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아일기

유럽에서 아이를 키워 다행이야

by ama

#비혼주의 친구 결혼한 날

내 결혼식에 와준 친구가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함께 올린 해시태그.

인생에 장담이란 할 수 없는 거라더니 결혼 안 할 거라며 외쳐대던 나는 서른에 결혼했다.

시간이 흘러 흘러 유럽 땅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 또 섣불리 인생에서 무의미한 가정을 해본다. 만일 내가 한국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딩크(Double Income No Kid)로 지냈을 거야.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큰 관심이 없다. 주위에 결혼한 친구도 없거니와 사촌들의 자녀, 오촌 조카도 크게 예뻐하지 않았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는 조카들에게 "아까 이모가 얘기했잖아" 하고 짜증내기 일쑤였다. 사촌 모임을 하던 날, 열몇 명이 움직이는데 큼직한 어느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앞선 일행이 뒤돌아 나왔다. "여기 노키즈 존 이래." 세네 살 무렵의 조카들 둘이 있었기에 카페를 이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의 생활반경에는 노키즈 존이 없었고 설령 그랬다 한들 아이가 없는 내겐 유명무실한 포스터 같은 글귀였을 테니 <NO KIDS>의 벽에 처음으로 직접 부딪친 순간이었다. 아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공간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니. 아이가 혼자 그런 곳에 갈 수는 없으니 아이를 동반한 부모를 향한 노골적인 거절과 거부의 표시일 테다. 손님을 골라 받는 건 장사하는 사장 마음이니 어떤 종류의 노 ~존을 내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건 다른 얘기 아닌가. 그 이후로 난 노키즈 존을 내세운 가게는 가지 않았다.


맥줏집에도 버젓이 아이를 위한 놀이터가 마련돼 있는 유럽, 술집에 아이를 데려온다고? 처음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식전주가 흔하고 가족끼리 간단히 술과 음식을 즐기는 문화인 이곳에 가족구성원 중 하나인 아이를 위한 공간이 있는 게 당연하다. 거의 모든 식당에는 아기 의자, 키즈 메뉴가 마련돼 있다. 아이가 소리치거나 소란을 피워도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이 없다. 사실 아이는 조용히 앉아 있기가 어려운 존재이고, 우리 모두 그 시절을 지나왔는데 한국사람들은 왜 그리 아이, 그 부모에게 엄격할까. '맘충'이란 혐오 표현은 말할 것도 없다.


유럽 여행지의 어느 호텔 로비에서 아이가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고 있었다. 얼른 일으켜 세워서 데리고 나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당시 사람도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이가 스스로 짜증을 제어하길 바랐다. 나는 한걸음 물러서서 "일어나"란 소리만 반복하는데, 간혹 지나가는 이들 모두 빙긋 웃어주었다. 한 여성은 내게 웃으며 다가와 "Take a breath, 1,2,3"라고 응원의 말도 해주었다. 아무도 달래주지 않으니 아이는 혼자 일어섰고 상황은 정리가 되었다. 나 역시 지나가는 이들의 미소 속에서 그 상황은 아이를 키울 때 늘 있을 법한 일이며 이 또한 지나가는 순간임을 받아들이는 여유를 배웠다.


아이를 유아차에 태워 등원하던 시절에 항상 경험한 친절이 있다. 신식과 구식이 번갈아 오는 노선이라 계단이 있어 유아차를 들어 타야 하는 구식 트램이 오면 보내고 다음 차를 기다리곤 했다. 절충형 유아차와 아이 무게를 합치면 20 킬로그램이 넘어가는 무게라 허리에 무리가 갔기 때문이다. 어쩌다 시간이 없을 때나 연달아 구식 트램이 오면 나는 심호흡을 하고 번쩍 들어 올릴 몸과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내게 "들어줄까?" 하고 다가오는 남정네들이 있었다. 내릴 때도 열차 안의 누군가가 어김없이 "도와줄까?"라고 물어오며 정말 함께 들어주곤 했다. 트램을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칭얼거려 플랫폼 끝과 끝을 걸어다니고 있을 때 반대편 열차에서 내린 사람이 다가와 리프트가 저기 있다며 알려준 이도 있었다. 집 앞 정거장이라 당연히 리프트의 위치와 가동여부까지 알고 있는 내게 왜 저런 말을 하지? 하고 잠시 의아했지만 생각해보니 유아차를 끌고 계단으로 향하는 내게 가던 걸음을 돌려 발휘한 친절이었다.


내가 사는 곳에는 공원이 많고 모든 놀이터엔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혼자 아이를 보던 시절, 돌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매일매일 놀이터로 향했다. 잔디밭과 모래 위에서 아이는 뒹굴고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났다. 진흙을 잔뜩 묻히고 풀물이 든 옷을 입고도 즐거워하는 아이 사진을 본 친정엄마는 한국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라며 놀라워했다. 어린이집에서도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 날씨 좋은 날에는 매일매일 바깥에 나가 뛰어논다고 한다. 어릴 때 산으로 들로 놀러다녔던 나의 경험에 비춰 아이는 자연과 가까이 키우고 싶었는데 아주 마음에 드는 점이다.


물론 한국이 이곳보다 키즈카페도 잘 돼 있고 문화센터 프로그램도 다양하니 아이와 할 게 많을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아이가 아플 때 병원에 갈 생각을 하면 유럽 생활이 마냥 좋다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남들과의 비교가 일상화된 한국에서 아이를 키울 생각만으로 벌써 피곤하다. 뚜렷하게 자기 주관을 갖더라도 사회 분위기나 문화는 공기 같은 거라 거기서 초연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몬테소리니 프뢰벨이니 주위에서 제 아이에게 쏟는 애정과 관심, 물량공세 속에서 내 육아만 독야청청할 자신은 없다. 차라리 외국 땅에서 브랜드 따지지 않고 아이 옷을 입히고 육아 트렌드에 무심한 게 더 내 스타일인 듯하다. 오늘도 운동화를 챙겨 신고 아이와 공원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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