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도 못하면서, 남 말 금지
아, 이번 발렌타인에는 애들 선생님한테 뭘 주지?
고민하는 지인의 옆에서 나는 내색하진 못하고 입만 삐죽였다.
아주 한국 아줌마들이 더럽게 물들이고 있구만.
아이가 없던 나는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초콜릿이나 기프트 카드 등 선물을 주려는 엄마들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았다. 한국은 김영란법이라도 있지. 소위 국제유치원, 영어유치원은 꽤나 비싼 비용을 내고 보내야 했고 아이들을 픽업 가면 각종 고급차량들이 줄지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런 곳이니만큼 선생들이 받는 선물 클라쓰도 남다를 것. 그래서 가격대를 맞춰 겹치지 않게 선물을 고민한다고 했다. 명절, 스승의 날 등 선생들에게 챙겨줘 버릇하던 한국 엄마들의 습성이 이곳까지 이어지나 싶었던 거다.
내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맞이하는 첫 발렌타인데이. 알지 못했다면 모를까 그간 다른 엄마들이 챙기는 걸 봐온 터라 고민이 되었다. 그때 선물을 준비하던 지인에게 슬쩍 물어보니 한번 주기 시작하면 계속 챙겨야 한다고 모른 척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답했다. 무슨 결혼식에서의 now or never도 아니고.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아이 반에 다른 한국인이 없어서 논의할 사람도 없었지만 비교될 가능성도 없었다. 유럽인들은 발렌타인데이를 더 로맨틱하게 여기니 다른 학부모들도 다들 주겠지. 마치 뇌물 수수하듯 선생님에게 뭔가를 사다 바치는 엄마들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가졌던 내가 이런 고민을 하다니. 하지만 어린이집 이야기만 나오면 뛰면서 좋아하는 아이가, 신나게 노느라 각성상태라 낮잠에 드는 데 오래 걸리는 아이를 팔베게해주고 안고 재운다는 선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는 어린이집 가면 밉상덩어리일 거야" 잠이 적고 활동량이 많은 아이가 기관에 가면 선생들에게 미운털이 박힐 거란 친정엄마의 말이었다. 내내 하이텐션을 유지하는 아이, 낮잠을 자지 않으려 하고 잠들더라도 이내 깨어나는 아이였다. 내 아이를 예뻐해주고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선생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는 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음 한 켠으로는 자그마한 성의표시가 내 아이만을 향한 편애까진 아니더라도 한번 더 눈길과 손길이 머물길 기대했다. 나는 결국 가격대가 꽤 나가는 초콜릿 가게에 들러서 초콜릿상자 두 개를 집어들었다. 아이를 들여보내놓고 그들에게 초콜릿을 건네자 이게 뭐냐며, 자기 남편도 잊었는데 네가 처음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아이와의 여행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고 어른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여행을 굳이 왜 가느냐며 속으로 비웃었다. 하지만 내 아이와 여행을 다녀보니 비록 아이는 기억하지 못해도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풍경, 경험이 펼쳐지고 이를 배경으로 한 부모의 추억만으로도 아이와의 여행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역시 알지도 못하면서 남 말은 쉽게 하는 게 아니란 과거의 나를 반성했다. 얄팍한 나의 경험치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려 했다. 아이를 낳아봐야 철이 든다느니 부모가 돼야 어른이 된다느니 그런 유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육아를 하며 생각과 감정의 폭이 넓어지는 건 확실하다. 아마 삶의 기준점이 나 하나에서 아이까지 포함된 영역으로 확장되기 때문이겠지. 쉽게 판단하지 말고 함부로 말하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