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춘문Ye

평가의 민족

신춘문Ye

by Ye


작년 3월 한겨레교육센터

김경욱 기자님 작문 수업에서 쓴 글이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작문수업이었다!)

같은 해 11월에 조금 변형한 글이

한터 온라인 백일장 우수작으로 뽑히기도 했다


제시어는 ‘별’이었다.










최근 리뷰 315개

김도현 님의 답글 300개


손민아 / 연애 3개월

★★★★☆

너무 착해서 별 하나 뺍니다.


언제는 착한 남자가 좋다며! 나는 주먹으로 힘껏 책상을 내리쳤다. 별 네 개는 타격이 너무 컸다. 어떻게 올린 별점인데 벌써 4.5점으로 내려갔다. 나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저 악성 리뷰 신고하려고요. 전여친이 제가 너무 착해서 별 하나를 뺐다는데, 제가 분명 자기소개란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라고 명시해뒀거든요? 근데 굳이 저랑 사귀고 이런 리뷰를 달았습니다. 지금 당장 삭제해주세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리뷰는 작성하신 고객님의 창작물이라 저희가 임의로 삭제할 수 없습니다. 회사 내부에서 심의 절차를 거친 후 삭제 가능 여부 알려드리겠습니다.

-뭐라구요? 당장 이틀 뒤에 소개팅인데 이것 때문에 망치면 책임…….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 망할 앱 다시는 쓰나 봐라! 호기롭게 결심했지만 나는 5분도 지나지 않아 앱에 접속해 지문이 닳도록 스크롤을 내렸다. 2030년 현재, ‘평가의 민족’은 최고의 인기 앱이다. 이제는 배달 음식, 택시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성도 리뷰하는 시대가 됐다. 앱은 사용자의 위치를 인식해 1시간 이상 교류한 사용자들끼리 서로의 인성을 평가할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엔 우리 동네 ‘숨겨진 영웅’들이 등장했다. 추운 겨울날 노숙인에게 외투를 벗어준 치킨집 사장님부터 길 잃은 꼬마를 도와준 아파트 주민대표까지, 온 동네가 훈훈한 소식들로 가득했다. ‘평가의 민족’은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별 5개짜리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싸움, 논쟁보다는 배려와 경청이 우선되는 이상적인 사회가 만들어졌다. 학교폭력이 사라지고, 직장 내 괴롭힘이 없어졌다. 앱 하나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든 것이다. 최근엔 이력서에 ‘평가의 민족’ 별점을 기재하도록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났다. 치킨집 사장님이 실내 흡연으로 윗집을 고통받게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분노한 이웃들은 별점 테러를 감행했다. 하루 아침에 동네 인성갑에서 허점투성이 인간쓰레기가 된 사장님은 가족들과 함께 도망치듯 이민갔다. 노력 끝에 평균 별점 5점을 이루어낸 아파트 주민대표가 “여러분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며 투신하는 사건도 있었다. 조별과제 무임승차로 낙인이 찍힌 동기는 반년째 학교에 나오지 않았는데 가끔 약국에서만 마주칠 수 있었다. 수면제를 처방받으려면 대기표를 뽑고 오랫동안 기다려야 해서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나는 이따금 사람들의 찌푸린 얼굴이 그리워지곤 했다. 서로 싸우면서 돈독해지던 그때가 너무 그리웠다.


잠시 생각에 잠긴 동안 벌써 수업에 갈 시간이 됐다. 전공 책 몇 자라도 보고 가려고 했건만 리뷰를 보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나는 낱개 포장된 쿠키에 능숙하게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별 5개 리뷰는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직접 손글씨로 예쁘게 써서 대량 인쇄한 스티커였다. 나는 큼직한 백팩을 쿠키로 가득 채웠다. 전공 책은 안 들고 다닌 지 오래였다. 문을 나서려니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재빨리 입에 약을 넣고 물을 삼켰다. 나는 신발장에 붙어있는 거울을 보고 힘껏 미소 지었다. 오늘도 별 5개짜리 사람을 꿈꾸며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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