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엄마의 육아법
아이에게 한 번도 짜증 내지 않은 날, 스스로를 칭찬했다. 갑자기 유니콘처럼 말 잘 듣는 아이가 된 것도 아니었다. 엉엉 울며 하원하느라 지나가는 유럽인들의 주목을 끌었지만 태연히 앞에서 기다리며 반응하지 않았다. 혼자 울음을 그친 아이가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다가왔고, 그저 안아주고 상황이 끝났다. 턱받이를 했음에도 바닥에 흩뿌리며 저녁을 먹어도, 같은 책을 계속 가져오며 읽어달라고 보채도, 장난감을 여봐란듯이 집어던져도 화가 나지 않았다. 오 나 제법 성숙한 엄마 같은데? 아이를 재우고 흐뭇하게 오늘 하루를 돌아봤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쇼핑몰로 향했다. 운동화가 낡아서 신발가게에서 구경하던 차였다. 여성화 코너를 보다가 자연스레 키즈 쪽으로 눈이 갔고 예상에 없었던 아이 신발을 사이즈 대보며 비교하고 있었다. 아냐 아냐, 내 신발 사러 온 거지 하고 내려놨다. 옷을 사러 가서도 자연스럽게 키즈 코너에 들러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애 꺼 말고 내 꺼 사야지, 이렇게 일부러 마음먹어야 사게 된다. 봄에 어울릴 만한 옷과 신발을 골랐다. 스타벅스에서 얼음이 잔뜩 들어간 커피도 마셨다. 꽃집에 들러 화병에 꽂아둘 프리지아를 골라 잡고 계산했다. 양손 무겁게 산책 겸 집에 걸어오는 길, 행복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에 반감을 갖곤 하는 반골 기질의 나는 대유행 MBTI에도 역시 큰 관심이 없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검사법이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해보지 않았고 각종 MBTI 콘텐츠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작년 한국에 들렀을 때, 한 술자리에서 계속 MBTI가 화두로 나오길래 나의 MBTI를 모른다고 했더니 MBTI를 안 하는 MBTI라는 MBTI 신봉자들의 말에 이마를 짚었다. 관심사가 아니라서 이야기를 듣고만 있노라니 꽤나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특정 상황에서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다는 것. 연인이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서 주말에 만나 멍 때리고 싶다는 말에 친구가 인터넷으로 열심히 멍 때리기 좋은 장소를 서치해 선택지를 제시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너 되게 스윗하다"라고 했다. 하지만 친구의 연인이 말한 의도는 멍 때리는 게 아니라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다는 투정이었다며 친구는 웃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너도 T야."
T의 특징이 감정에의 공감이 아니라 문제 해결 위주의 사고방식이란다. 나는 T엄마인지 육아 역시 어떤 상황의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 친정엄마와 아이를 볼 때 공원에서 놀다가 넘어진 아이가 꽤 다쳐서 울자 엄마는 마음이 아파서 함께 울상을 지었다. 반면 나는 기왕 다친 건 어쩔 수 없고, 상처를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줄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자신이 잘 못 봐서 아이가 다쳤다고 자책하는 친정엄마에겐 "엄마, **이가 앞으로 살면서 이렇게 얼마나 다치겠어. 너무 속상해하지 마"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아이가 짜증을 내고 징징댈 때도 훈육을 알아들을 나이가 아닌 아이를 다그친다고 해서 울음을 그치는 게 아니기에 대꾸하지 않는 편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엄마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 쉽지 않다. 한정된 재화를 들고 아이 입에 들어갈 식재료 사느라, 아이가 입고 신었을 때 예쁠 것 같아 의류를 고르느라 나의 것을 사는 건 미루기 마련이다. 아이의 행복을 엄마의 행복이라 치환하는, 그리하여 엄마가 희생을 하게 되는 구조다. 자식에게 살과 삶을 내어주느라 자신의 것을 모두 바친 나의 엄마에게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나는 그러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나 역시 아이를 우선순위에 둔다.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이 떨어질 일이 없도록 항상 채워놓고, 신선하고 흠 없는 식재료는 모두 아이 차지다. 하다못해 아이가 남긴 음식을 먹지 말아야지 해놓고도 이유식에 들어간 좋은 재료와 내 정성을 생각해 먹다 남은 음식을 꾸역꾸역 넘기곤 한다.
내가 무엇을 할 때 어떤 상황에서 행복한 인간인지 알고 리스트업을 해두고 하나씩 실행하면서 자주 행복을 느껴야 한다. 일단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게 기본이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반복되면 지겨운데 자꾸 아프다는 앓는 소리가 계속되면 제아무리 사랑꾼 남편이라도 싫증 낼 것이다. 엄마 컨디션이 안 좋으면 같은 행동에도 아이에게 짜증을 더 내기 마련이다. 뭐니 뭐니 해도 아프면 나만 손해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망가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산후 마사지에 아낌없이 돈을 썼다. 아이가 두 돌에 가까운 지금까지도 몸이 찌뿌둥하거나 허리가 아프면 마사지샵으로 향한다. 마사지만큼 걷는 것도 좋아해 30분 이내 가까운 거리는 걸어다니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닌 후부터는 운동을 시작했다. 아이 생각은 하지 않고 너무 내 위주로 사는건가 싶어서 한 번씩 미안해지기도 한다. 허나 경험상 타인에게 조금 미안해야 잘해주게 되더라. 이건 아이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