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아일기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

by ama

"나는요, 원래 마음먹은 건 다 해요" -드라마 <안나> 대사 중


운이 좋게도 지금까지 나는 내가 마음먹은 건 대체로 이루고 사는 편이었다. 진학도 연애도 결혼도 나의 뜻대로 해왔고 적당한 직장에 취업해 돈을 벌고 떠나고 싶을 땐 훌쩍 여행도 가는 그런 삶을 영위했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는 그런 성격의 일이 아니었다.


시험관 등을 한 건 아니었기에 난임과정을 겪었다곤 못하지만 결혼 후 쉽게 생기지 않던 아이, 그리고 출산 후 육아를 하면서 그토록 힘들어했던 이유를 꼽아보니 바로 예측-통제 불가능함 때문이었다. 노력으로 성취 가능했던 지금까지 생애 과정에서의 일들과 달리 엄마 됨은 그 시작부터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는 날 때부터 내 뜻대로 될 수 없는 존재였다. 아주 운이 좋게, 감사하게도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병원에서 먹던 분유를 그대로 먹이고 무난하게 영유아검진 시기를 건너왔다. 하지만 100점짜리 아기는 없다고 먹고 싸는 것에서 문제가 없었지만 내게 온 아기는 잠이 없었다. 시시때때로 울어대고 통잠을 잔다고 알려진 100일 이후에도 아이는 새벽에 늘 깼다. 불규칙한 낮잠도 그리 길게 자지 않아 친정엄마와 나는 아이를 '30분의 요정'이라 불렀다.


인간의 기본 욕구 중 수면욕을 가장 최고로 꼽는 나로선 아주 죽을 맛이었다. 막달 이후로 제대로 자본 적이 없던 나는 실컷 잠을 자는 게 소원이었다. 친정엄마의 배려로 친구들과 떠난 여행지에서도 아이가 일어나던 새벽 시간에 눈이 떠졌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아이가 밤잠으로 8~9시간을 자는 시기가 왔음에도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 짜증을 낼 때면 이런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자신 없음이 함께 몰려왔다.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한끼줍쇼>에서 이효리의 말


좋은 엄마냐 아니냐의 이분법은 타고난 모성이란 없다고 외치던 내게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 얼마나 좋은 엄마가 되려고 하나, 나는 그저 엄마이기만 해도 되는 건데. 그간 마음먹은 대로 살았다고 여기는 오만도 실은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거나 애초에 먹었던 마음이 작아서 그랬던 걸지도 몰랐다. 한 생명을 배 속에 품었다 세상에 나오게 하는 일, 나와는 독립적인 다른 인간을 사람으로 키워내는 일 그 자체는 원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다. 남의 불행을 두고 나의 위안으로 삼는 건 옳지 않지만, 아이가 아프게 태어나지 않고 건강한 것 하나만으로 감지덕지일 테다. 지금도 적정수면 시간의 최소를 유지하며 내게 강제 미라클모닝을 선사하는 아이에게 덜 짜증을 내려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매일 그러진 못하지만 새벽에 깨어나 품으로 파고드는 아이에게 다정하게 굿모닝 인사를 하곤 한다.


유명 인터넷 강사가 한 말이 떠오른다. 그가 구사한 정확한 말은 아니지만, 매사 미루고 게으른 자기를 사랑할 수는 없다고, 그것을 이겨내고 어떤 것이라도 성취한 자신을 사랑하는 거라고. 듣고자 한 인터넷강의를 다 듣지 못했을 때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 나와 남은 강의를 수강했을 때,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남기고 이를 바탕으로 브런치 글을 쓸 때, 귀찮음을 떨치고 꾸역꾸역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이만하면 꽤 멋진 나, 나아가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가 아닌가 하며 셀프 따봉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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