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때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고 쓰다.

by ABB

몇 달 전에 이 책을 필사한 적이 있었다. 금방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 혼자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했지만 알고 보니 우리나라의 유명한 작가들이 이 소설을 많이 필사했다고 한다. 신경숙이나 김영하 같은 사람들이 책상에 앉아 무진기행을 한 글자 한 글자 공책에 빼곡히 베껴 쓰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나는 마침 준비하던 토익도 끝났고, 다른 시험 준비도 그즈음 계획에는 없었기에 이 소설을 필사하기로 마음먹었다. 혹시나 조금이라도 문체가 좋은 방향으로 바뀌지 않을까 약간의 기대도 가지면서.



소설의 주인공인 윤희중은 서울의 큰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가끔씩 무진을 찾는다. 이 짧은 이야기는 그가 무진에 있었던 며칠간 있었던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는 무진에 가서 과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음악 교사 하인숙과 짧은 사랑을 나누고, 긴급하게 날아온 아내의 전보를 보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서울에서 무진으로, 그리고 무진에서 다시 서울로 가야만 하는 윤희중은 그가 거쳐 간 공간들 속에서 끊임없이 사색한다.



무진은 어떤 의미를 가진 공간이었을까? 소설 초반의 버스 안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무진은 농촌도 어촌도 아닌 애매한 공간이다. 시골이라고 하기엔 사람이 많이 살지만, 그렇다고 도시도 아닌 곳이다. 그곳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왜 무진으로 갔을까? 왜냐하면 윤희중은 무진과 닮은 구석이 많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을 동경했었고, 결국 서울로 가게 되었지만 잘 적응하지 못했다. 무진에서 서울의 삶을 생각하면 ‘묘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그는 도회지의 삶을 거북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를 보면 하인숙과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윤희중이 마지막에 무진을 떠나면서 느낀 부끄러움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무진에서의 사랑에 비해 서울에서 기다리는 현실에 대한 책임이 너무 무거웠음을 알았다. 마찬가지로 그와 잠자리를 가진 후 하인숙은 자기 자신이 싫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느냐고 그에게 묻는다. 그녀 역시도 상경의 비현실성과 그에 따른 자기 혐오감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서로의 관계가 부질없음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서울에 가서 그녀를 잊을 것이고, 그녀는 무진에 남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대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계속할 것이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그는 그녀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보았다. 과거 6.25 전쟁이 터지자 그는 고향 무진으로 돌아와 골방에 처박혀서 징집되지 않기 위해 숨어있었다. 안갯속 무진에서 화투로 그날의 운수를 점치고, 폐병에 걸려 고생을 하고, 바다를 보며 쓸쓸함을 느낀 그는 ‘하인숙’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보았다. 그가 그녀에게 편지를 쓰며 느낀 것은 일종의 정서적인 일체감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윤희중이 1년간 바닷가에서 병마와 싸우면서 쓴 편지에 쓴 내용의 대부분에는 ‘쓸쓸함’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쓸쓸함’이라는 단어는 윤희중이 바닷가 생활에서 느낀 복합적인 감정을 편지에 써 내려가기에는 너무 포괄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었지만, 또 그런 편지를 받을 사람들에게 그가 느낀 감정의 공명을 줄 수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현재의 윤희중은 그녀로부터 같은 쓸쓸함을 느꼈다.



소설의 모든 장면 속에서 그의 인생은 언제나 책임을 지는 선택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갔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는 예전에 진심으로 사랑하던 ‘희’와의 이별 후 지금의 아내를 만나 제약회사의 전무가 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바라던 바는 아니지만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 장인어른이 회사에서 할 행동을 상상하며 혐오감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크게 저항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기 아내나 장인어른, 그리고 무진같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낼 대상을 만들어 놓고는 그들의 탓을 한다.



무진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은 모두 속물들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이 하는 행위는 무위와 똑같은 무게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장난이라고.



그렇기에 윤희중이 하인숙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언제나 선택을 피하고 무책임을 긍정해오던 그에게 중대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 강요하거나 스스로 회피하며 살던 그가 처음으로 책임을 지고 나아가기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편지를 읽고, 또 한 번 읽은 다음 찢어버린다. 결국 그는 다시 한번 선택으로부터 도망가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자기가 스스로 속물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윤희중은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전보 탓을 하며 무진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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