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나를 닮아 속상하다
한때 ‘자존감’이라는 키워드가 한창 유행했다. 베스트셀러 순위 안에 드는 도서 중 대부분이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었고, 강연 등에서도 자주 들리던 단어였다. 하지만 나는 자존감에 관해 그리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 내게 **씨는 자존감이 참 높은 거 같아요,라고 말했을 때도 “그런가요?” 하고 넘어가곤 했다. 어떤 단어에 무감하거나 타인의 평가에 의연할 수 있는 건 내가 그와 무관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자존감이 대체로 높았기에 그것에 대해 연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지인이 내게 물었다. 아이가 너를 닮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지만 곧 대답했다. 내면이 단단해서 남의 시선이나 평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이면 좋겠다. 나 스스로가 내면이 다이아몬드처럼 강하다곤 할 수 없지만 삶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편이다. 대단히 잘 사는 집은 아니었지만 부족함 없이 키워주신 부모님 덕분에 신체 건강히 태어나고 자라 무던한 학창시절을 지내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내 성격의 배경에는 운이 따라서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었던 삶이 자리하고 있다.
아이를 품고 있을 무렵, 남편은 내게 아이가 성격은 여보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소 다정한 남편이 애정표현도 다양하게 한다고 여겼지만 그의 성장과정을 알기에 한편으론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우리 아이가 돈 걱정 없이 그저 아이답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예비 아빠의 바람 섞인 다짐 속에서 그의 결핍이 보였기 때문이다. 요즘 부모들은 부족함 없이 아이를 키우기에 오히려 결핍과 좌절을 어떻게 경험하게 할지 고민한다던데, 우리 남편은 트렌드에서 역행하는구나?
너무나 감사하게도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 지금껏 별문제 없이 발달 과정에 따라 잘 자라고 있다. 외모는 친정부모님이 섭섭할 정도로 나는 없고 남편만 쏙 빼닮았다. 기질 역시 남편을 닮아 순한 아이인 듯한데, 성격은 불쑥불쑥 내가 엿보인다. 크게 아픈 데 없이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감기 기운을 보이던 아이의 귀 밑 쪽에서 부풀어 오른 붓기를 발견했다. 그리고 너무나 속상했다. 저게 뭔지 너무나 잘 알아서. 그건 바로 임파선염의 증상이었다.
나의 오랜 고질병, 마치 볼거리 하듯 부어올라 하루는 꼬박 아프게 하는 임파선염이 내 아이에게서도 나타나다니. 처음으로 아이가 나를 닮아 속상했다. 어찌 부모의 좋은 면만 닮으랴. 새끼손가락이 약간 굽은 것까지 남편을 빼닮은 아이를 낳은 후 만사 유전이라는 유전론자가 된 나였으나 나의 고질병(?), 가족력은 간과하고 있었다. 건강한 편이라 자신하고 있으나 몇몇 내가 가진 신체적 약점을 떠올렸다. 아이가 높은 확률로 이것들 역시 닮겠지. 아무리 좋은 유전자를 선별해 배아를 이식하는 시대가 되었더라도 이런 잔잔바리(?) 질병, 마음에 안 드는 신체 특징까지 배제할 순 없을 것이다. 나를 닮은 아이를 통해 나 자신에 관해 더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