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고
사람들은 모두 인간관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거의 모든 사회 속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타인과 어울리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중 부모 형제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은 거의 학교에서의 친구 사귀기가 먼저일 것이다. 인사를 나누고, 같이 밥을 먹고 대화하며 지내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들은 나름대로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리고 울타리 안에서 그들은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자면 A는 공부하는 것에 소질이 있지만 남들에 비해 조용한 성격이고, 그와 달리 B는 활달한 성격에 체육을 좋아한다. C는 소리에 예민해서 피아노에 소질이 있는 반면, D는 말을 잘하고 자기 소신이 뚜렷한 편이라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이렇게 제각기의 색깔을 가지고 살아가는 친구들 사이에 오늘의 주인공 쓰쿠루가 있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나고야에서 보내던 학창 시절 쓰쿠루는 그를 포함한 5명이 속한 그룹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던 학생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각자의 이름 그대로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 비해 자신은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무채색의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가 도쿄에 있는 대학으로 간 후,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룹의 친구 중 하나인 ‘시로’가 쓰쿠루에게 자신을 포함한 다른 친구들과의 연락을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연락을 끊는다. 그 연락을 받은 다음부터, 그는 거의 반년 간 자기 방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자신을 이루는 세계에 대한 붕괴를 경험한다. 비록 나중에 학교를 졸업하고 우울증을 털어내고 평소 좋아하던 철도역을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쓰쿠루는 나이를 먹어갔지만, 그의 과거를 알고 있던 연인 사라에게 친구들을 다시 만나보라는 제안을 듣고 용기를 내어 그들을 만나기 위한 ‘순례’를 떠난다.
10대와 20대의 자신을 이루었던 공동체와의 단절,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상실감과 자기부정으로 인한 우울감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쉽게 떨쳐내기 힘든 것이었다. 그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갑자기 관계가 단절되어 10년 이상 친구들을 보지 못했다. 대학 시절 반년 간 거의 방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그 이후로도 인간관계를 이루는 모습에서 일종의 뒤틀림을 품고 사는 쓰쿠루를 보면 측은함마저도 든다. 이렇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저마다의 뒤틀림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들은 하루키의 다른 소설인 ‘노르웨이의 숲’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소설 안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그런 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주인공은 오히려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쓰쿠루가 사회인이 되고 나서 만들어가는 연인 관계에 대한 대목을 보면 그렇게 정상이지만은 않다는 시선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연인 사라에게 제안을 받고 옛 친구들을 찾아 떠난 주인공은 10년도 넘게 보지 못한 친구 아오, 아카, 그리고 구로를 만나며 자신이 대학 시절 이들과 왜 연락이 단절될 수밖에 없었는지, 또 그때 본인이 가지고 있던 색깔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다. 또 남들은 보이지만 정작 자신은 보이지 않던 빛깔과 거기에서 비롯된 관계 속 자신의 고민은 나름대로의 ‘순례’ 이후 새로운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된다. 20대의 쓰쿠루와 친구들은 서로의 관계 그 자체가 삶의 의미였다. 자신들의 일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쓰쿠루와 친구들의 단절은 그 의미가 사라짐을 뜻했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30대의 쓰쿠루는 과거와는 좀 다른 인생의 흐름을 타고 있었다. 직장을 다니고, 자신이 좋아하는 수영을 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었다. 타인과의 관계가 예전만큼 그의 인생을 크게 좌우하지도 않는다. 그의 과거는 기억으로 남아 증발하지 않고 그의 마음 한구석에 가만히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그런 관계의 기억은 존재 자체로 삶의 의미가 되어 20대에 마주했었던 허무에 힘들어하지 않도록 그를 도와주었다. 쓰쿠루가 나고야와 핀란드에서 오랜만에 만난, 한 때 각자의 위치에서 제각기 빛났던 친구들은 모두 직장인이 되거나 사업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 모습들은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노톤 빛깔로 은은하게 물든 모습이었다. 때문에 이 시점에서 그가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이 사라에게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마무리된다. 순례를 마무리 짓고 사라를 다시 만나는 시점에서 작가는 마침표를 찍는다. 앞에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노르웨이의 숲’에서 다시 제대로 만남을 이어가자는 와타나베의 질문에, 수화기 너머로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고민하던 미도리의 모습을 결말로 받아들인 채 소설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던 불편한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마지막 사라의 대답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쓰쿠루의 인생에는 크게 변하는 점이 없을 것이다. 이미 30대의 중반을 지나가고 있는 그의 삶은 위에서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대답에 따라 과거와 같은 흔들림을 겪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이 소설에서 공감을 느끼는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색깔’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사람들의 개성이다. 천차만별의 자아와 개성에 따라 사람의 행동과 분위기는 모두 다르다. 개인은 타인이 모르는 자신만의 성장 환경과 같은 요소에 따라 ‘색깔’이 바뀐다. 그리고 그로 인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은 언제나 존재한다. 나 같은 경우, 학창 시절에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써보라는 숙제를 받으면 언제나 장점을 쓰기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난 항상 단점을 먼저 쓰고, 장점은 항상 끙끙거리며 고민하다 나중에는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 내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곤 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 그때의 나는 쓰쿠루와 다를 바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긍정적인 부분, 그러니까 나만의 ‘긍정 색깔’은 언제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했다. 타인이 느끼는 것에 비해 나는 그 부분을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 둔감한 셈이었다. 반면 '부정 색깔'은 언제나 자의식 속에 박혀있었다. 고민이라는 것은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에 대해서 하는 경우가 더욱 많았으니 고민을 할 때마다 나의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되새김질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나고야 친구들 속에서 자신의 색깔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10대의 쓰쿠루가 30대에 들어서 친구들을 만나 비로소 그때의 자신이 어떤 색깔이었는지 알게 된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았다. 결국 타인과 나의 시선 차이였다.
두 번째는 ‘순례’다. 역시 바꿔 말하면 과거와의 직면이다.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고, 개중에는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평생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만큼 과거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살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감정을 느끼거나 깨달음을 얻는다. 작중의 주인공처럼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면으로 부딪히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내가 몰랐던 사건의 진실을 파고드는 일은 과거의 나를 거의 죽일 뻔한 무서운 심연으로 다시 들어가는 일임을 주인공은 알고 있었다. 그 일의 여파는 친구들과 자신을 괴롭히는 데 일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새로운 반성과 깨달음을 주었다. 주인공과 독자의 상황이 모두 같을 수는 없겠지만, 주인공과 같이 오랫동안 상처를 가지고 있던 독자들에게 쓰쿠루가 걷던 ‘순례의 길’은 잔잔한 위로를 선사하지 않았을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다. 헤밍웨이나 레이먼드 카버 같은 미국의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작가와, 그가 자주 듣는 재즈음악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간결하고 흡입력 있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종류의 글은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일조를 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하루키를 오컬트 풍이나 초현실적인 소재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1Q84’ 같은 소설들로 입문한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숲'이나, 이번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와 같이 주인공의 성장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쓰는데도 일가견이 있는 작가라 생각한다. 물론 항상 외톨이에 음침한 주인공 곁에 여자들이 끊이지 않는다는 오래된 하루키 소설의 클리셰나, 전체적으로 일본 라이트노벨 같은 특유의 수사적인 감정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만큼 이번 소설도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빠르게 읽히는 작가만의 문체와 금방 이어나가는 전개는 마음에 든다. 책이 두껍지만 그에 비해 금방 읽을 수 있는 이번 작품은 가볍게 읽을 만한 소설을 추천할 때 가장 먼저 꼽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