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관 Feb 11. 2020

세상을 향한 비행과 하악질

박주영의 '어떤 양형 이유'를 읽고 쓰다.

나는 지난 2년간 대체 복무, 이른바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아동센터에서 1년, 면사무소에서 1년을 근무했는데, 둘 다 사회 복지팀에서 근무했었다. 나는 거기서 본 세상이 지금까지 봐왔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산속에서 통나무집을 짓거나, 빈 컨테이너를 가져와서 사는 비정형 가구가 있었고, 매일 아침마다 막걸리를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알코올 중독자이자 전직 건설업체 사장님이 있었다. 아동센터에서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때려서 집을 가출했다는 친구, 손목에 자해를 하는 친구, 한 부모 가정 아이들과 부모님이 아예 안 계신다는 친구를 볼 수 있었다.



특히 아동센터에서 근무하는 일이 심적으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아침에 아동센터에서 그 친구들의 현실을 바라보고, 퇴근 후엔 내 방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했다. 나에겐 당연한 일상이 그 아이들에게는 한동안 당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그다음 해 면사무소로 근무지를 옮겨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아빠들은 멀리 있는 공장으로 일을 나가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고, 거동이 힘든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은 근처 배 밭에서 일손을 도우며 돈을 벌었다. 그분들이 사시는 곳은 배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 산 중턱의 어느 컨테이너였는데,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있어서 가스 중독의 위험이 항상 존재했다.



작가가 소년 재판을 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기록들을 보며 많이 공감했었다. 나는 센터에서 주최한 겨울 캠프에 보조 교사 역할로 1박 2일 동안 참가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후 늦은 밤에 이제 막 20살이 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아버지는 안 계시고 어머니는 병상에서 투병하시는데, 어린 동생은 이제 학교를 간다고 했다. 그 친구는 정상인과 지적 장애 그 사이에 있는 상태로, 사회복지사가 되어 빨리 돈을 벌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그 친구가 너무 고마웠다. 나중에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이야기해보니, 다른 센터에 다니는 아이들 중에서는 소년원을 갔다 온 친구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이 절도나 사기였고, 성매매를 한 아이들도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주변 상황 때문에 모두가 '본 투 비 블루'의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른스러운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항상 밝았던 친구도 많았고, 내가 오히려 여러 활동을 같이 하면서 많이 배웠다. 그 모든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내가 편견 덩어리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소년범의 강력 범죄가 점차 증가하면서 현행법의 재고를 요구하는 여론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SNS 상에서 벌어지는 성매매, 사기와 같은 범죄가 늘어나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학교폭력으로 인해 피해자가 자살하는 등의 사건이 일어나는 현실은 결코 묵인할 수 없다. 이는 입법의 영역에서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법을 제정하거나, 법리 해석의 영역에서도 과거와는 다른 대처를 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소수의 강력 범죄를 일으키는 소년범들로 인해 나머지 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의 엄격함의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괜찮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세상을 향한 더 많은 하악질이 늘어날 것만 같은 걱정이 드는 것은 나의 기우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위대한 생각들 속에서 길을 찾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