의 경험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연을 기획하도록 이끌었으며 그 결과 슬립노모어라는 획기적인 시대의 작품이 탄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슬립노모어는 현대의 콘텐츠가 가져야 할 개인성과 차별성, 특수성을 지녔다

슬립노모어의 성공 원인은 어째 다른 형태의 콘텐츠들과 일맥상통한다. 최신 비디오 게임은 더 이상 유저에게 일정한 조건의 미션을 제공하고 이를 깨도록 하게 유도하지 않는다. 더 이상 NPC와 되풀이하지 않아도 되고, 내려준 미션을 깨야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다양한 결말을 준비하고 여러 갈래의 스토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유저가 게임 세계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나만의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는 개인성과 차별성, 특수성을 충족시켜준다. (예시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슬립노모어는 기존 연극과 달리 관객의 존재가 중요하다. 배우와 소품에 마음대로 가까이 다가갈 수도, 심지어 만져 볼 수 있다. 게다가 그런 행동을 취하는 관객을 다른 관객이 감상할 수 있다. 500명이 슬립노모어의 호텔에 들어가 연극을 감상하고 나와도 저마다 500개의 관람 경험을 갖고 나올 수 있다. 바로 옆 관객과 연극을 관람해도 그와 다른 인상과 경험을 가질 수 있다. 


결론, 슬립노모어는 멕베스라는 고전을 현시대의 부름에 적절히 감응한 작품이다

지난 북저널리즘 책 중 '사라진 독자를 찾아서'에서 디지털 콘텐츠의 2가지 특징을 설명한다. 구술성과 상호작용성이다. 디지털 시대의 관객은 더 이상 일방적인 공연 관람 경험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경험은 우리 집에서도 충분히 갖추면 가능하다. 그렇기에 예전보다 드라마와 영화를 훨씬 재밌게 더욱 적극적으로 집에서 시청한다. 


연극이 가진 현장성을 통한 생생함을 슬립노모어는 색다른 방식으로 끌어올린다. 현장에서만 제공할 수 있는 경험을 극대화한 슬립노모어는 디지털 스트리밍으로 관람해봤자 소용이 없는 연극이다. 아니 오히려 불가능하다. 슬립노모어는 좀체 극장을 찾지 않던 잠재 관객까지 모조리 끌어당긴다. 피할 수 없다. 디지털 시대와 개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슬립노모어는 또 다른 멕베스다.


밑줄 친 구절


슬립노모어는 디지털 시대의 관객들이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찾아오는 공연이다. 보고 싶은 이벤트 그 이상을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다. P.8


디지털 시대의 관객을 만족시키려면 참여를 한다는 사실만으로 부족하다. 모든 관객에게 얼마나 더 생생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지가 연출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P.9


영국의 예술계는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위기가 아닌 기회라고 선언하고, (중략). P.16

준비된 자일수록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회라 여긴다는 점을 또다시 확인한 문장이다.


결론적으로 영국 정부는 예술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하는 기본권이자,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예술은 자아와 자신의 삶을 이해하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교육한다. P.19


더 흥미로운 사실은 관객이 다른 관객의 행동도 관람하고 있다는 것이다. 슬립노모어에서는 관객의 행동도 공연의 일부가 된다. P.41


펀치드렁크의 공연에는 관객 참여를 강조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간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개인성과 특수성, 차별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P.91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에는 실리콘밸리, 중국에는 선전(심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