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주례를 하지 않는 추세래. 그 대신 시인인 오빠가 '축시'를 써서 읽어주면 어때?"
처음에는 '내가 무슨 축시야' 싶은 민망한 마음에 못하겠다고 했다.
"아이고, 내가 무슨. 그랬다가 괜히 결혼식 망치면 어쩌려고."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뒤, 결혼식을 보름 앞둔 막내가 재차 내게 전화를 했다.
"그래도 오빠가 축시를 써서 읽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둘째도 같이 거들었다.
"오빠가 좋은 시인이자 작가니까, 더 의미가 있을 거 같아."
동생들은 막내의 결혼식을 의미있게 축복하면서, 자랑스러운 오빠를 세워주고 싶었나보다. 그 마음이 못내 고마웠지만, 여전히 망설여지는 마음이 앞섰다. 동생들은 나를 믿어주지만, 내가 내 자신을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끝내 거절을 하면 막내 결혼식의 식순에도 공백이 생길 것 같았다. 그러면 안 되겠지. 나는 고민 끝에 한번 축시를 써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첫 시집을 낸 2012년 이후로, 나는 근 10년 간 거의 시를 쓴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기에, 이제는 시적인 감각이 상당 부분 퇴화한 상태라고 할까.
이제와서 억지로 축시를 썼다가, 괜히 결혼식 분위기를 망치면 안되겠지 싶다가도, 누가 내 시를 귀 기울여 듣기나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축사만큼은 아니지만 결혼 10년차 선배로서, 이제 결혼생활을 시작할 동생 부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을 잘 전하고도 싶었다.
고심 끝에 나는 새로운 시를 직접 쓰기보다, 결혼식 분위기에 맞게, 기존의 시를 패러디해서 써보기로 했다. 그래서 류시화 시인의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의 느낌을 가지고, <지금 아는 걸 신혼 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시를 써보았다.
그리고 내가 지난 10년 간 결혼생활을 하며 느낀 것들, 그리고 막내 부부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을 있는 그대로 소소하게 시어에 담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막내의 결혼식 날,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결혼식을 축하해주는 무대에 섰다.
다음은 그때 축시를 읽는 모습을 아내가 찍어준 영상이다.
<지금 아는 걸 신혼 때도 알았더라면> 축시를 읽는 모습 (아내가 촬영하면서 내 축시에 공감하며 손하트를 그려주었다^^;;)
내가 한 말과 축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안녕하세요? 신부 오빠입니다. 저는 시와 소설을 쓰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신랑신부가 원래는 저한테 축시를 부탁했습니다.
올해로 저희 부부는 결혼 10년차인데요. 가끔은 다시 신혼 때로 돌아가면 어떨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지금 아는 걸 신혼 때도 알았더라면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시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살짝 패러디해서 <지금 아는 걸 신혼 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느낀 것들, 그리고 신랑신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한번 시로 써보았습니다.
그럼, 읽어보겠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신혼 때도 알았더라면>
- 이 하
지금 알고 있는 걸 신혼 때도 알았더라면
지금부터가 진짜 인생학교라는 것을 깨닫고
배우자가 진정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했으리라.
누군가의 가족이자, 어딘가의 일꾼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단독자로 서로를 바라보고, 또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으리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구속하기보다
믿음으로 존중하고, 기다리려고 노력했으리라.
이기는 기쁨보다 지는 행복을 더 만끽했으리라.
때로 말다툼을 하더라도
이성적인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고
같이 울어주는 게 함께 이기는 것임을,
그렇게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아예 잊어버렸으리라.
그저 상대의 눈을 더 많이 들여다보고, 더 많이 속삭이고,
더 많이 손을 잡고 떠났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신혼 때도 알았더라면
사랑한다는 이유로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았으리라.
나 자신을 믿고 열심히 일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함께 보내는 시간임을 알고,
바쁘다는 핑계로 기념일을 놓치거나, 여행을 미루는 일은 없었으리라.
아니, 함께 걷는 모든 순간이 여행이자 축복임을 깨달았으리라.
매순간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걸 주저하지 않으리라.
사랑한다는 이유로 속상함을 참기보다
솔직하게 상대에게 말할 줄 알고, 그러면서도 포장하지 않았으리라.
때로는 이해를 얻지 못해도 서운해하거나 푸념하지 않았으리라.
때로는 서로에게 실망하더라도,
그 또한 이 여행의 간이역임을 믿었으리라.
실망역이 있기에 희망역이 있고, 희망역이 있기에 행복역이 있음을,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임을 믿었으리라.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배우자를 사랑하는만큼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리라.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지는 데 관심을 갖고, 더 많이 달리고 더 많이 읽었으리라.
내가 가진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상대에게도 숨기지 않았으리라.
그러면서도 그것을 이해해주길 바라기보다,
그것에서 자유로워지는 내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으리라.
배우자의 아쉬움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돌아보며
조금 더 성숙해졌는지 스스로 비교하기를 멈추지 않았으리라.
아아, 더 많이 고백을 했으리라.
인생은 너무도 짧고, 소중한 사람은 너무 빨리 떠나고
우리가 함께 나누는 시간도 찰나에 불과함을 깨닫고
그 모든 순간에 당신과 함께 꽃을 피웠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신혼 때도 알았더라면.
축시를 읽고 내려오는데 많은 이들이 큰 박수를 쳐주었다.
지금껏 내가 시를 써서 누군가의 호평을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공감과 박수가 쏟아졌다.
나는 그 자체로 감사했다. 조금이나마 내가 결혼생활에서 느낀 것들이, 막내 부부에게 잘 전해지고 그로인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이 전부였다. 조금이나마 그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이후에도 가족들과 막내의 친구분들이 계속 후기(?)를 전하며 고맙게도 축시를 공유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나마 브런치에 축시를 올려보고자 한다.
지금 와서 내가 축시를 읽은 영상을 보니, 아내가 촬영하면서 중간중간에 손하트를 그려주는 게 보인다.
"자기가 그 시를 읽으니까, 나도 조금 신경쓰이더라?"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런 축시'를 읽는 시인의 아내는 어떤 사람인지 많이 궁금해했으리라.
(그러나 그녀 또한 지난 10년 동안 얼마나 많이 고생했을까.)
아무튼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축시를 읽어준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 또한 막내에게, 둘째에게, 부모님께, 그리고 아내와 아들에게, 그 모두에게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