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희 Mar 20. 2020

코로나가 불러온 변화들

Feat. 반도의 흔한 대학생 이야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우한 폐렴, COVID-19. 이 바이러스를 지칭하는 말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편하게 '코로나'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어차피 이름은 여기서 그다지 중요한 점이 아닐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요즘 내 생활이 송두리째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확진자가 급속도로 생겨난 이래로, 나는 집 밖에 거의 나가지 못했다. 지역 농협이나 약국에서 파는 마스크를 파는 사는 일 때문에 잠깐 밖으로 나간 것과 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다 온 것 빼고는 '이불 밖은 위험해.'를 시전 중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대학교는 수업을 시작했고, 나는 사이버 강의를 듣기 위해 아침부터 노트북을 폈다.



교수도, 학생들도, 모두 어색한 상황이었다. 나는 경영학을 전공하는 학부생인데, 내가 듣는 전공 수업의 교수님은 자신이 교수 생활을 시작한 이래 이런 상황은 아예 처음이라며 헛웃음을 하시고는 수업을 시작하셨다. 어설픈 PPT, 그리고 헤드폰을 머리에 쓰신 채 음성 녹음을 하시며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님의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떨림도 느껴졌다. 캠을 켜고 수업을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교수님도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을 사용하시는 게 아직 어색해서 그런지 학생들의 마이크가 자꾸 켜졌다, 꺼졌다, 했다. 어쩌다 자신의 캠이 켜진 학생의 얼굴에서는 당혹감을 읽을 수 있었다. 나도, 교수님도, 그 학생도, 모두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어찌어찌 일주일이 지나갔다. 그 일주일 동안 나는 두 개의 전공 강의와 6개의 나머지 교양 수업을 모두 들었다. 사실 사이버 강의는 고3 시절과 재수 기간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덕분에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다. 인강은 대한민국의 입시 준비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고, 그중에 1.5배로 빨리 감아 듣는 학생들은 이 모든 사이버 강의 사태에 굉장히 익숙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 학생들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당황감은 다른 사람들보다 덜했다. 하지만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개강일이었던 월요일부터 이클래스라고 불리는 사이버 강의 플랫폼의 서버가 터지는 일부터 시작한 이 사태는 급기야, 비싼 등록금을 내고 들은 첫 수업이 무려 '자습'이었다는 점에서 모든 학생들의 분노로 그 위기가 극한까지 다다른 것이다.



위기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신입생들은 대부분 자취방을 잡았는데, 계속된 사이버 강의와 바이러스의 위협으로 인해 방을 빼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다행히 인심 좋은 건물주를 만난 학생들은 무사히 결정을 내렸지만, 코빼기도 안 보이는 집주인을 만난 학생들은 지옥과 같은 상황에 마주쳐야 했다. 학교마다 운영되는 커뮤니티에서는 이들의 하소연과 총장을 향한 욕지거리, 그리고 어설픈 행정실의 대처와 수강 정정기간에 자신이 놓친 수업을 비싸게 사겠다는 게시물들로 인해 난장판을 이루었다. 새내기들은 자신의 스무 살이 코로나로 얼룩져버렸다는 사실에 눈물지으며 공부나 하러 가야겠다는 게시물 써 놓았다.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 맘 때쯤에는 각종 행사들이 바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개강 총회, 조 모임, 오리엔테이션, 그리고 새내기 배움터 행사까지. 1년 간의,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입시에 힘 쏟았던 모든 수험생들은 꽃 피는 3월의 싱그러움을 온몸으로 맞으며 보낼 대학 생활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벌써 사망자가 100명에 이르렀고, 서울과 수도권의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는 이 시점에서 낭만보다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건강이니 말이다. 건강을 챙겨야 새터도 가고, 엠티도 가는 것이다. 슬픈 점은, 나를 비롯한 모든 학우들이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점이다. 그런 경우도 있지 않은가. 머리로는 잘 알겠지만, 나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흔들리는 것. 이번 코로나 사태를 바라보는 대학생들의 심정을 이보다 잘 표현 한말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안타깝다. 나도 사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기대해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공간을 산책하고 싶었다. 이 모든 일들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닌 것을 알지만, 그래도 당장은 집에 있으면서 컴퓨터만 들여다보며 수업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 슬프기는 하다. 친구는 이번 신입생들이 학교 역사상 가장 강하게 큰 학번일 것이라며 웃었다. 그렇긴 하겠다. 나도 20살 때 이런 일을 겪었다면 잘 이겨낼 수 있었을까. 만약 내가 20살 때 이런 일이 일어났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많이 실망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남은 과제를 마무리하고 수업 자료들을 정리했다. 어서 빨리 상황이 진정되어 모든 혼란스러운 일상이 다시 평범한 대학생의 일상으로 바뀌기를 기도하면서, 모든 확진자들이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라면서, 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