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자로서의 충무공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고 쓰다.

by ABB


김훈 작가의 소설 '칼의 노래'를 읽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소설은 이순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전쟁터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난중일기'를 통해 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그의 전쟁과 사건에 대한 김훈 작가의 주장이다. 또 그 누구도 타인을 정확히 대변할 수 없으므로 이 책은 그저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다만 이 이야기는 이순신을 소재로 한 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글일 것이다.



소설은 그가 백의종군을 시작한 후부터 그의 죽음까지의 시간을 담고 있다. 충무공이 다시 바다로 돌아왔을 때 좌수영은 거의 아포칼립스 그 자체였다. 그가 없는 전투에서 조선 수군은 왜적에게 큰 패배를 당해 군사와 배를 거의 모두 잃은 상태였고, 군량미가 부족해서 배고프고 사기가 떨어진 수군들이 탈영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조정에서는 대신들이 자신을 음해하고 있었고, 심지어 그의 아들까지 왜군에게 목숨을 잃는 일까지 발생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순신은 외롭게 분투한다. 그는 전쟁이라는 상황과 나라의 녹을 먹는 신하로서의 사회적 위치에 묶여 고통 속에 신음하고, 또 한편으로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고독한 상태에 갇혀있었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고, 오직 혼자서 이 어려운 현실을 타개해야 하는 이순신은 괴로웠을 것이다. 소설은 여기서 실존주의와 부조리의 시각에서 그를 묘사하기 시작한다. 실존적 자아로서 서술되는 이순신은 한없이 부조리한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것은 군인을 정치적 이유로 내세우는 임금, 이득만 취하고 떠나려는 명나라 군인들,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백성들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충무공은 그런 현실 속에서 쉽게 휩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허무맹랑한 희망을 가지고 이 전쟁을 극복하겠다는 어설픈 의지를 가지지 않고, 자신에게 남아있는 고독을 끌어안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는 자신이 전쟁에서 적들에 의해, 혹은 자신 스스로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 지옥 같은 현실로부터 도망쳐 안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마찬가지로 자신이 그렇게 죽는다고 해서 이 현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안다. 그래서 소설은 이렇게 쓴다.



희망은 멀어서 보이지 않았고, 희망 없는 세상에서 죽음 또한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

- 칼의 노래 中 -



'칼의 노래'가 봉건적 시대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임에도 그 내면엔 실존주의와 부조리의 개념이 담겨 있다는 주장은 왜군의 적장이었던 고니시의 깃발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결정적 근거가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깃발에 야소교, 즉 기독교의 문양을 새겼는데, 이순신은 자신의 부하였던 안위에게 그 종교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말했다.



"나는 그 열십자 무늬의 뜻을 안위의 보고를 통해서 알았다. 인간의 죄를 누군가가 대신 짊어지는 것이 그 야소교의 교리라고 안위는 포로의 말을 전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 칼의 노래 中 -



이순신은 위에 문장과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현실은 부조리 그 자체였지만, 그럼에도 모든 짐을 스스로 짊어지고 갔다. 그런데 야소교의 교리는 신이 자신의 죄를 대신 끌어안고 가는 것이었다. 이 말은 전쟁이라는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가는, 실존적 고민을 하는 충무공에게 그런 소리는 자기 속 편하자는 말과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말을 그대로 하지 않고, 단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라고 표현한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그럼에도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군사들과 백성들의 마음을 어떻게 실체가 없는 신에게 맡긴단 말인가. 이순신에게 있어서 그 모든 마음들은 자신이 짊어져야 할 몫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짊어지고 있었던 마지막 짐을 노량 바다에 내려놓았다. 충무공이 세상을 떠난 그 날, 왜군은 모두 떠나갔고, 길고 지루했던 전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아쉽게 그는 떠났지만, 글은 남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대신, 철저한 자신의 현실에 입각한 글들은 그렇게 오늘날까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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