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아이처럼
하늘이네 집을 고치고, 일주일쯤 지났을까.
그 사이, 늦은 봄비가 한 차례 왔지만, 겹겹이 쌓은 슬레이트 지붕은 넉넉하게 빗물을 흘려냈다. 빗물이 새지 않으니 벽지도 잘 말랐다. 하지만 렁찬이 보기에 하늘이네는 집터 자체가 습해서 문제였다.
“아무래도 어머님 퇴근하기 전까지는, 하늘이가 보건지소에 있는 게 좋겠어요.”
“아이고, 저야 감사하죠. 그런데 죄송해서 어째요.”
이정희는 황송해하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우렁찬은 곧바로 군청의 최민석 주무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건지소 예산으로 아동용 물품을 살 수 있냐고 물었다. 최 주무관도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그것도 모자라 우렁찬은 온라인으로 놀이매트와 책장, 그림책 등을 추가로 추문했다. 그리고는 벌써 며칠째 바닥에 매트를 깔고, 책장과 책상을 조립하여 세팅한 것도 모자라 아예 동물 캐릭터가 들어간 벽지로 도배까지 마쳤다.
조금이라도 먼지가 날만 한 것들은 전부 위층으로 옮겼다. 그림책과 동화책이 속속 도착하자, 그것을 종류별로 나누어 책장에 꽂았다. 색연필과 크레파스 상자를 옆에 놓고, 작은 책상과 의자도 나란히 배치했다.
“선생님?”
옥분은 그때마다 옆에서 조금씩 도왔다. 주로 쓸고 닦는 일이었고, 번거로운 일들은 렁찬이 아침저녁으로 도맡아 했다.
“우와, 이 정도면 소아과에다가 어린이 도서관, 그리고 돌봄 센터까지요?”
“아이들이, 쉬려면… 아직 부족해요.”
“하늘이네 다녀오시더니, 또 달라지셨네요.”
“방과 후에, 혼자 있는 애들도 많고요.”
옥분은 매트 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알록달록한 그림책과 색연필, 자그마한 어린이 책상, 거기에 곰돌이와 토끼, 오리와 펭귄 등의 봉제인형까지. 그리고 다시 우렁찬을 돌아보니, 또 뭔가가 달라져있었다.
“선생님, 혹시… 면도하셨어요?”
아예 수염을 다 밀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깔끔하게 다듬었고, 귀밑으로 흘러내렸던 고수머리도 고무줄로 동여맸다. 지저분하고 피폐해 보이기보다, 외려 멋스럽게 구레나룻을 기른 느낌이랄까.
우렁찬이 민망해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아이들한테, 위생적으로도…”
“잘하셨어요. 한결 보기 좋아요.”
“그런가요? 고, 고맙습니다.”
우렁찬이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보니 웃을 때 입매가 씰룩이는 모습이 더 귀여웠다. 좀 더 곰돌이 아저씨를 닮았다고 할까. 그 모습과 보건지소 내부의 전체적인 풍경이 잘 어울렸다. 옥분은 창가에 화분을 몇 개 가져다 놓으면서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문 열어도, 되죠?”
우렁찬은 여전히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전처럼 마냥 햇살을 피하지는 않았다.
“물론입니다. 미리 말씀만 해주시면요.”
그러니까, 햇살을 맞이할 준비를 조금씩 해나가고 있었다.
“다행이네요.”
옥분은 그러면서 따로 가지고 온 동물 스티커를 잔뜩 쏟았다. 토끼, 곰, 여우 등의 캐릭터가 그려진 스티커였다. 은수가 아끼는 것들이지만 이미 한 쌍을 집에 붙였기에 남는 것들이었다. 옥분이 낮은 곳에 스티커를 붙였고, 우렁찬은 높은 곳에 붙였다. 스티커를 다 붙이고 나서 두 사람은 한 발짝 물러서서 대기실을 휘이 둘러보았다.
“숲 속의 비밀 진료소 같네요, 정말.”
“마음껏 숨 쉬고, 뒹굴 수 있겠죠?”
“그럼요. 저학년 친구들은 운동장보다 나을 걸요?”
옥분의 말에, 렁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오후, 보건지소 문이 빼꼼 열렸다.
“선생님, 계세요?”
“어서 오렴.”
하늘이가 들어서자, 옥분이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맞아주었다. 하늘이는 안으로 들어서다가 멈춰 서서는, 눈을 댕그랗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와…”
하늘이는 새로 꾸며진 공간을 보았다.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 곳곳에 나무가 드리워졌고, 동물 친구들이 뛰어다녔다. 한쪽에는 하늘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이 잔뜩 꽂혀있었다.
“하늘아, 마음에 들어?”
“네?”
옥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우렁찬 선생님이, 너 편하게 지내라고 만든 거야.”
“정말요?”
우렁찬이 흰 가운을 걸친 채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하늘이는 그 앞으로 쫓아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집도 고쳐주고, 이런 집도 만들어주셔서요.”
“어? 그래. 앞으로 편하게 놀다가 가. 어머니 올 때까지.”
“저기, 저 책들, 읽어도 돼요?”
“물론이지.”
“곰돌이샘, 진짜 최고!”
하늘이가 가방을 내려놓고, 쭈뼛쭈뼛 대며 렁찬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두 팔을 벌리려다 말고, 다시 한발 물러섰다. 렁찬이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더니, 허리를 숙여 먼저 두 팔을 벌렸다.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하늘이의 표정이 환해졌다. 금세 마음을 열고는 폴짝 뛰어올라 우렁찬에게 안겼다. 그 모습이 마치 아빠에게 달라붙은 아기 코알라 같았다. 렁찬이 멀뚱멀뚱 하늘이와 옥분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한 팔로 하늘이를 안고는 뱅뱅 돌았다.
“그 대신…”
늘 무표정이던 하늘이가,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었다. 그러더니 두 팔을 펼친 채 비행기가 되었다. 그 때문에 렁찬이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프지 마.”
“히힛, 빨리요, 더 빨리!”
그 모습을 본 옥분의 코끝이 찡해졌다. 날마다 하늘이가 학교에 오가는 것을 보았지만, 저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하늘이 아빠가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면, 아이는 더 마음껏 숨을 쉬며 뛰어놀지 않았을까. 늘 커다란 가방을 간신히 멘 채 털레털레 언덕을 올라가던 친구가, 철없는 아이처럼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래, 아직 여덟 살인데 철없는 아이가 맞지. 아이는 아이답게 커야 하지. 옥분은 새삼스레 너무도 당연한 사실 앞에서 마음이 짠해졌다.
“우앙, 나, 나는 괴물이다!”
렁찬이 애써 거인 흉내를 내며 쿵, 쿵 대기실을 오갔다. 렁찬 또한 매트 위를 가로지르며 생각했다. 아이는 아이답게 커야지. 아이가 아이답게 크지 못해 어른이 되면…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저도 모르게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하늘이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잡이처럼 붙들지 않았다면, 정말로 고개를 흔들었으리라. 그러나 하늘이는 작은 손으로 렁찬의 머리를 꼭 잡고 웃었다. 이제 더는 고개를 흔들지 말라는 듯이. 이제 더는 자신을 자책하지 말라는 듯이.
렁찬은 생각을 내려놓고, 곰 아저씨가 되어 진료실을 뒹굴었다.
안녕하세요? 이하입니다. 당분간 연재를 수요일로 변경하려고 합니다. 그 대신, 조금씩 더 내용을 늘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주도 '철없는 아이'처럼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