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희 Jul 15. 2020

로마 황제가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고 쓰다

긴 방학이 시작되면서 동시에 무기력증이 다시 찾아왔다. 얼마 전에 신청한 관공서 아르바이트에 떨어진 것을 시작으로, 운동 부족과 게으름은 동시에 나를 덮쳤다. 중고서점에서 책을 사서 읽긴 하지만, 동시에 독서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이제 졸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거나 시험 준비에 들어갔건만, 이런 소식을 듣고도 나는 도저히 뭔가를 시작해야겠다는 위기감이 들지 않았다. 사실 내가 살아온 짧은 인생에서 무엇이라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위기감이 큰 몫을 했다. 20살 때 했던 소설 공모전도, 사진도, 그리고 시험과 책 읽기도. 내 인생에 어느 하나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한 이런 일들은 그렇게 조금씩 뭉쳐 나라는 인간을 만들어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라는 의심이 웅크리고 있었다. 내 주변에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꿈을 좇아 고생하며 사는 사람도 있었고, 돈을 벌어 차를 굴리고 있는 친구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 공부를 잘해서 어려운 시험에 준비하는 친구도 있었고, 나처럼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이런 다양한 사례를 접하고 난 뒤에 나는 삶을 대하는 태도의 정립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삶은 하나씩 포기하며 걷는 길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나는 유의미한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 예를 들면 돈이나 명예 같은 것 말이다. 물론 ‘명상록’은 이런 나 같은 속물들을 위한 삶의 지침서 같은 것이 아니다. 이 글은 자신의 수양을 위해 쓰인 황제의 일기다. 로마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선대가 남긴 로마의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를 단련하고 절제하며 살아갔다. 전쟁터에서 쓴 그의 일기는 신을 향한 믿음, 자신의 마음가짐 등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살아가고자 하는 황제의 의지가 여실히 느껴지는 글이다. 놀라운 점은 이 글이 로마 시대에 쓰인 것이지만, 2020년을 살아가는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한 인간의 글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 다양한 사람들을 반성하게 만드는 글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너는 왜 너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냐? 그럴 시간이 있으면 네게 유익이 되는 좋은 것들을 더 배우는 일에 시간을 사용하고, 아무런 유익도 없는 일들에 쓸데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을 멈추라. 하지만 그런 후에도 또 다른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런 인생의 목표도 없이 그저 자신의 온갖 충동과 생각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달려오느라고 지쳐 버리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네가 해내기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경우에는, 그 일을 다른 사람들도 해낼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일은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너도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라. (...) 누구라도 나의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며 나를 깨우쳐 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나의 잘못을 고칠 것이다. 나는 진리를 추구하는데, 진리는 그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는다. 반면에 자기기만과 무지를 고집하는 사람은 해를 입는다.

지금 이 시대만큼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휘둘리기 쉬운 시대가 있었을까? 원하지 않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계속 싸우고 있다. 많은 이슈들이 결국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하지만, 그런 것들에 휩쓸리다 보면 결과적으로 잃는 것은 나와 내 시간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딘 상태로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열 내며 살기에는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또, 너무 쉽게 겁먹는 것도 좋지 않을 것이다.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목표도 결국 누군가는 이뤘기 때문에 존재하고, 설사 이런 말을 누군가 지나친 희망 고문으로 치부한다더라도 그가 어떤 상황인지 나는 모르기에 함부로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한번 도전해보겠다는 사람한테 응원은 못 해줄망정 기만 죽이면 그 사람이 이상한 것 아닌가?



어쨌든 ‘명상록’에는 내가 잘 살아가는 것이 맞는지,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지내야 하는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글이 많다. 다만 작가가 스스로 다짐하듯이 적어둔 일기 형식이기 때문에 한 개념을 두고 이를 논리적으로 전개해나가는 글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주 오래전에 살던 로마 황제가 자신을 다잡기 위해서 남긴 이 글을 보고 있자면 옛날 사람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오는 묘한 신기함이 생겨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매일 이런 생각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렸기에 로마가 그가 재위하던 시절에 정말 강력한 국가로 세계의 패권을 움켜쥔 제국이 될 수 있었구나, 라는 깨달음도 얻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거리 소녀의 충격적인 실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