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선생 덕분에 이탈리아에서 소형 수동차를 운전하다
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좋아한다. 하릴없는 주말 낮에 침대에 누워 그의 에세이를 읽는 것을 좋아해 몇 번을 반복해서 읽은 적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로마에서 한동안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로마에서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를 집필했다. 돌아와, 로마 생활에 대한 에세이 중 그가 로마에서 처음 운전을 하기 시작했고, 그 뒤 자동차와 운전에 재미를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를 읽는데 거칠고 산만한 로마 시내 운전자들과 함께 작은 차의 기어를 슝슝 바꿔가며 달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22년 9월에 이 상상을 현실로 이뤄볼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 웨딩 스냅 사진을 찍을 겸 2주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여행 일정 중 7일간 차를 빌려 이탈리아 중부와 북부 지역을 돌아보기로 했고, 렌터카를 알아봤다. 물론 소형 수동차가 압도적으로 저렴했기에 선택한 것도 있었지만, 마음 속 깊이 나도 하루키 선생님처럼 조그마한 차의 기어를 슝슝 바꾸며 이탈리아 도로를 달려보고 싶은 욕심이 컸다. 아내는 수동 운전을 할 줄 몰랐다. 내가 운전을 전부 해야 한다는 부담과 수동 운전마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걱정 때문에 고민했지만 난 당차게 수동 운전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렌트한 차는 피아트의 판다였으나, 실제로 제공한 차는 같은 급인 란치아의 입실론이었다. 둘 다 우리나라의 스파크나 모닝 같은 차라고 보면 된다. 그전에 열심히 유튜브로 피아트 판다 수동 운전 영상을 보고 이미지 트레이닝했던터라 조금 당황했지만, 옆에 있는 아내를 위해 내색하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기 위해 시동을 걸었는데, 작은 차의 연약한 엔진답게 부릉 귀엽게 시동이 걸렸다. 자신있게 1단 기어를 넣자마자 시동이 꺼졌고, 아내는 사색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애써 괜찮은 척 ‘오랜만에 수동차 시동을 거니까 묘하네~ 곧 적응하겠지’라며 말하고는 위태롭게 뒤뚱뒤뚱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주차장에서 나오자마자 교통지옥이 펼쳐지고 머릿속이 정말 새하얘졌다. 익숙하지 않은 도로 시스템에 성질 급한 이탈리아인 운전자들, 그리고 좁고 복잡한 골목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난 네비게이션을 보며 소리를 빽빽 지르며 예민하게 굴고, 아내는 또 화가 나 소리를 지르며 조수석에서 운전 지시를 했다. 이때는 정말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피렌체 밖으로 빠져나갔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고속도로에 빠지자 잠깐의 평화가 찾아왔고, 이후 7일간 난 운전 지옥에 빠져 살았다. 7일 내내 식은땀을 흘렸다. 밤에는 피로에 절어 지쳐 침대에 바로 직행했다. ‘아, 내일도 운전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곯아떨어졌고, 아침에 일어날 때면 ‘차에 시동이 안 걸리면 어떡하지’, ‘오늘은 도시에 들어가는 날인데 제발 언덕길이 없어라’라며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살았다. 운전을 하면서도 항시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탈리아어도 못 하는데 여기서 타이어가 펑크나면 어떡하지?’, ‘사고 나지 않게 최대한 운전하자’며 혼자서 끙끙거리며 조그마한 차를 끌고 다녔다. 옆에서 아내는 긴장을 하면서도 이내 내 운전이 숙달되자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신나했고, 열심히 사진 찍고 이탈리아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며 행복해했다. 그런 모습에 만족감이 들었고, 중간중간 여유가 생겼을 때 아름다운 풍경도 감상하며 걱정을 잊는 순간도 있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사고 한번 없었으며, (시동은 자주 꺼트렸다) 무사히 차를 반납했고, 차가 없었으면 가지 못했을 명소와 보지 못했을 풍경들을 마음껏 즐겼다. 이따끔 그때의 여행 사진을 다시 보며 행복해하는 아내를 보며 어쩌면 이게 가장인가 싶기도 했다. (자기가 사서 걱정하는 걸 선택해놓고 말이다)
아무튼 하루키 선생님 덕분에 소형 수동차를 운전해본 이야기를 마친다. 근데 이 글을 쓰다 보니 다시 또 한번 그 수동 운전의 맛이 그립기도 하다. 저출력의 엔진에 동력을 슝슝가하며 요리조리 기어를 바꿔 넣으면서 이탈리아 구석을 누비는 재미가 확실히 있다. 손맛이 느껴진달까. 다음번에도 또 빌려야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역시 인간은 어리석고 미련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