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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르도 Oct 21. 2018

이건 좀 힙스터랑 다른데, 다시 을지로야

어떻게 보면 앞으로 서울의 모습에 대한 한 가지 대안. 을지로의 변화

내가 처음 본 을지로


2016년 서울에 올라와 처음 을지로를 방문한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대구에서 친구가 올라와 어디 가볼까 찾던 중 알게 된 을지로 노가리 맥주 축제, 노가리가 천 원 맥주 한잔에 천 원이라는 블로그 정보에 혹해 발걸음을 향하였다. 사실 온라인이나 각종 매거진에서 '을지로의 재탄생', '숨겨진 핫플레이스'등으로 서울의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많아지고 덩달아 괜찮은 카페와 식당이 늘었다는 사실 정도만 들었다. 서울이 아직도 꽤나 낯선 나에게 을지로보다는 성수동이, 성수동보다는 가로수길, 경리단길이 더 익숙하고 멋져 보였다. 


을지로 노가리 맥주 축제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대구 사람이라면 알 '북성로'와 흡사한 거리, 즉 공구상과 소규모 제조업이 즐비한 낡은 골목에 가판을 깔아놓고 질기고 튼튼한 노가리를 열심히 씹어대며 맥주 한잔을 마셔보니 새삼 참 신기했다.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내가 알고 상상하던 서울이 아닌 다른 모습도 다양하게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참고로 북성로와 비교했는데 이 곳도 꽤 좋다. 북성로 불고기와 우동, 그리고 소주는 대구 사람이라면 거의 아는 아주 익숙하고 맛난 조합이다)


그동안 역사 속 잊힌 서울의 한구석


2010년보다 벌써 2020년이 더 가까운 올해의 2018년의 서울은 예전보다 더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갈수록 복잡해지겠지. 타 지역에서 올라온 한 사람으로서 서울을 바라보면 서촌과 북촌의 유명한 한옥 마을과 경복궁 등 옛 궁궐 그리고 높은 빌딩이 즐비하고 IT 산업의 선두지 강남대로와 테헤란로는 어쩌면 같은 도시 안에 있는 게 맞을까 하는 정도의 차이를 보여준다. 게다가 곳곳에 재발견되는 지점이 늘고 있다. 이미 젠트리피케이션 단계를 지나 글로벌 브랜드의 필수 정류장인 가로수길, 그리고 비쌀 대로 비싼 경리단길부터 이태원, 한남동, 익선동 등 다양하고 힙한 스팟이 즐비했다.


근데 왜 북저널리즘은 을지로를 다뤘을까? 하고 생각하니 평소 서울을 다니며 느낀 갈증과 어쩌면 비슷한 원인인 듯하다. 위에 이야기한 서울은 사실 서울 자체를 이야기하기에는 파편적이다. 역사적으로 따로 논다는 느낌이랄까. 좋고 나쁘고를 떠나 스토리가 없고 조화(하모니)가 느껴지기 어렵다. 북촌은 옛 서울의 일부분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곳이고, 강남은 서울의 미래를 이끌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북촌에서 현대 서울을 느끼기 어렵고, 강남에서 옛 서울과 조화를 이룬 현대상을 보기 어렵다. 각자 나름의 서울을 제시하지만 그것이 마치 연결되지 않은 서로 다른 서울이랄까.(역시 설명하기도 생각하기도 어렵다)


다시 을지로로 돌아와, 책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을지로는 서울의 근대 제조업 메카였고 아직도 많은 제조 장인들이 현역으로 뛰고 있다. 출판업도 많이 힘들지만 여전히 인쇄하면 을지로를 방문하고 있다. 낡은 만큼 임대료가 저렴해 젊은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며 작업에 필요한 제조 기술과 인쇄 등을 이웃 장인들에게 의뢰해서 해결한다. 또한, 무엇보다 기존 주거민보다 훨씬 어린 이주민은 기존에 있던 이웃의 윗 세대를 존중하고 최대한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이런 흐름에 맞춰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식당과 카페가 하나둘 생긴다.


을지로를 제외한 다른 골목들의 변화는 서로 다른 점을 찾기 어렵다


을지로의 재발견에서 주목할 점은 기존 골목의 역할과 주거민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사실 요즘 핫하다는 곳들, 한남동, 이태원, 가로수길, 경리단길, 이제는 심지어 성수동마저 기존 골목의 느낌보다는 요새 인스타 감성에 충족하며 인싸들을 위한 공간으로 일방적으로 개편된 느낌이다. 


서울에 와서 첫 1년은 즐거웠다. 새로움을 맛보고 사진 찍기 바빴다. 하지만 결국 어딜 가도 다른 점은 없었다. 즉 1년 만에 질려버렸다. 각 골목의 개성을 살린 가게는 보기 힘들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스타 감성의 브런치 카페와 이자카야 그리고 음식점들만 즐비하다. 그곳만의 개성과 이야기, 현재로 이어지는 역사를 즐기기 어렵다. (최근 경주 황리단길에 놀러 갔다가 서울의 어느 골목과 전혀 차이점이 없어 깜짝 놀랐다. 물론 건물은 한옥이나 그 구성은 천편일률적이다)


을지로는 힙스터 골목이 아니다. 서울의 가장 보통적인 골목이다.


언뜻 변화하는 을지로 또한 힙스터들의 방문지로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을지로의 변화는 조금 다르다고 밝힌다. 보통 사람들이 보통으로 살기 위한 소소한 도전을 이어나가는 곳, 보통 기술자들이 오랫동안 보통의 공구상과 공장을 운영하던 곳, 그리고 그 속의 조용한 예술가들이 지내는 곳에 가깝다. 그들이 공존하기에 역사의 흐름이 느껴지고 이야기가 숨 쉬고 있어 재미가 있다. 만약 을지로가 이른바 뜬다면, 다른 서울의 핫플레이스처럼 점점 비슷해지지 않을까. 


무엇보다 제조업의 분위기와 기존 상권을 해치지 않고 자신들만의 조그만 도전을 이어나간다는 점, 이웃을 배려하고 서로 티 내지 않으나 뒤에서는 응원하고 도와주는 을지로만의 귀여운 점이 책에서 느껴져 훈훈했다. 그리고 주인장들과 젊은 예술인들이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을지로를 위한 길을 선택하려 한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산업화 시대의 상징이던 을지로가 기술과 예술이 어우러진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의미를 찾는 을지로를 응원하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서울이란 도시의 개성을 뚜렷하게 만들고,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며 이어나가는 재밌는 서울로 바꿀 것이라 믿는다.


을지로만은 다른 골목처럼 변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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