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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Jul 17. 2024

그건, 꿈이었을까?

제주살이를 하면서 깨달은 것들

제주살이 일년 반, 우리 가족은 다시 육지로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제주 집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도 하였거니와, 서울과 수도권(주로 출판단지와 상암)에서 미팅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거의 매주 비행기를 타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마음이야 언제까지고 제주에서 살고 싶었다. 자연 속에 안겨서 살다보면 자연 그 자체가 되기 마련이니까. 어느새 우리 가족은 제주의 한라산과 바다, 구름과 바람에 푹 빠져버렸다. 그런데 어떻게 제주를 잊을 수 있을까? 

바다와 해변은 아이의 놀이터였다. 이런 놀이터를 또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아침 저녁으로 창문을 통해 솔솔 밀려드는 풀꽃의 냄새, 거기에 더해진 바다 향기 한소끔. 따로 음악을 틀고싶지 않을 정도로 다채로웠던 새와 풀벌레 소리. 바람과 구름이 수시로 하늘에 펼쳐놓은 추상화들. 아무 때고 달려가 풍덩 뛰어들어 헤엄칠 수 있는 얕은 바다. 

귤밭에도, 길 밖에도 천지에 흐드러진 노지감귤들. 감귤을 따고 나면 달달하고 향긋하게 피어오른 귤꽃 냄새. 그리고.......

겨울이면 썰매 하나 끌고 올라가서 아무렇게나 미끄러질 수 있는 오름들. 

그 모든 사잇길을 씨줄과 날줄처럼 잇고 있는 올레길.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가족은 일 년 반의 제주살이에 잠시 쉼표를 찍어두기로 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기로 약속을 했다. 

그러나 아이는 힘들어했다. 파주로 올라오고 나서도, 자기 전에 제주를 떠올리고는 울면서 잠드는 일이 많았다. 그건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이들은 제주살이에 대해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을 꼽기도 했는데, 우리는 그 이전에 그냥 제주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참 제주의 물가나, 바가지 문화에 대해 많은 뉴스가 나오고 있지만, 사실 도민들이 가는 맛집은 따로 있었고, 도민들이 가는 스노쿨링 포인트나, 눈썰매 타기 좋은 곳은 따로 있었다. 서울에 살 때는 단골로 가는 집이 없었지만, 제주에 살면서 우리 세 가족이 좋아하는 단골 맛집이 각각 따로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정든 곳들과도 작별을 해야 했으니...

가파도 자전거 여행, 자전거보다 바람을 타는 기분이 더 좋았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가파도 여행을 하며 제주살이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고, 마지막으로 다시 가보고 싶었던 곳을 한번씩 돌았다. 

그래도 여전히 중문 읍내의 거리와 초등학교, 아기자기한 상가들,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우리 집은 눈 앞에 생생하다. 


제주살이를 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그건 다름아닌 내가 평발이라는 것. 누가봐도 알 수 있는 평발이 아니라, 걸음을 내디뎌서 지면에 발바닥이 닿을 때 평평해지는 '유연성 평발'이라는 것. 공교롭게도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지금까지 내 삶에서 중요했던 몇몇 장면들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자연 속을 걷고 또 걸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알게 된 것.


마흔 여섯이 되도록 알지 못했던 나의 몸과 내면. 그것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이 얘기는 앞으로 차차 하기로 하자.


또 한 가지.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육지에서는 서로 너무 멀어서 만날 수 없었는데, 오히려 제주섬으로 내려오니 여행을 와서 만나는 아이러니라니! 


아무튼 하나, 둘씩 차근차근 정리하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막상 제주를 떠나오니 마치 꿈 속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듯 아련하고 가물가물하다. 이 얘기들 또한 앞으로 차차 하기로 하자.


지금은 일단 꿈에서 깨어야 할 때... 


그런데 그건, 정말 꿈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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