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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관 Apr 19. 2020

멕시코 사람들의 든든한 한 끼

다큐멘터리 '타코 연대기'를 보고 쓰다.

https://youtu.be/k2qist_IxZI


멕시코 하면 생각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물론 여러 답이 돌아올 것이다. 전통적인 남미의 축구 국가이기도 한 멕시코는 최근 월드컵의 조별 예선에서 기막힌 경우의 수 덕분에 16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2:0으로 독일을 꺾어 논개처럼 그들을 붙잡고 조별 예선에서 떨어졌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한국인들을 헹가래 쳐주는 영상이 올라왔고, 각종 웹사이트에서 한국은 형제의 나라라며 각종 밈이 생겨났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미국과의 관계에 멕시코가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 두 나라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사이임은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로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는 일을 서둘렀는데, 그 정책 때문에 양국 간의 외교적 갈등이 극에 달했다는 뉴스와 각종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멕시코 사람들의 불법 입국은 물론 미국 국민들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래도 거대한 장벽을 세우고 그 비용을 멕시코에게 요구한다는 생각은 아무리 봐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하지만 어떤 나라에 대한 첫 인식은 역시 음식으로부터 나온다. 인간은 결국 의식주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김치, 일본은 초밥, 미국은 햄버거와 스테이크, 독일은 소시지, 영국은 피시 앤 칩스, 프랑스는 달팽이 요리, 이탈리아는 파스타를 떠올리는 것처럼 멕시코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요리는 역시 타코다. 옥수숫 가루를 반죽해 만든 토르티야에 각종 고기와 채소, 소스들을 넣어 만든 타코는 이번 다큐멘터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멕시코인들의 영혼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 중 하나다. 마치 새벽에 일을 끝마치고 길거리 노점에 파는 국밥이며 해장탕을 먹는 회사원들 마냥, 멕시코 사람들은 집 근처 타코 집에 가서 타코를 먹는다. 오늘도 하루를 잘 버텨냈다는 위로와 함께.


타코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 종류가 꽤 다양했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총 5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카르니타스, 카나스타, 아사다, 바르바코아, 그리고 스튜 타코를 소개하고 있었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모양새의 타코도 있었고, 돼지 껍데기나 콩, 과카몰레나 고수까지 들어가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영상에 나오는 모든 요리사들은 결국 타코는 고기와 토르티야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집집마다 토르티야를 반죽하는 법이나 고기를 다루는 법이 다 달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단골 가게만 수십 년 동안 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런 타코의 인기는 미국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멕시칸들이 고향의 맛을 알리겠다며 가게를 차린 것이다. 넷플릭스의 다른 음식 다큐멘터리 '어글리 딜리셔스'나 '셰프의 테이블'을 보면, 타코를 비롯한 멕시코 음식을 세계 곳곳에 알리고 이를 재해석하는 요리사들이 나온다. 타코는 기본적으로 길거리 음식이다. 그래서 격식을 차리지 않고 그냥 친구들과 함께 편하게 타코 한 끼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떻게 보면 타코 식당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러면서도 그 음식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멕시코스러움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음식의 오리지널리티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모든 복잡한 의미 부여를 제외하고 생각해보면, 타향살이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나라 음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의미를 가진다. 외롭고 힘든 생활을 이겨내며 외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고향의 음식은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줄 것이다. 어쩌면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 것이다. 외국으로 여행을 간 한국 사람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먹는 첫 번째 음식이 매운 라면이나 떡볶이 같은 것임을 생각해보면 이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시장 아저씨들이 새벽에 국밥집에 가서 뜨끈하게 한 그릇을 비우며 탄성을 내지르는 모습과, 지구 반대편 멕시코 아저씨들이 퇴근 후에 타코 집에 들러 맥주와 같이 타코 한 입을 먹는 모습에서 같은 영혼을 보는 것은 어쩌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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