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어: 멀티버스
“거기 비켜요!”
하와이 버스 기사 아저씨가 나에게 호통쳤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내 뒤에 온 사람에게 순서를 내줘야 했다. 기사 아저씨는 나에게 기다리라고 꾸중하더니 내 뒤에 있던 승객의 휠체어를 옮기고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버스는 3분을 훨씬 넘게 정차했다. 다른 승객들은 휠체어 승객이 착석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렸다.
버스에 올라타자 그들의 세계를 처음 접한 이방인에게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내가 혼난 이유가 휠체어를 탄 승객보다 더 먼저 타려고 했기 때문인 걸 깨닫자마자 내 얼굴이 빨개졌다. 그 뒤로도 하와이 여행을 다니는 동안 곳곳에서 휠체어 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원래 장애인이 이렇게 많았던가? 나는 새삼 놀랐다.
그런가 하면 한국 지하철역에서는 부끄러워서 혼났다. 작년에 나는 작문 스터디를 하기 위해 매주 신촌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동대문역사공원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는 구간에는 계단 옆에 비스듬한 경사로가 따로 있다. 부족한 내 다리 근육으로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통로여서 애용하곤 했다.
그날도 환승하려고 통로를 정신없이 걸어가고 있는데 앞에 가던 사람들이 멈추기 시작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내려오느라 좁은 통로가 막힌 것이다. 몇 초의 정체가 있자 휠체어를 탄 사람이 멈췄다. 사람들은 다시 바삐 걸어가기 시작했다. 휠체어 이용자 통행 시 양보해달라는 표지 말과, 그 옆에 멈춘 휠체어를 탄 사람,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반년이 넘도록 그 통로가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통로였는지도 몰랐던 내가 뒤섞여 있었다.
전장연의 이동권 시위에 관해서 시민의 다리를 묶는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장애인들도 시민이고, 대중교통 이용은 시민의 기본권이라는 사실은 잘 다루지 않는다. 그들을 외면하는 정치인들과 몇 없는 그들의 시설을 무분별하게 사용한 나같은 사람들도 지난 20년간 그들의 발을 묶어뒀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장애인을 잘 볼 수 없는 이유는 결코 우리나라의 장애인 수가 다른 나라보다 적기 때문이 아니다. 수많은 장애인이 편하게 이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누구나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장애인이 불편하지 않은 사회가 우리 모두에게 편한 사회다.
우리나라에도 하와이 못지않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이동할 수 있는 ‘멀티’ 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찌푸린 얼굴이 이동권을 보장해달라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아니라 먼저 타려고 그들의 앞길을 막는 사람들을 향하는 ‘다른 세계관’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