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아일기

아기와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기-유럽 편

by ama

임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니 출산을 하고 나서도 나는 아이와의 여행에 부정적인 편이었다. 데리고 다니느라 부모는 힘들고 따라다니느라 아이도 힘들고 도대체 누굴 위한 여행이야? 임신을 한 채 유럽 여기저기를 여행했던 건 앞으로 오지 않을 자유로운 여행을 만끽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여행을 왜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자신 있게 무엇 때문이라 확답할 순 없지만 전 남친 현 남편과 나는 여행을 즐겨 다녔다. 대학생 시절엔 국내 곳곳, 사계절의 제주를 모두 가보겠노라 다짐하고 또 실행했고, 직장을 가진 후엔 연차를 모아 해외, 주로 동남아로 떠났다. 신혼여행지 역시 유럽이었다. 여행의 이유는 그냥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 놓인다는 것이 좋아서였던 듯하다. 유럽에서 살게 되면서 굳이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유럽 곳곳을 다닐 수 있으니 그야 말로 물 만난 고기였다. 임신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자 낙심하는 대신 그냥 둘이서 세계 여행이나 다니며 살자 하고 웃던 우리 부부였다.


아기가 돌을 맞이해 남편이 어디 여행이라도 갈까? 하는 제안에 내 입에서 처음으로 "나 여행 가기 싫어"라는 말이 나왔다. 바리바리 챙겨야 하는 짐은 둘째 치고 혹시 여행지에서 아프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이 모든 리스크를 감수하고 떠난 곳에서 근사한 식당은커녕 자유롭게 다니지도 못할 텐데 하는 계산 때문이었다.


아이가 15개월에 접어들고, 부모님을 유럽에 한 번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딸네 부부 사는 곳에 오시지 못한 부모님, 아시아 패키지 여행은 가끔 가시지만 유럽까지는 못 와보신 부모님을 초대한 것이다. 그리고 기왕 여기까지 오신 거 유럽 곳곳을 함께 여행 다니겠다 결심했다. 물론 아기와 함께.


부모님과 여행할 때 부모님이 지켜야할 십계명이라는 재미있는 인터넷 글을 보았다. 여행지의 낯선 환경에 익숙지 않고 여행을 준비한 자녀와 트러블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결혼 전 휴양지로 가족 여행을 계획할 때 자유여행을 간다고 했더니 주위에서 가족끼리는 패키지가 편하다며 만류했던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부모님 역시 유럽 여행에 앞서 아기까지 있으니 네가 너무 힘들거라며 그냥 패키지로 가고 네가 사는 곳에 하루 들르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지난 가족여행을 돌이켜보면 늘 각종 모임이나 계에서 갈 수 있는 패키지와 달리 자유롭게 자식들과 다녔던 여행을 최고로 꼽는 부모님이었다. 한국에서 아기를 함께 키워주셨던 고마움과 내가 가진 효심을 양껏 끌어모아 나는 15개월 아기와 부모님과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유럽에 왔노라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대표적인 나라, 도시들과 부모님이 특별히 원하는 곳이 있는지 여쭤보고 계획 짜기에 돌입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 파리, 로마, 베니스, 비엔나, 프라하, 부다페스트, 스위스의 도시와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까지 목적지가 정해졌다.


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신경 쓴 건 숙소였는데, 평소 나는 가성비 숙소를 선호하는 편이라 에어비앤비나 외곽지역의 호텔을 예약하곤 했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데다 부모님의 체력을 고려하면 가격을 더 주고라도 중심지에 위치한 조식이 포함된 호텔을 가는 게 좋을 듯했다. 한 도시를 제외하곤 대부분 가본 적 있는 여행지들이라 얼추 지리감이 있었기에 일정을 짜기에도 수월했다. 예상대로 부모님은 숙소 위치에 아주 만족하셨고, 여행지를 돌아다니다 중간에 숙소에 들어와 아이를 재우기도 좋았다.


공항으로 마중 나가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은 아이가 사진과 영상과 얼마나 다른지부터 입을 대셨다. 긴 비행시간에 힘드셨을 텐데도 시차 적응을 하겠노라 늦은 밤까지 버티셨다.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와 밑반찬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두 달간 예정된 유럽여행을 앞두고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챙겼을 비상식량에 웃음이 나면서 딸내미가 좋아하는 반찬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캐리어에 담았을 그 마음이 전해졌다. 레토르트 이유식과 같이 한국에서만 살 수 있는 육아용품도 꺼내 정리하며 그렇게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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