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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희 Jan 07. 2021

2020 所懷

지난 1년을 돌아보며

20대는 3년마다 끊어서 봐야 한다고 믿었다. 20살이 튜토리얼이라고 가정하면 나머지 3년씩은 각각 경험치를 쌓고, 미래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그리고 도약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올해는 나중을 위한 액땜치고는 기간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또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계획했던 것들은 게으름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를들어, 20년의 나는 독서가 취미예요, 라며 자기소개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책을 읽지 않았다. 원체가 한 군데 진득하게 붙어있지를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성격 탓일까. 보통 책을 빌려오면 소설은 처음 몇 페이지만 읽다가 금방 질려서 다른 사회과학 서적이나 만화책을 뒤적거렸고, 그마저도 재미없어지면 여지없이 유튜브 세상으로 돌아가버렸다.


공모전도 말짱 도루묵이었다. 여름 방학 때 카페에서 편입 공부를 하던 친구와 같이 그렇게 자판을 두드려댔건만, 결과는 1승 1무 4패였다. YES24에서 하는 작은 글쓰기 공모전에서 입상을 한 것 빼고는 다들 연락이 없었다. 전리품은 YES24 포인트 5000원이었는데 그걸로 뭘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유명한 문학 평론가의 영화 평론집을 샀던 것 같은데, 평소에는 그런 글을 잘 읽지도 않으면서 왜 굳이 그 책을 샀나 싶다. 하나의 무승부는 어느 작은 문학회에서 주관하는 신인문학상이었다. 에세이 부문에 도전했는데, 1차 심사에 통과했지만 최종심에는 들지 못했다. 그나마 심사하던 분이 전화로 1차 합격을 전하며 앞으로 글 열심히 쓰라고 격려해주신 것이 위로가 되었다.


평소처럼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감동의 역치가 어느 순간부터 많이 높아져 버린 것을 실감하기도 했다. 그것은 코로나가 어느 정도 진행된 후였다. 언젠가는 오게 될 순간일뿐더러 누군가는 그 순간부터 자신을 다시 볼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하지만, 나는 이것이 아직도 익숙지 않다. 흔히 '쿠세', 다시 말해 클리셰라는 것들이 소설이나 영화에 알게 모르게 잠식되어있다고 한다. 미약하게나마 경험을 쌓으면 쌓을 수록 그것들이 눈에 띄는 경험이 마침내, 일종의 성장 비기의 해방마냥, 내게도 일어난 것일까. 물론 많이 보고 들으신 분들에게는 이런 말이 귀엽다고 느껴질 지도 모른다. 내가 그거 많이 봐서 아는데, 라고 말하는 꼰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점점 무뎌지는 것을 느낀다. 뉴스 속에 나오는 무서운 범죄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과 비슷한 것일까. 모든 것이 뒤집혀야 합니다, 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제는 피곤하게 들린다. 각자 생각하는 미래를 말하고 제단하며 평가하는 이들을 보는 일은 항상 재밌지만, 그만큼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제발 올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환경 때문에 너무 피곤했는지는 몰라도, 나를 과하게 행복하거나 슬프게 하는 사건이 아닌 뜨뜻미지근한 사건들이 내 주위를 가득 메웠으면 좋겠다. 내게 일어났던 모든 우연과 필연에 의미를 부여하고 고민하다 지치는 성격도 고쳐야겠지만, 어쨌든 21년은 조용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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