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을 읽고 쓰다.
문학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많은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인물의 성격, 혹은 서사에 관심을 쏟고, 또 다른 이는 치밀한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이나 연극에서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해나가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탐정 소설은 사건이 벌어지면 주인공이 증거를 찾아 범인을 잡기까지 과정을 그릴 것이고, 그러한 모습은 연극에서도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독자들은 작가가 만들어 둔 일련의 상황 속에서 사유하고, 인물의 대사나 행동에 공감하기도 하며, 그 속에 숨겨진 상징들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문학을 즐긴다.
하지만 페터 한트케에게 있어서 이러한 모습은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던 듯싶다. 해설에 따르면, 그는 사건이나 개인의 이야기를 서술해서 어떤 상(想)을 만드는 것이 아닌 단어와 문장만으로 작품을 구성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언뜻 보면 래퍼의 라임 만들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단어의 유사한 발음을 기초로 가사의 청각적 유희를 극대화하는 랩의 라임처럼 말이다. 하여튼 그의 이러한 작법이 왜 생겨났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학자 소쉬르의 이론과 한트케가 살던 시대의 언어에 대한 인식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유럽인들은 아주 당연하게도, 언어의 기능은 사물을 지칭하는 것이며, 낱말은 지칭하는 대상과 일치하는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없었다는 말과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소쉬르는 그의 저서에서 언어를 두 가지로 분류한다. 하나는 사회에서 긴 시간을 두고 축적된 언어인 '랑그', 또 다른 하나는 그 일부를 빌려 쓰는 개인들의 언어인 '파롤'이다. 그리고 그는 '랑그'를 진정한 연구의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언어가 사물과 관계없는 단순한 기호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저 기호들이 단지 사람들 사이의 약속에 불과하다는 그의 주장은 한트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변화는 언어만의 일이 아니었다. 철학에서는 마르크스가 역사 발전의 근원적인 힘은 물질이라고 주장하며 이전의 힘이었던 '정신'에 대해 반박했고,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대한 연구 역시 등장하면서 여러 인문학적인 사유에 근거를 둔 개념들이 커다란 도전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개념의 흔들림은 문학과 언어에 큰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페터 한트케는 기존의 모든 작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언어 이론을 바탕으로 한 희곡과 소설을 쓰게 된다. 이렇게 탄생하게 된 '관객모독'은 당시 문단과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는 동시에, 어린 나이의 대학생이자 애송이로 불리웠던 한트케에게 성공을 가져다주게 된다.
이 작품의 백미는 역시 마지막에 나오는 욕 한 바가지 파트일 것이다. 극 중의 배우들은 인간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인간 군상들에 대한 욕을 퍼붓는다. 왕, 성스러운 자들, 사업가들, 그리고 기타 등등의 비열하고 야비한 사람들과 허풍쟁이들, 심지어 연극을 보고 있는 관객들까지. 물론 앞서 배우들은 이 욕들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저 청각적 이미지를 만들 뿐이라고 말한다. 한트케의 작법 철학에 비추어 보면 이는 타당하다. 중요한 것은 언어의 의미가 아닌 다양한 사용이니까.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수많은 욕은 어쩌면 페터 한트케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들, 이렇게도 쓸 수 있다는 일종의 문학적 과시라는 생각을 했다. 반항기 많던 젊은 대학생 한트케, 동시대 47그룹과 평론가들에게 펀치를 날리고자 눈에 불을 켜고 이 작품을 쓰고 있는 그를 생각하면 그저 대단할 뿐이다. 그는 이 작품을 30대가 되기도 전에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