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듯 걷는 아이를 보았다
남의 불행으로 나의 위안을 삼는 건 나쁜 걸까?
잠이 부족해 밤잠 한번 푹 자면 소원이 없겠다 싶던 신생아 키우던 시절, 어느덧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게 된 그때가 나는 가장 힘들었다. 우는 아기를 안고 어르고 달래느라 진이 빠져버리던 시절, 내 새끼 예쁜지도 모르겠고 "애가 누워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는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아기가 언제까지 우나 어디 보자 하고 방에 넣어두고 나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은 적도 있다.
알지 못하는 이가 올린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어쩌다 보게 된 아이의 모습이 묘하게 이상했다. 딱히 꼬집어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이질감이 드는 외모. 남 일에 크게 관심 없는 나지만 웬일인지 그 사람의 계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스크롤을 내리자 사진 속에서 네 살쯤 된 아이가 점점 더 어려졌다. 알고 보니 아이는 연골 무형성증이라는 희귀 질환을 앓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중환자실에 입원해 투병 과정을 기록한 계정을 보며 지금 내가 힘들다고 징징거렸던 게 민망해졌다. 그리고 아이의 선천적 질병을 알고도 출산하기로 결심한 그 부모가 너무나 대단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낳을 수 있었을까, 장애를 받아들이고 저만큼 키워낼 수 있었을까.
그후 마치 불행 포르노를 보듯 아픈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를 몇 차례 더 읽었다. 세상에는 아픈 아이가 많았고 그런 아이를 키워내는 위대한 부모가 그 수만큼 있었다. 그들의 상황을 불행이라 치부해버리는 건 경솔하지만, 누구도 원치 않고 생각해본 적 없는 일, 바로 자기 자식이 아파하는 걸 지켜보는 것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불운임은 분명하니까. 평소 마음고생보단 몸 고생이 낫다고 여기는데, 아픈 아이를 키우는 건 택일의 상황이 아닌 마음과 몸이 모두 힘든 일일테다. 무탈히 태어나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하는 자잘한 일상이 새삼 고맙게 다가왔다. 한편으로 남의 불행으로 나의 위안을 삼는 데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을 멈추었다.
신생아 시절도 지나가고 아이는 그 개월 수의 발달 수준에 맞게 뒤집고 서고 걷고 뛰었다. 옹알이에서 단어 그리고 이제는 문장을 무리 없이 말한다. 아이를 키우며 여전히 피곤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지만 볼멘소리는 확실히 줄었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 발달 상황을 체크할 필요 없이 때맞춰 커주는 것 덕분에 내가 평온한 일상을 누린다는 걸 알고 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말처럼 우리는 공기처럼 당연한 존재들은 잃고 나서야 귀한 것이었음을 깨닫곤 한다. 아픈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나는 현재에 그리고 매사에 감사해야 한다고 되새겼다. 그렇다고 물론 내가 득도한 수도승처럼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로다 하면서 모든 걸 꿰뚫은 육아의 신이 된 건 아니다. 때론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육아의 성가심과 귀찮음에 대해 토로한다. 그러니 '욕아일기'를 쓰지.
늦은 오후 공원에서 아이와 놀다가 집에 오는 길, 저만치 떨어진 벤치 주위에서 춤을 추는 아이를 보았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양팔을 뻗어 온몸을 좌우로 크게 흔들고 있기에 눈에 띄었다. 점점 가까워지니 아이는 춤을 추는 게 아니라 마치 넘어질 듯 휘청거리며 벤치에 앉은 부모 주위를 돌고 있는 거였다. 인도 계통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여럿 모여 있었는데, 몸통과 다리 부분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걷는 게 위태로운 아이를 누구도 부축하지 않았다. 그냥 아이는 가족 구성원의 일부였고, 그게 일상인 듯했다. 나는 최대한 눈길을 주지 않고 태연히 지나쳤지만 뒤따라오던 아이는 멈춰 서서 그 여자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풍경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