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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르도 Oct 13. 2018

신선하고 곱디 고운 전시회, 니키 드 생팔

한국, 니키 드 생팔 전시회 감상

예술의 전당에서 니키 드 생팔 전시회를 다녀왔다. 이전에 알고 있던 예술가는 아니고, 단순히 여자 친구가 궁금하다고 해서 방문했다. 보통 내 예술 소비와 경험은 무작위에 충동적이다. 예술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관심만 가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니키 드 생팔은 프랑스 여성 작가다. 요약하자면 사격 회화와 나나(Nana)로 유명한데 여기서 사격 회화란 정말 총을 쏘면서 회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니키 드 생팔은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성폭력과 억압을 받은 탓에 치료를 받는다. 이때 미술을 통한 치료를 했는데, 뒤늦게 배운 미술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사격 회화는 니키 드 생팔 자신을 억압했던 모든 것을 향해 총구를 겨눈 예술이다. 캔버스 같은 판에 각종 오브제를 붙이고 난 뒤 페인트 통과 물감 통을 설치한다. 그리고 조금 떨어져 총으로 페인트통을 쏘면서 색이 튀고 흘러내리며 작품이 완성된다. 오브제를 가만히 살펴보면 별게 다 있다. 인형부터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오브제가 있는데 왜 해당 오브제들을 선택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사격 회화란 방법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와 억압하는 세상을 향해 통쾌하게 복수했다는 사실은 느껴졌다.


나나는 사격 회화 다음에 주로 작업한 조형물이다. 사격 회화 이후 니키 드 생팔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사격 회화를 통해 상처를 확인하고 꿰맸다면 나나를 통해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관을 표현한다. 통통하고 동그란 육체를 지닌 나나는 마치 옛날 남미의 비너스상을 떠오르게 한다. 나나는 풍부한 여성성과 동시에 아름답고 화려한 색감을 자랑한다. 마치 니키 드 생팔이 자신의 여성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밝고 긍정적인 색감을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심리와 예술관을 나나로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그 밖의 인상 깊은 작품들로 그녀가 주고받았던 엽서들, 일본 불교문화에 영향을 받은 거대하고 화려한 부처상, 그리고 타로 공원이다. 주요 작품들을 보면 니키 드 생팔이 얼마나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지 알 수 있었다. 나나와 밝은 색감을 사용한 작품에는 장 탕겔리의 영향이, 부처상과 다양한 엽서에는 절친이자 든든한 지원자 요코 마즈다 시즈에의 영향이 눈에 띄게 보였다.


사격 회화와 이전 작품들은 홀로 상처를 보듬고, 자신을 둘러싼 벽을 부수는 작업이었다면, 나나라는 작품은 반대로 동적이고 화려하다. 니키 드 생팔이 장 탕겔리와 교류하며 안정감을 느끼고, 자신의 여성성에 대해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나는 탄생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거대한 부처상과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은 다채로운 작품들은 요코 마즈다 시즈에를 만나지 않았다면 존재하기 힘들다. 작가의 재능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따라 작품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모든 예술가에게는 정신적, 물리적 지지자들이 존재한다. 고흐에게는 테오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에게는 디에고 자코메티가, 그리고 니키 드 생팔에게는 장 탕겔리와 요코 마즈다 시즈에가 있었다. 그들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아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 수 있었고 든든한 지지로 자신의 예술관을 뽐낼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새삼 내 옆에서 전시를 함께 구경하는 사람의 존재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다.


니키 드 생팔 전시회는 꽤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전기부터 후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골고루 배치하였고 니키 드 생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충분히 배우고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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