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Ye
제시어: 검열
콩이의 말에 현주는 아파트를 부수고 지구를 부수고 싶을 정도였다. 현주가 콩이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된 건 다 강아지번역기 덕분이었다. 2032년, 기술의 발전 덕분에 강아지 몸에 작은 칩만 이식하면 언제든지 블루투스로 스피커나 핸드폰을 연결해서 강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강아지 번역기는 반려인과 반려견이 행복하게 살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강아지가 언제 배고픈지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산책도 합의 하에 하루 쉴 수 있으니 서로 감정 상할 일이 없었다. 심지어 강아지가 아플 때 바로 얘기할 수 있어서 제때 치료받을 수 있었다. 강아지가 스스로 의견을 표명하게 되면서 강아지 수명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반대로 강아지가 예리한 감각으로 “아빠,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라고 한 덕분에 조기에 암을 발견하고 치료한 반려인도 있었다. 강아지 번역기가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 특히 동물 다큐 <강아지가 좋다>에서 20년간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게 “다음 생에도 꼭 만나요. 함께여서 행복했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은 강아지의 이야기는 시청률 20%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람과 동물의 진정한 공생이 시작됐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됐다.
그런데 이 공생에도 조금씩 균열이 일어났다. 유독 영특한 푸들 초코의 등장이 이유였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며, 동물도 사람처럼 고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입니다.” 초코의 유려한 말솜씨는 <TV동물농장>을 넘어 <9시 뉴스>까지 뻗어나갔다. 초코의 인기에 힘입어 초코처럼 목소리를 내는 강아지들이 늘어났다. 초코의 그 발언이 있기까지는 말이다.
“저는 인간의 유용성 여부에 따라 동물의 가치가 결정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동물도 인간처럼 지구 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개체로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중성화 거부는 강아지의 권리입니다. 성은 견생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강아지에게도 내 몸을 스스로 결정할 선택권을 주세요.” 초코의 강한 발언에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인간’이라는 표현을 쓴 점에 반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 “아니 먹여주고 재워주고 말까지 하게 해 줬더니 이젠 다 달라네?” “중성화 안 하면 생기는 병이 몇 갠데, 병원비는 누가 감당하냐!” “자기 똥도 못 치우면서 하나의 개체는 무슨! 의무는 안 하고 권리만 찾네!”
초코에 대한 반발로 사람들은 블루투스 해제 운동을 펼쳤다. “너도 초코에 동의해?” “너도 중성화 수술이 선택이라고 생각해?”라고 묻고 강아지가 응이라고 하거나 3초 안에 대답하지 못하면 연결을 끊는 식이었다. 억울한 강아지들도 생겨났다. “저는 그런 배은망덕한 강아지가 아닙니다. 저는 초코가 싫습니다.”라는 멋진 답변을 준비했지만, 연결 문제로 번역이 지체되어 해제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강아지들은 사람과의 공생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목소리를 높였다. “아빠 사랑해요!” “혜미 덕분에 행복해” “놀아주세요!” “나 잘했죠?” “예뻐해 주세요!” 어쩐지 비슷한 말들 뿐이었지만, 강아지와 사람은 다시 평화를 찾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