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을 읽고 쓰다.
얼마 전에 바다를 보러 부산으로 갔었다. 다녀와서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고 말할 다양한 핑계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지금 와서 떠올려보면 그다지 큰 의미는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특별했던 점이라면 처음으로 혼자 가는 여행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호텔도 싱글룸에 식사도 언제나 1인분. 이런 여행의 좋은 점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의견 조율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서점도 다니고, 시간이 남으면 책도 읽을 수 있었다. 그리 긴 여행이 아니라서 많은 책을 읽을 수 없기에 나는 한 권의 책만 고르기로 했고, 예전에 한 번 읽었던 책을 집었다.
줄거리는 대부분의 성장 소설의 그것과 같았다. 유년기를 거쳐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 젊은이의 방황이 어느 기점을 돌아 성장을 향해 나아간다는 내용이었다. 무조건 젊은 세대는 부조리로 가득 찬 기성의 세계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결국 그곳을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은 아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런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끊임없이 절망한다. 그는 대학에 진학하지만,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학교를 나와 떠돌아다닌다. 어느 술집의 방우로 있다가 다시 바다를 향해 여행을 떠나는 둥의 생활을 하면서 그는 끊임없이 의미 없는 방황을 한다.
... 바다 역시도 지금껏 우리를 현혹해 온 다른 모든 것들처럼 한 사기사에 지나지 않는다. 신도 구원하기를 단념하고 떠나버린 우리를 그 어떤 것이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돼야 한다. 갈매기가 날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갈매기가 아니고, 존재가 그 지속의 의지를 버렸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우리를 인도할 수 없다면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의 손으로 넘어온 것이며, 우리의 삶도 외재적인 대상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인하고 채워가야 할 어떤 것이었다.
무슨 무슨 주의 같은 것들이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대인 것 같다. 모두가 가슴에 품고 있는 이런 사상들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이 더 좋아지는 것에 일조한다고 생각하도록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사람을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보게 하는 것 역시 이런 주의들이 아닌가. 그 모든 바람들에 휩쓸릴 만큼 나 자신이 아직 약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아직도 단단한 생각의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 같다.
또 어떤 것에 완전히 절망할 만큼 순수한 열정을 가졌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의심이 원체 많은 성격이라 이것저것 따지고 보는 나로서는 어느 하나에 시간과 정력을 들여 완전히 몰입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힘들다. 그저 얕은 지식으로나마 대화를 할 때 조금씩 관심을 내비칠 만큼의 대답은 하겠지만.
이틀간의 부산 여행 동안 참 많이 걸어 다녔던 것 같다. 그러면서 2년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재수해서 대학에 합격한 일, 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일, 동사무소 복지 팀에서 주무관 님을 도와 다양한 사람들을 도운 일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그 시간을 보내면서 세상에는 참 다양한 모습의 인생이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인생의 한 부분을 채워가는 것은 결국 다른 무언가가 하는 것이 아닌, 내가 직접 해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되새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