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 최은미, 김금희, 백수린, 강화길, 최은영, 천희란
문학, 책을 좋아한다면서 항상 들고 있는 책은 영미소설/일본 소설, 그리고 소수의 국내 유명 작가들의 책이다.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할 때 드는 생각은 읽고 싶고,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다. 그러니 일단 이미 죽은 거장의 작품, 클래식부터 읽자. 다 읽는대도 한참 걸리는데 무슨 한국 신인작가, 덜 유명한 작가의 책을 새가 있냐.
내 고정관념을 딱 붙잡고 세차게 흔들어버린 기회를 얻었다. 모임에서 어느 한 분이 조심스레 책을 소개했다. 작가의 말에 참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다며 낭독했다. 참신하면서 젊은 시각을 가진 글이었다. 어려운 옛 책과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 이 세상의 아픔과 가려진 이야기를 후벼 파는 이야기들. 젊은 소설가가 바라본 세상의 아픔과 사랑 이야기는 내가 끝내 보지 않으려 했던 틈을 힘껏 벌려 날 고통스러우면서 시원하게 만들었다. 한국에도 이렇게 좋은 이야기가 많구나. 한국 문학의 미래가 기대된다. 내 삶을 이렇게 아름답고 처절하게 바라볼 수 있구나.라는 교훈을 주었다.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묵묵히 글을 쓰는 건 존경스러운 행위다. 아니 남이 알아주지 않는 고통스러운 일을 한다는 건 아름다운 행위다.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아프고 아름답고 슬프지만 조용히 빛난다.
젊은 윤리 남자 선생님과 불우한 여학생 제자, 이를 둘러싼 이야기. 윤리란 무엇인가? 남을 돕는다는 행위는 어떤 건가? 개인과 조직의 시선은 어떻게 달고 판단되는가? 를 다룬다.
‘오히려 상대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들. 그것이야말로 윤리적인 삶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란다.’
‘고개를 숙이는 연주가 무서웠단다. 존나 무서웠어. 무릎을 꿇으니까 더 무서웠다. 그 완벽한 사과의 자세가 무엇을 뜻하는 거겠니. 그게 더 우월해지는 거라고 누가 가르쳤는데. 연주를 따로 불러서 미안하다, 아무것도 미안하지 않은데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그게 더 멋스러운 거라고 바로 내가 가르쳤는데 그걸 연주가 진짜 잘하고 있더구나.’
‘언젠가 나를 짝사랑한 여학생도 있었다고 아내에게 농담한 적이 있으니까. 믿지 않더구나. 진짜 농담으로 여기는 그 가벼움이 나는 좋았다.’
Comments: 옳다고 확신하는 것이 맞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세상 모든 애매한 것들을 다시 한번 경계하게 된다. 세상에 쉬운 건 없구나. 단순한 건 없구나. 난 또 단순하게 살고 있구나. 그래서 참 무섭구나. 세상과 내가. 모두 무서워졌다. 뭐가 옳고 그를까? 옳고 그르다는 건 무엇일까. 감히 내가 무슨 판단을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어릴 적 삼촌에게 성추행을 당해 (질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균에 감염된다. 평생 항생제와 소염제를 달고 살아야 하며, 그때 이후 트라우마를 갖고 현재 자신의 가정에도 알게 모르게 징그러워하며, 폭력적으로 군다. 그리고 그 삼촌의 아들이 집에 잠깐 머문다. 병원이 가깝기 때문에. 그는 곧 죽을병을 걸린 어린 중학생이다.
‘강윤희의 직장에서 강민서 또래의 중학생 아이들은 강윤희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학생이 아닌 그 또래의 아이를 보는 것도, 그 또래에게 누나라고 불리는 것도 강윤희에겐 낯선 일이었다.’
Commnets: 참 징글징글한 이야기다. 어릴 적 당한 성추행 때문에 항생제를 달고 살면서 그녀는 자신에 대해 아예 모르는 남자에게 강렬히 안기고 범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성조숙증에 걸린 딸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데 남편은 커가는 딸과 뽀뽀하고, 안고, 볼을 비비고 지겹게 붙는다. 그녀의 삼촌은 그녀에게 자기 아들을 잠깐 부탁하면서 죄지은 사람처럼 말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큰 벌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게 무슨 난장판일까. 그러면서 얼마나 애쓰는 걸까
평소 알던 희극배우의 아버지 문상을 간다. 대구에 내려가 만난 희극배우와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온다.
‘송은 희극배우가 확실히 나쁘다고 생각했다. 왜 나쁘냐면 지운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뭔가 옛일을 완전히 매듭짓고 끝내고 다음의 날들로 옮겨온 흔적이 없었다.’
‘대체 양주임이랑 뭔 사이예요?’
희극배우가 뭐라고 말했지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라서 송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네? 뭐라고요?’
‘조용히 우는 사이.’
Comments: 모르겠다. 어렵다. 비극인지 희극인지,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뭘 이야기하고 있는 건지. 조용히 우는 사람은 누구고, 조용히 우는 사이는 어떤 걸까? 다시 한번 더 읽어야 할 소설
중산층 가정의 주인공, 재개발을 노리고 달동네로 이사 간다. 자신의 가족과 비슷하지 않은 이웃. 새로 친해진 두 명의 이웃 친구. 그러나 다른 삶.
Comments: 이 소설의 결말은 무엇을 이야기할까? 고요한 밤, 조용히 내리는 눈을 보고, 그 눈송이를 보며 주인공은 ‘와아아’ 하며 가만히 모든 걸 잊고 바라본다. 쉽게 세상의 불편한 면을 잊는 사람을 이야기한 걸까? 도시의 더러움을 가려버리는 하얀 눈, 자연을 이야기하는 걸까? 소설은 이 사회의 문제를 잘 건드리고 있다. 다만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 차이를 나타낸다. 절대 휘어잡거나 확신을 하거나, 강하게 말하지 않는다. 조용히 건드린다.
무섭다. 친구가 실종되고 그녀의 남자 친구와 함께 실종 현장인 호수에 간다. 무엇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가 호수에 뛰어들어간다. 그녀보고 빨리 오라고 한다. 두렵다. 그런데 빠져든다. 미끄러졌는지, 밀렸는지 모르겠다. 물속에 잠긴다.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숨이 가쁘다. 이내 물 밖으로 고개를 든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발견했냐고 묻는다.
Comments: 이 세상 여자들의 두려움을 다룬다. 난 잘 모를 수 있다. 한밤 중 남자가 쫓아온다. 엘리베이터까지 같이 탄다. 여자는 낯선 이가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남자는 번호를 물어본다. 호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폭력의 한 행위로 다가온다. 작가는 이 세상 기준이 모호한 여자의 두려움을 이야기한다. 단 한 번도 직접적인 행위를 묘사한 적이 없다. 독자는 헷갈린다. 그녀의 착각일까, 아니면 정말 그 남자는 여자를 죽이려 들거나, 폭력을 행사하는가. 끝까지 모른다. 답은 없다. 하지만 현실에도 답은 없다. 여자가 느끼는 폭력은 무방비로 언제든 벌어지며, 비슷한 시기, 상황, 인물에 다른 결과가 나온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두더지 머리를 기다리는 마음이다.
이경과 수이의 사랑 이야기. 누구나 하는 그런 어릴 적 푸르고 아픈 사랑 이야기.
수이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에 대해 이경만큼의 생각을 하지 않는지도 몰랐다. 수이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고,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의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 것이 수이의 방식이었다. 수이는 자동차 정비 일을 하면서 그것이 자기 인생에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니까 최선을 다해 수행할 뿐이었다. 반면 이경은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려고 했고, 어떤 선택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알지 못했는데,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결국 후회가 더 크리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Comments: 사회적 조건이 다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경은 중산층 가정에 부족함 없이 자랐다.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해 자유롭고 철없는 어려움만 겪는 생활을 한다. 수이는 변명할 여유가 없다. 선택을 고민할 시간이 없다. 선택을 하면 실천하기 바쁘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낼 수가 없다. 그녀들 간 근본적 차이는 여기서 비롯한다. 자신의 고초를 잘 말하지 않는 수이, 그런 그녀를 답답하게 생각한 이경. 풀리지 않는 숙제다. 수이는 그런 걸 말할 줄 모른다. 아니 그런 걸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아주 모르지 않으면서 겨우 조금 아는 것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는 것을 새삼 떠올렸을 뿐입니다.’
‘어떤 사랑이라도 사랑하는 순간만큼은 특별하다는 사실을 나는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달았지.’
‘천희 란은 소설의 처음부터 전체적 앎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의도적으로 차단한 채, 부분적 앎에 머물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의 비극이 어떻게 허구의 가능성을 낳아 기어코 삶을 이어가게 만들고 진실을 보존하는지, 물러서지 않고 말한다. 군데군데 미봉으로 남아 있는 삶의 불연속선들을 회피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이전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다음으로 밀고 갈 수 있는지, 성장과 진화에 눈먼 생장으로서가 아니라 간직해야 하는 기억을 원동력 삼아 어떻게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것은 어쩌면 생의 불연속선에 맞서 자신의 삶에 책임을 다하려 했던 엄마가 효주와 선생님에게 가장 남겨주고 싶어 했던 삶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Comments: 소설은 편지의 형식이다. 효주와 그녀를 거두어 키운 선생님 간 편지. 양경연 평론가의 말대로, 우리는 소설가가 제공하는 부분적 앎에만 의존해 따라간다. 소설 속 편지를 따라가다 보면 부분적 진실이 드러난다. 선생님과 효주의 엄마의 관계, 죽음에 관련한 비밀. 편지 형식이라 마음에 들었고, 생각보다 놀라웠던 사실이 드러남에도 답답함을 느꼈다. 우리는 소설 속 주인공의 말과 행동, 생각을 직접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그들끼리 주고받는 편지를 통해 부분적으로 느낄 뿐.
이야기마다 던지는 신선한 충격은 다르면서도 같았다. 매번 이야기가 주는 충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같은 부분이고, 충격의 종류가 매번 달라졌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의 젊은 작가를 알게 된 동시에 젊은 작가의 강세가 여성과 페미니즘이라는 것도 알았다. 총 7편의 소설에서 여성의 동성애를 다룬 것이 2편, 여성을 중점으로 다룬 것이 3편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내년에도 변함없이 구매할 것이다. 이 시대 젊은 한국 소설가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가 궁금해졌다. 더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