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아일기

유럽에서 아이를 키워보니 힘든 것들

by ama

유럽을 동경했고, 이곳 생활에 대체로 만족하지만 불만이 하나 있다면 바로 담배다. 감기에 걸렸다 하면 무조건 목감기, 피곤하면 목이 쉬기 마련인 나는 담배 냄새를 아주 싫어한다. 그 담배 연기가 아이에게 노출되니 더더욱 예민해졌다. 한국에서 주입된 인식 때문에라도 더더욱 아이에게 담배가 해롭다고 생각하지만, 유럽인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는 아이 앞이라도 주저함이 없다. 심지어 유아차에 아이를 태워 가면서 담배를 꼬나문 이를 보고 기함했다. 앞장선 이가 내뱉는 담배 연기를 피하려 앞질러 보기도 하지만 거리 곳곳이 흡연존이고 금연존이 드문 '담배 필 자유'가 보장된 이곳에서 나의 유난만 돋보일 뿐이다. 흡연자에게 가혹하다시피 담배를 혐오하고 금연 구역이 보편적인 한국의 분위기완 다르다. 그러다 보니 흡연하는 모습도 너무나 흔한데, 네 살 아이가 작은 막대기를 물고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내곤 해서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Where are you from?"

아마 단언컨대 가장 많이 들은 말일 거다. 서울에서의 나는 너무나 평범해 존재감이 없는 시민 1이지만 여기선 어딜 가나 눈에 띄는 동양인이다. 특히 아이와 함께 다니면 더욱 시선이 집중된다. 때론 익명의 군중 중 하나로 있고 싶어도 웨어알유프롬으로 시작한 스몰토크는 일상적이다. 여기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이 친절하지만, 내게 "니하오"라고 이죽거리는 일은 한 달에 한 번은 겪는다. (진짜로 날 중국인으로 여기고 친근하게 인사해오는 경우도 있기에 모든 니하오가 인종차별이라고 할 순 없지만 당해보면 뉘앙스로 느낄 수 있다.) 아이가 놀이터에 들어서자마자 다가와 밀어버리고 내가 엄한 표정을 지으며 주의를 주자 내 눈을 피해 따라붙으며 괴롭힌 아이도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동양인은 아이와 나 둘 뿐이었다. 아이 보호자에게 이야기해야겠다 싶어서 찾아보니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였고, 경험상 나이 든 이들에게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에 항의를 포기했다.

이처럼 영어권 국가가 아닌 여기에서 내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상대가 영어를 할 수 있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이곳의 언어를 배우려 하다가 그 난해함에 포기했고 안녕, 고마워, 미안해, 그리고 심한 욕 하나는 알고 있다.(혹시 부당한 일을 당하면 욕해주려고.) 조금 친해진 현지인에게 "I don't know"를 여기 말로 어떻게 하는지 배웠다. 공원에서 만난 유럽인이 내게 영어로 어디에서 왔는지, 아이에 관한 몇 가지를 묻다가 아이에게 여기 말을 가르치냐는 질문에 나는 '몰라'만 가르칠 거라니 빵 터지며 웃었다. 아이는 영어 어린이집에 다니는데, 모국어인 한국어 70+영어 29+여기 언어 1(인삿말 하나) 비중으로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한국에서 컸다면 나 외에도 한국어 화자가 많으니 언어 발달에 더 도움되었을 거란 욕심 섞인 가정을 해본다.


비단 유럽이 아니더라도 해외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외국에서 아이를 키울 때 가장 큰 단점은 홀로 육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긴 유럽이지만 남편은 한국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워킹타임은 한국 기준이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한국인이다. 고로 한국에서만큼은 아니지만 야근과 회식이 잦다. 여긴 친정이 없고 도와줄 만한 친척이나 친구도 없다. 크게 외로움을 타지 않는 성격이라 혼자도 잘 지내고 친구가 많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그건 선택적 홀로 되기의 자유가 있을 때 얘기였다. 아이와 둘만 있다 보니 어른과 대화다운 대화가 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다가왔다. 여기서 새로 사귄 친구와 만나려 해도 아이를 데리고 가면 억지로 공동 육아를 부탁하는 격이니 폐 끼치기 싫었고, 남편이 퇴근해 아이를 봐주고 나가서 쉬다 오라고 해도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만나자고 편하게 말하기도 어려웠다. 나와 쌓아온 추억이 많은 친구들이라면 할 필요 없는 고려가 아니었을까.

육아 참여도가 높은 유럽 아빠들과의 비교는 덤이다. 물론 한국도 변화하곤 있지만 다들 야근하고 회식하느라 바쁘니 육아에 무심해도 그러려니 할 텐데 여기선 아빠들이 육아를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아이 또래를 키우는 동네 이웃들과 알고 지내는데, 나는 그 아이들의 엄마 아빠를 모두 알지만 그들은 내 남편을 코빼기도 본 적이 없다. 내 아이는 아빠가 있어도 없다. 남편의 가사, 육아 분담과 친정부모, 시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를 키우는 이들에 반해 늘 혼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내게 한 이웃은 "You are so strong"이라고 했다. 나는 미소를 띠며 "Thank you, but every mom is strong"이라고 대답했다. 코리안이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만일 가능하다면 유럽에서 계속 살 거냐 묻는다면 대답은 No. 나와서 살기 전에만 해도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아니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너무나 큰 단점인 의료, 병원 문제 때문이다. 아프지 않고 산다면야 세계 어디서 살지가 문제랴. 하지만 난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와 국민건강보험을 경험하고 자란 한국인이다. 너무 아파서 응급실을 찾았다가 그곳에서 다른 병에 옮을까 봐 얼른 진통제 맞고 나온 나의 경험에 비춰보면 이곳의 병원은 정말 아니었다. 청구된 병원비를 보고 한 번 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곳 사람들도 어지간하면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DM이나 Rossmann에 대체의료품이 많은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나나 남편은 어른이니 그렇다 치고, 아이가 아픈 경우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다행히 아이가 지금까진 건강하게 자라줬지만 마음속 한구석엔 늘 불안함이 도사리고 있다. 아이가 다치거나 아픈 상황에 대한 염려에 더해 이곳에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할 거란 공포까지. 이곳에 만난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병원 투어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이상한 결론이지만, 몸이 아프면 역시 한국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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