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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희 Feb 29. 2020

주말마다 몰아본 만화책들에 대하여

사실 그동안 읽었던 소설들만큼이나 만화도 많이 봤었던 것 같다. 중학생 때 항상 가던 도서관에 있었던 만화들부터 시작해서 웹툰과 단행본, 그리고 대학 신입생 때 공강 시간만 되면 갔던 만화 카페나 도서관 만화 코너의 수많은 책들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그리고 요즘은 인스타그램에서 연재하는 웹툰들과 페이스북에 간간이 나오는 썰 만화도 많이 보게 된다. 오늘 다룰 5편의 만화는 개인적으로도 좋아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들이다. 마지막에 넣을 한 편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한 번쯤 다 봤을 법한 만화들일 테니, 철저한 개인적 감상을 덧붙여 소개하려고 한다.




1. 슬램 덩크

나는 예전부터 농구를 안 했다. 고등학생 때 항상 배드민턴이나 탁구 같은 네트형 스포츠만 했을 뿐, 농구에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래도 슬램덩크는 언제나 한 번쯤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만화였다. 하지만 그때 만화를 읽고 다니기에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않았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나는 공강 시간에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학교 도서관에 꽂혀있는 슬램덩크의 모든 시리즈를 찾을 수 있었고, 그날 공강 시간을 모두 투자해서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아직도 인터넷 이곳저곳에서는 슬램덩크를 패러디한 콘텐츠들이 많다. 만화에 나왔던 불후의 명대사들은 주제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인용되어 이제는 하나의 확고한 레퍼런스가 되었다. 그리고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 모두 '농구를 왜 좋아하냐'라는 질문에서부터 파생되었기 때문에, 농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나 같은 독자들도 그들의 열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 오늘까지 슬램덩크를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2. 치즈 인 더 트랩

치인트는 중간에 간간이 뭐가 어떻게 돼가는 중인가만 확인했을 뿐, 처음 나왔을 때부터 본 웹툰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중에 슬램덩크랑 같이 도서관에서 공강 시간 때 단행본으로 정주행한 만화였다. 내용은 대학생 홍설이 집도 잘 살고, 공부도 잘하는데 잘 생기기까지 한 같은 과 선배 유정이 뭔가 구린내를 풍긴다는 의심을 가지고 뒤를 캐는 것부터 시작한다. 전반적으로 홍설의 연애와 인간관계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내가 재밌었던 점은 오히려 유정이 자신이나 홍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처리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 아닌 교묘한 함정을 통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사자를 골탕 먹이게 되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는 유정의 표정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나중에는 로맨스로 전개되지만 초반에는 스릴러였던 이 만화는 나중에 드라마까지 나왔는데, 만화 속 유정의 이미지는 잘 살렸지만 오히려 홍설이 날카로운 이미지를 주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래도 드라마 역시 꿀잼.


3. 식객

나는 중학교 때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었다. 점심을 먹으면 항상 만화책을 보러 친구들하고 같이 도서관을 갔는데, 언제나 다른 책을 찾아봤지만 항상 첫 시작은 식객을 읽었다. 그중에서도 여수의 하모(갯장어) 이야기가 나오는 단행본을 찾아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갯장어 샤부샤부를 먹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매년 여수를 혼자서라도 가서 식객에 나온 것처럼 먹겠다는 다짐을 한다. 물론 매년 가지 못했다. '꼴', '타짜'로 유명한 허영만 작가의 '식객'은 국내 여행을 돌다 보면 그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부산 여행 중에 맛집을 찾으려고 검색창을 열었는데, 식객에서 나온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을 소개하는 블로그 포스팅을 제일 많이 볼 수 있었다. 전주를 갔을 때도 그렇고, 강릉을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 막국수를 좋아하는데, 강원도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책에 나온 음식점을 방문하니 실패가 없었다. 먹으면서 친구들에게 설명하는 음식 지식은 맛을 배가해주는 덤이었다.



4. 미생

윤태호 작가의 '미생'은 역시 공강 시간에 읽었던 만화 중 하나였다. '미생' 은 프로 바둑 기사를 꿈꾸던 주인공이 바둑을 그만두고 어떤 상사에 인턴 생활을 하는 이야기다. 바둑의 여러 전략을 회사 생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인생에 비유하여 설명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주인공 장그래는 다른 인턴들이 가지지 못한 통찰력이 있었고, 그것은 그동안 두었던 수많은 바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스펙이나 사회 경험은 부족해서 욕을 먹어도, 중요한 순간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위기를 모면했다.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뒤따라 나온 드라마 '미생' 역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만화에서는 표현할 수 없었던 다양한 연출이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어내었다. 다만 드라마와 만화를 다 보고 나서 장그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물론 어떤 스펙도 없던 고졸 출신 장그래가 화려한 스펙으로 무장한 다른 인턴들보다 활약하는 장면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주었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어떻게 보면 장그래 역시 낙하산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작품에 나오는 회사는 누구나 입사하고 싶어 하는 대기업이었고, 거기에 들어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던 다른 인턴에 비해 장그래는 아무 노력 없이 인맥으로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미생'은 바둑에서 생사가 불분명한 말을 가리킬 때 쓰는 용어이다. 대국자는 이 말의 사활을 결정해야 한다. 상대가 방심한다면 살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꼼짝없이 죽어야 한다. 작가는 이런 경우가 사람들이 하루하루 겪어야 하는 사회생활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드라마와 만화가 실제와 비교했을 때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의견 역시 무시할 수 없지만, 그래도 미생과 같은 우리들의 삶을 잘 그려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5.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지난 2년간의 휴학 생활을 생각해보면, 정말 살면서 가장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문학 작품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비문학 같은 것들은 거의 읽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진또배기 독서 중독자들이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대충 주인공이 독서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특징과 책을 잘 고르는 법 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주 내용이다. 감성 가득한 필자 소개 글이 적힌 책은 읽지 않는다, 필자보다 역자 소개가 긴 책은 읽지 않는다, 베스트셀러를 신뢰하지 않는다, 완독에 대해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등, 이 책덕후들은 자신만의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독서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가서 결말이 이상하게 끝나긴 했지만, 그래도 만화 자체는 독서를 취미로 갖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입문서 역할에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덕후들은 다른 분야에 덕질을 하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 있었고, 그런 사실을 재미있게 알려준다는 느낌을 받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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