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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관 Apr 19. 2020

어느 재즈 천재의 모든 것

영화 '마일스 데이비스 - 쿨의 탄생'을 보고 쓰다.

https://youtu.be/OO5bTG4nebA


'재즈'라는 음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하루키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그의 책들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알다시피, 나오는 소설마다 주인공과 연관된 재즈 앨범들이 언제나 언급된다. 이는 하루키가 '피터 캣'이라는 재즈 바를 운영한 경험이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대표적인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는 빌 에번스의 'Waltz for Debby', '해변의 카프카'에는 존 콜트레인의 'My Favorite Things' 같은 전설적인 재즈 음악이 등장한다. 물론 비틀스의 노래나 클래식 음반도 언급되는 소설이 있긴 하지만, 그의 글쓰기 스타일 형성에 있어서 재즈라는 음악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하튼 나는 그의 글과 재즈가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다. 아, 이렇게도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가 있구나. 마치 재즈의 즉흥 연주처럼 말이다. 오늘 소개할 마일스 데이비스는 '연주하는 그 음이 틀린 게 아니라, 그다음에 오는 음이 그게 옳았냐 그르냐를 결정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어쩌면 글 쓰는 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소설은 우연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 소설에 나오는 인물의 세계를 결정짓는 사람은 작가이지만, 작가 역시 글을 쓰면서 자신이 창조한 인물이 그다음에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해한다. 그래서 재즈 음악을 하는 일과 소설을 쓰는 일은 그 모양새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본 그의 다큐멘터리는 그의 한평생 재즈 인생을 연대기 순으로 그리고 있었다. 줄리아드 스쿨에 입학한 학생이었지만, 거리의 재즈 음악을 듣고 마음을 뺏겨버린 그 순간부터 그는 가진 모든 재능을 연주에 쏟아부었다. 인종 차별이 극심하던 그 시절에, 마일스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며 유럽에까지 자신의 명성을 떨쳤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색다른 음과 구성으로 무장한 앨범을 내놓으며 재즈라는 장르가 얼마나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가, 그러면서도 연주자의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가를 증명해왔다. 그리고 그 정점은 1959년에 발매한 'Kind of Blue'였다.


마일스 데이비스를 주축으로 한 그의 밴드에는 존 콜트레인, 빌 에번스, 폴 챔버스 등으로 구성된, 오늘날에 보면 거의 재즈 계의 어벤저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멤버들이 모여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앨범을 녹음하는 날에 밴드의 멤버들이 곡을 처음 접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마일스가 모달 재즈라는, 기존의 비밥에서 볼 수 있는 코드의 연속적인 진행 속에서의 즉흥 연주가 아닌 음(scale)의 흐름에 따라 연주하는 즉흥의 방식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1957년 파리에서 그는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녹음하는 일을 하게 됐는데, 그 방식이란 것이 정해진 악보 없이 미리 촬영된 영상만 보고 즉흥적으로 연주를 하는 일이었다. 이는 그의 차후 앨범 작업 방식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Kind of Blue'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재즈 씬 바깥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그 당시 지미 헨드릭스를 필두로 하는 일렉트릭 장르가 붐을 일으켰기 때문에 재즈가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말았다. 나이 든 사람들이나 재즈를 듣는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젊은 사람들은 전자 기타 사운드에 환호했다. 그래서 마일스는 일렉트릭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과도 협업해서 앨범을 제작하고, 투어를 다니며 그가 다시 한번 알을 깨고 나왔음을 팬들에게 보여줬다.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재즈 씬의 한 획을 그은 연주자로서 그의 행보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그가 걷는 한 걸음이 틀린 것으로 보일 때, 그다음 밟는 또 다른 발걸음을 통해 그 이전의 행보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연주자였다. 그래서 그는 비록 세상을 떠났어도 팬들에게 불후의 존재로 남았다. 아마 마일스의 앨범을 듣는 사람들은 그의 말을 알게 될 것이다. "연주하는 그 음이 틀린 게 아니라, 그다음에 오는 음이 그게 옳았냐 그르냐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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