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보고 쓰다.
10.26 사태를 주제로 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보고 왔다.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김재규는 경호실장 차지철과 박 전 대통령을 암살한 후 법정 공방 끝에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사건이 있은 후 몇 달 뒤 전두환이 12월 12일에 쿠데타를 일으켜 군부 독재를 이어나간다. 이 사건을 두고 사람들은 김재규의 암살이 민주주의를 앞당겼다는 의견에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수많은 토론을 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것에 멀찍이 떨어져서 다만 김재규의 행보와 의식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제목은 당시 남산에 위치해있던 중앙정보부의 실세를 잡고 있던 중앙 정보부장과 박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갈등이라는 줄거리에서 나온 것 같았다. 영화는 기자 출신 작가의 신문 연재소설인 '남산의 부장들'을 영화화한 것인데, 여기서 김재규는 김규평, 차지철은 곽상천, 김재규 이전의 중앙 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은 박용각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그래서 이들은 영화 내내 서로를 김 부장, 박 부장, 곽 부장으로 부른다.
사실 10.26 사건은 발생 이후 범행의 의도에 대해서 다양한 의문이 제기되었던 사건이었다. 김재규의 암살 직후 그는 중앙정보부로 가서 충분히 사건을 조작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뒷일을 생각하지 않은 단순 우발적 범행이라는 의심이 가장 많이 돌기도 했다. 그 외에도 미국 정보기관의 암살 계획이 있었다거나, 의문의 제삼자가 뒤에 있었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유신 정권 말기에 있었던 부마 민주 항쟁이나, 당시 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해봤을 때 충분히 의심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 하지만 정확한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번 영화에서는 박 부장을 설득하러 간 김 부장의 행보들과 이에 따른 고뇌를 그릴뿐이었다.
영화는 전 중앙 정보부장이었던 박용각이 미국으로 건너가 하원 청문회에서 발언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박 전 대통령의 치부를 담은 회고록이 유포되고, 그로 인해 여론이 악화되면 자신의 정치 인생이 끝장날 판이었기에 그는 김 부장을 시켜 그의 회고록을 가져오도록 명령한다. 하지만 박 부장을 만난 김 부장은 중앙 정보부장이라는 자리가 사실 이인자가 아니라는 점과, 그때 마침 자신보다 더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있었던 대통령 경호실장 곽 부장과의 갈등으로 인해 극심한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중, 부마 민주 항쟁으로 인해 대처 방안을 논의하던 자리에서 시위자들을 모두 탱크로 밀어버려야 한다는 곽 부장과 그에 동의하는 대통령을 보고 충격을 받은 김 부장은 곽 부장의 월권에 가까운 '서울에 남아있으라'라는 말을 듣고 마침내 그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의 확신은 이내 실행으로 옮겨지게 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실제 사건의 중심에 있던 김재규에 대해서 아직도 사람들의 평가는 둘로 나뉜다. 어떤 이들은 그를 박정희를 암살하고 유신 정권을 끝내면서 민주주의를 가져온 인물로 칭송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를 박정희나 전두환과 마찬가지로 유신 정권의 핵심적인 인물에 불과하였으며, 10.26 사건을 일으킨 것도 민주주의를 위해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과의 극심한 갈등으로 인한 것이 더 크다는 주장을 한다. 실제로 조사 당시 그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자주 차지철이 골칫거리라는 말을 했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안타까운 점은 박 전 대통령이 암살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두환의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는 사실이다. 김재규가 당시 부마 민주 항쟁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나올 것이라는 염려를 했다는 점을 미루어봤을 때, 오히려 나중에 전두환 정권 시절 일어난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다는 사실은 쓰디쓴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몇 년 전에 있었던 촛불 시위를 떠올렸다.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고,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법의 심판을 받았으며, 권력은 피비린내를 풍기지 않은 채 이양되었다. 그보다 몇십 년 전 일어난 김재규의 경우와 비교해봤을 때, 이는 경천동지 할 사건이다. 그러면서 의문이 들었다. 탱크로 수백만 명을 밀어버릴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권력자들의 행보를 보며, 민주 인사들은 과연 그 당시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었을까.
물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의 피로 얼룩져 있다. 이것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다.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세워진 이래로 시민들은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 같은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유신 정권 말기의 박 전 대통령은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근거로 부마 민주 항쟁의 강력한 진압을 주장하는 차지철을 옹호하고, 국가 안팎의 상황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오히려 강권통치를 긍정하는 행보를 보였다. 또 당시 미국에서의 코리아게이트로 인해 김형욱 전 중앙 정보부장이 실종되고, 김대중을 납치하는 등의 사건이 일어났었다. 아마 정권에 반발하는 행동을 하면 더 많은 희생자가 날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경우로 미루어 보아 김재규의 행동은 오히려 최선의 결과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흘러가는 역사는 거스를 수 없다. 우리는 과거로 갈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지 않는 한, 그날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인물들을 재평가하는 일뿐이다. 특히 모든 것을 바꿔버린 사건을 일으킨 인물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런 행동들의 연장선 상에 있다. 아직도 사람들은 그를 의사, 혹은 역적이라고 칭하며 시대가 지남에 따라 각기 다른 평가를 내린다. 물론 정말 어떤 마음으로 암살을 저질렀는지는 본인 만이 알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