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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관 Feb 24. 2020

한 촬영 감독의 모든 것이 담긴 영화

영화 '1917'을 보고 쓰다

나는 나중에 이 영화를 한 번 더 볼 것이다. 영화 중간에 화장실을 가서, 정작 꼭 중요한 마지막 달리기 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꼭 다시 영화관을 방문하는 이유는 아니다. 이번에 열린 여러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촬영상과 편집상을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러 갔다 온 사람은 다 알겠지만, '1917'은 특별한 촬영 기법으로 이번 작품을 영화제의 다크호스로 만들었다.



그 촬영은 바로 롱테이크 기법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롱테이크 신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 나오는 대수의 장도리 싸움 장면이다. 3분 동안의 시간을 단 한 장면의 편집 없이 그대로 촬영한 그 장면은, 후에 나오는 여러 영화들에서 오마주 되거나 패러디되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좀 다르다.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여러 롱테이크 신을 촬영해서 그것을 하나로 잇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객은 중간에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한 번에 촬영되었다고 느끼게 된다.



이런 방식의 영화 촬영은 바로 좋은 편집자와 촬영 감독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먼저 촬영 감독은 로저 디킨스라는 사람이었는데, 조사해보니 수많은 영화에 참여한 베테랑이었다. '쇼생크 탈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이 굵직한 작품들에 스태프로 들어가서 훌륭한 영상미를 선사했던 그는, 거의 항상 아카데미 후보에 올라가는 인물이었다. 그렇게 촬영 감독 계의 '콩라인으로 남을 뻔했지만, 다행히도 2017년에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로 첫 아카데미를 수상하고, '1917'로 또 하나의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게 되었다.



또 편집 기술자는 '리 스미스'라는 사람이었는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중 하나인 '덩케르크' 편집에 참여해 상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거의 모든 영화를 편집해서 '놀란 사단의 멤버'라고도 불렸고, 그의 영화 말고도 '죽은 시인의 사회'나 '트루먼 쇼' 제작에도 참여했던 인물이었다. 이 둘의 엄청난 촬영과 편집 덕분에, 영화는 주인공의 시점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며, 임무 수행 중 느껴지는 긴장감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을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압도적인 촬영 기법에 비해 스토리나 인물이 너무 단순하고 뻔하다는 것이었다. 장군의 명령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부대의 지휘관에게 편지를 가져다주는 것이 이 영화의 전부고, 스토리 상의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 부분은 다른 아카데미 후보 영화들에 비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음을 시상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1917'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과 시각효과상, 음향효과상의 기술 부문 3가지 상을 받았지만, 정작 작품상과 감독상은 '기생충'에게 내주었다. 물론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긴 했지만, 영화제에서 받은 상들을 보면 대부분 기술 부문에서의 상이 더 많았다.



그래도 '1917'은 영화 자체의 촬영과 편집이 어느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오는지 알 수 없음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또 장면 편집이 어디에서 이뤄졌는지 찾아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요 근래 본 전쟁 관련 영화와 드라마 중에서는 가장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꼭 보러 가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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