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 엄마의 슬픔
나는 술을 좋아한다. 술 그 자체보다도 술자리를 사랑한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애주가가 그런다고 핀잔을 먹기도 하지만 어쨌든 술과 안주, 사람들이 어우러져 특유의 분위기를 내는 술자리가 좋다. 하지만 육아와 술자리는 공존할 수 없음을 뼈 아프게 느끼고 있다.
아이를 품었을 무렵, 당연히 술을 마실 수 없던 나날을 보내며 나는 술을 원래 안 마시는 이들에게 묻고 다녔다. 술 안 먹고 긴긴밤 무얼 하냐고. 술을 곁들여 불콰한 얼굴과 분위기로 시간 순삭되는 술자리 없이 기나긴 겨울밤을 어떻게 보냈지. 성인이 된 이후 한 번도 술을 금지당한 적이 없는데, 배 속에 아이가 있으니 금주가 필수였다. 원래 배만 부르고 취하지 않는 맥주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데다 무알콜 맥주라는 어설픈 술 흉내를 낸 보리 음료를 먹고 싶진 않았다. 남편이 옆에서 술을 마시면 나도 먹고 싶어질까봐 내 앞에선 음주를 최대한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어느 날 술이 당겼던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평소 여보 정도의 주량이라면 소주 한 잔 정도는 아기한테 기별도 안 가지 않을까?" 하, 말을 말자. 대견하게도 나는 참아냈다.
아기가 태어나면 잘 못 돌아다닐 거라며 태교여행처럼 유럽 곳곳을 여행다니며 아주 행복했지만, 단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바로 술이 빠진 것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와인을 못 마시다니! 크로아티아 리조트에서 수영 후 맥주 한 잔을 할 수 없다니!! 핀란드에서 독주 없이 추위를 버티라니!!!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현지 술을 마셔보는 건데, 다음을 기약하며 술잔을 들고 술을 삼키는 남편만 빤히 쳐다보았다. 내게 모성애라는 게 있다면 열 달간 술을 참은 걸로 다 표현되었다.
얼른 술자리 필드로 복귀해야 했기에 나는 모유 수유를 아예 고려하지도 않았다. 다만 '젖 잘 나오는 가슴'에서 나오는 노오란 초유만은 아이에게 먹이자는 친정 엄마의 권유로 한 달간 유축해서 먹이긴 했다. 어차피 산후 며칠간 외출도 못하고 몇 시간 간격으로 차오르는 가슴과 수유 패드에 흥건해지는 젖이 아깝기도 했던 터라 초유까지만, 이라는 시한부 금주가 연장되었다. 출산 날짜에 임박해 남편이 한국에 들어오며 오랜만에 먹는 술이니 좋은 걸로 마시라며 사온 밸런타인을 모셔두고 말이다. 영롱한 그의 빛깔에 못 이겨 한 달을 채 못 채우고 밸런타인은 개봉되었고, 이튿날 나는 젖을 짜낸 후 모두 버렸다. 이를 본 친정엄마는 좀만 더 참지 저 아까운 걸 하며 혀를 끌끌 찼지만, 오랜만에 먹은 술은 너무나 달콤했다.
친정에서 아기를 보는 동안은 한 번씩 저녁에 외출해 고향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이때 아니면 언제 또 놀겠냐는 친정엄마의 배려로 원정 술 여행도 떠날 수 있었다. 아이가 엄마의 존재를 몰랐을 때고 믿을 구석인 친정부모님이 계시기에 가능했다. 유럽 땅에 아이를 데리고 와서 깨달았다. 나의 술자리는 끝이구나. 아이가 엄마 없이 잠들지 않았기에 남편에게 맡기고 저녁에 나가 술을 먹는 건 불가능했다. 어차피 늦게까지 술을 마실 술친구도 없었다. 다행(?)히도 혼술은 즐기지 않는 편이기에 알콜 섭취량이 드라마틱하게 줄었다.(한 번씩 낮술도 마시고 맥주를 간간이 먹기에 0에 수렴하지는 않는다) 간은 분명 건강해지는데 정신은 어딘가 공허하다. 부어라 마셔라 하며 긴장을 약간 내려놓고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는 시끌벅적한 술자리가 그립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엄마가 없이도 잘 수 있겠지. 밤에 나가 술을 먹고 이튿날 숙취로 컨디션이 안 좋더라도 아이를 케어할 필요가 없는 날이 오긴 오겠지. 나는 지금보다 좀더 나이 들어 체력이 딸리겠지만, 술 케파가 더 떨어지겠지만, 아직은 비혼/무자녀인 내 술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기도 하겠지만... 하, 결국 다시없을 술자리겠지. 내 인생의 큰 즐거움인 술자리의 낙을 육아로 포기했다. 이건 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