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운리 소아과는 오늘도 문을 엽니다 #12

마음의 날씨

by 이하

하루가 지날수록 아이들 손님이 늘었다.


수진이와 은수, 미루까지 찾아와서는 한참을 놀다가 갔다. 아이들은 매트 위에서 뒹굴며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다. 옥분이 어깨너머로 아이들을 봐주었다. 렁찬은 진료를 보면서도 창문 너머로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하루는 하늘이가 먼저 보건지소로 쫓아 들어오면서 자랑했다.


“우리 반 친구가 와요!”


두운초등학교는 전교생이 한 학급이었고, 학년 별로 따져도 한두 명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우리 반 친구’라 함은 또래의 짝꿍이나 마찬가지. 옥분도 대번 눈을 반짝였다.


“세희가 왔다고? 어머, 세희 엄마?”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얼굴이 창백한 여자아이의 손을 붙든 채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세희가 하도 아프다고 해서…”

“어디가 아픈데?”

“요즘 자꾸 배가 아프다고 하네요.”


우렁찬이 나오더니 아이를 바로 진료대로 안내했다. 세희는 주변을 살폈다. 따뜻한 색감의 벽지와 인형들, 무지개처럼 드리워진 책들과 장난감. 비로소 잔뜩 굳었던 세희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이름이 뭐니?”


렁찬이 묻자, 세희는 슬쩍 엄마를 보더니 눈을 깔고 말했다.


“세희요.”

“그래, 세희야, 반가워. 어디가 아파?”

“배요.”


우렁찬이 청진기를 세희의 배에 댔다.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이어서 배를 살짝 눌러보았다.


“아프니?”

“아니요.”

“여기는?”


렁찬은 다시 세희를 보았다. 세희는 별다른 반응 없이 땅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렁찬의 질문에 다시 엄마를 힐끗 쳐다보았다.


“조금, 아파요.”


우렁찬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아플 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뭐라 특정할 만한 증상도 없었다.

우렁찬은 더 묻지 않고, 이번에는 엄마한테 말했다.


“세희가, 언제부터 아팠어요?”

“아침부터요. 밥도 안 먹고…”


다시 세희를 보았다. 세희는 여전히 고개를 숙였다.


“일단 백초로 만든 소화제 하나 드릴게요. 오늘은 푹 쉬고, 내일도 아프면 다시 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세희 엄마는 세희의 손을 잡고 나갔다. 세희는 나가면서 한 번 뒤돌아보았다. 하늘이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여기서 놀다가 가도 돼.”

“정말?”


세희가 조심스레 엄마를 올려다보았지만, 엄마는 이래저래 바쁜지 세희의 손을 잡고 나섰다.


“다음에 놀래?”


엄마의 말에 세희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렁찬은 세희를 배웅해 주었다.




사흘 후, 세희가 또 왔다. 이번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우렁찬은 잠시 세희를 진찰해 보고는 확신했다. 이것은 꾀병이구나.


“많이 아프니?”

“머리가, 계속 아파요.”


이마를 짚어봤지만 역시 열은 없었다.


“저런, 그랬구나.”


그러나 우렁찬은 세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병원놀이하듯 청진기로 이마까지 짚어보았다.


세희 엄마가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세희가 요즘 계속 아프네요. 어젯밤에는 또 가슴이 아프다고 해서, 주무시는데 찾아오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렁찬이 고개를 저었다.


“잠이 별로 없어서요. 아이가 아프면 꼭 부르세요.”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그런데, 세희는…”


우렁찬이 물끄러미 세희를 보았다. 세희는 렁찬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세희의 체온을 쟀다. 역시 열도 없고 이상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렁찬은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꾀병이구나. 그렇기에 이 병의 원인은 몸이 아닌 마음에 있는 거구나.


“세희 어머니, 잠깐 밖에서 기다려주시겠어요?”


세희 엄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혹시 심각한 게 있나요? 원주시의 큰 병원에 가봐야 할까요?”


우렁찬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세희가 옆에 있는데 꾀병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랬다간 세희의 증상이 더 심해질 것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엄마를 걱정하게 할 수도 없었다.


“잠시만요. 몇 가지만 확인할게요.”


렁찬의 말에, 옥분도 뭔가를 눈치챘는지 옆으로 다가섰다.


“그래요, 세희 엄마. 내가 옆에서 같이 볼 테니 걱정 말고 조금만 기다려요.”


그제야 세희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리고는 렁찬에게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시구요.”


잠시 후 렁찬은 의자를 당겨 세희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의자를 낮추어 세희랑 눈높이를 맞추었다. 세희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세희야.”

“네…”

“진짜 아픈 거 맞아?”


세희는 손가락을 맞잡은 채 발끝을 동동 굴렀다.


“조금요.”

“조금? 조금, 얼만큼?”

“그냥 조금.”


우렁찬은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밖에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집에 있기 싫으니?”


세희가 작은 손을 오므렸다.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냥…”

“편하게 얘기하렴. 서, 선생님은 세상에서 비밀을 제일 잘 지켜. 다른 건 꼴등인데, 비밀 지키기는 일등이야.”


그 말에 세희가 처음으로 렁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렁찬이 세희의 눈을 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비밀 지키기 짱, 걱정 마. 숲 속 곰 친구들한테도 얘기 안 해.”


그 말에 세희가 미소를 지었다.


“정말요?”


렁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옥분을 보았다. 그제야 옥분 또한 웃음을 머금은 채 조용히 진료실을 나갔다. 이제 진료실에는 렁찬과 세희, 둘만 남았다. 렁찬은 위화감을 주지 않으려고 선글라스를 진작 벗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찬찬히 커튼을 올렸다. 창밖으로 햇살이 밀려들면서, 통창 너머로 푸른 나무와 청보리밭이 환하게 펼쳐졌다. 세희의 표정이 좀 더 밝아졌다.


“정말이죠?”

“그럼.”

“하늘이한테 들었어요. 선생님은 다 고쳐준다고요.”


렁찬의 눈동자가 떨렸다.


“하늘이가… 정말, 그랬어?”

“수진이랑 은수도 그랬어요. 곰돌이샘은, 안 아프게 해준다고요.”


우렁찬의 입술이 가만히 떨려왔다.


“그, 그러려면 어떻게 아픈지, 잘 얘기해주어야 해.”


세희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렁찬은 더 묻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이윽고 세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아빠가, 맨날 싸워요.”

“…”

“어제도, 그제도…”

“그랬구나.”


세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나 때문이에요.”


우렁찬의 손도 가만히 떨려왔다.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손등에서 다시금 두드러기가 일어났다. 갑자기 햇살이 더 버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렁찬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찬찬히 호흡을 하며 스스로 마음을 다스렸다.


“너 때문이 아니란다.”


그 말을 하며 렁찬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귀신도 괴물도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부모의 싸움이었다. 특히 소리를 내지르거나 손찌검이 오갈 때, 아이의 공포지수가 한계치에 이른다고 했던가. 아이는 그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며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아이의 자존감은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우렁찬은 자신의 팔등과 목, 그리고 얼굴에 차례로 피어오르는 두드러기를 스스로 인식하며 다시 말했다.


“너 때문이 아니야.”

“정말이요?”


세희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에요. 나만 없어지면…”


그러더니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소리 없는 울음. 슬픔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끝끝내 쏟아낼 수 없는 울음소리. 아이는 혹여 부모가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할까 봐, 지금껏 이렇게 울음을 삼켜만 왔을까.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에서, 우렁찬은 문득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미소를 지었다.


“햇님이… 밝게 웃어. 그러다가 햇님이 아프면, 구름이 나와. 구름이 힘들 때는 비를 내려. 우르릉, 쾅… 천둥도 쳐. 그럴 때는 무서워. 하지만 그러고 나면 어때?”


렁찬의 이야기에 세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서 세희의 한쪽 볼에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비가 내리고 나면, 하늘은 또 어때?”


세희가 훌쩍이며 답하였다.


햇님이, 나와요.”

“그래! 그거야. 그건 그냥 하늘이야. 엄마, 아빠에게도 날씨가 있어.”

“날씨요?”

“맑을 때도 있고, 흐릴 때도 있고, 우르릉, 쾅! 할 때도 있고.”

“맨날 흐리면요?”


렁찬은 잠시 할 말을 골랐다. 아이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지가 느껴져서 가슴이 아렸다. 그러나 그럴수록 렁찬은 웃었다.


“장마가 왔나 본대?”

“장마?”

“응, 장마 알아?”

“비 계속 오는 거요?”

“잘 아네. 많이 못 놀아서 슬픈 날.”


그 말에, 세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엷게 웃었다. 렁찬은 굳이 세희를 달래려 한다거나 당부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장마가 올 때는 여기서 놀면 되지.”


벌써 같은 반 단짝 하늘이가 놀이방처럼 꾸며놓은 대기실에서 미루랑 책을 보고 있었다. 수진이랑 은수는 인형 놀이를 하는 중이었다.


세희의 얼굴에 빛이 들어왔다.


“저도, 여기서 놀아도 돼요?”

“그럼? 당연하지.”

“정말요?”

“여기는 숲 속 곰돌이샘의 놀이터야. 해가 뜨거워도, 날이 흐려도, 장마가 아무리, 아무리 오래 이어져도, 여기는 그대로야.”

“우와아…”


렁찬이 세희의 눈을 보며 말했다.


“날씨가 바뀌는 건, 세희 탓이 아니야.”

“저, 정말요?”

“어른들도, 나도, 마음속에 해가 뜰 때가 있고, 구름이 뜰 때가 있어. 그런데 그게, 내 생각대로 안 바뀔 때가 많아. 그럴 땐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고, 그냥 기다리곤 해. 나도 지금 기다리는 중이야.”

“곰돌이샘도, 마음이 아파요?”


렁찬은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솔직히 나도, 이 장마가 무, 물러가기를 기다리고 있어.”


세희가 눈을 깜빡이며 다시 물었다.


“제가 말을 안 들어서 그런 거 아니죠? 엄마 아빠가 나 산에 버리는 거 아니죠? 그렇죠?”


우렁찬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아니야. 절대 아니지.”


세희의 큰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참고 있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아아앙!”


비로소 아이다운 울음소리, 아니, 아이의 울음보가 터졌다. 우렁찬은 떨리는 손을 다시금 쥐었다가 폈다. 커다랗고 두툼한, 그러나 한없이 작은 손을, 다시 크게 펼쳤다. 그리고는 세희의 등을 가만히 다독였다.


“엄마, 아빠, 나빠!”


세희는 렁찬이 품에 안겨서 엉엉 울었다. 옥분이 진료실 틈으로 그 모습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렁찬은 아무 말 없이 세희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오래오래 등을 쓸어주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세희 엄마가 깜짝 놀란 얼굴로 옥분을 보았다.


“세희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지만, 옥분이 옆에서 조용히 세희 엄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세희 엄마, 조금만 기다려줄래?”

“세희야…”


- 으아아앙! 엄마, 아빠, 나빠! 으아앙!


최근 들어 한 번도 세희가 저렇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들어가서는 한층 성숙했다고만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옷을 갈아입고, 묵묵히 책가방을 챙기고, 혼자서 학교에 다녀오는 게 대견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저 울음소리를 듣고는 아차, 싶었다. 아이는 결코 성숙한 게 아니었다. 그저 꾹꾹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 마음을 꾸욱 누른 채 엄마, 아빠의 눈치만 보고 지내온 것이다.


사실 그녀 또한 꾀병임을 진즉 알아챘다. 그렇기에 이참에 의사 선생님 앞에서 따끔하게 혼내줄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 얼마나 얄팍하고, 부끄러운 모습인가. 세희 엄마의 눈에서도 진한 눈물이 흘렀다.


옥분이 그런 세희 엄마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요새 많이 힘들지?”


두 부부는 3년 전에 두운리로 들어온 귀촌 농가였다. 의욕적으로 양계장을 인수해서 키우려고 했지만, 작년에 방역에 실패하여 대량으로 영계가 폐사하면셔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보험이 적용되면서 다시 시작할 기틀을 마련했지만, 그 과정에서 부부의 꿈은 휘청거렸다.


“흐흑…”

“사업은 다시 일으키면 돼. 하지만, 아이는…”


옥분은 더 아무 말도 잇지 않았다. 그래, 그건 부모 스스로 체득해야지. 부모도 부모는 처음이기에,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 자신도 지금 헤매는 처지에 무슨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세희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훔쳤다. 옥분은 손수건으로 세희 엄마의 눈가를 꾹꾹 닦아주었다.


“고마워요.”

“아니야, 세희 엄마. 잘 찾아왔어요.”


그때, 진료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렁찬이 세희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스트레스성 소화불량 같아요.”

“네?”


세희 엄마는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세희를 보았다.


“괜찮니?”


오히려 그녀는 세희가 괜찮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아직 여덟 살인데, 벌써 속마음을 꾹꾹 눌러 담는 걸 배우다니. 그걸 지금껏 엄마로서 알아차리지도 못했다니.


세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장마가 왔어.”

“으응?”

“엄마.”

“응, 세희야.”

“엄마는, 우산 있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세희의 말에, 그녀의 참고 있던 눈물이 주르륵,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장마처럼, 긴긴 장대비처럼 눈물이 흘러내렸다. 옥분이 다시금 다가서서 세희 엄마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세희 엄마는, 안간힘을 다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옥분에게 기댄다면 울다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으응, 세희야…”

“응?”

“비가 참 심술궂네.”

“맞아. 오래 와.”


세희 엄마가 다시 한번 숨을 들이쉬었다.


“엄마한테는, 세희가 우산이야.”

“어? 나는 작은데?”


세희 엄마가 방끗 웃었다.


“작지만 햇님이 되어주니까.”


그 말에 세희의 표정도 조금 밝아졌다.


“정말이야? 나 때문에 싸우는 거 아니야?”


세희 엄마가 무릎을 꿇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니야. 엄마, 아빠 마음에도 먹구름이 꼈나 봐.”

“먹구름?”

“그래서 햇님을 보지 못했었어.”

“정말?”

“그런데 이제 세희가 비도 막아주고, 햇님도 되어주니까, 엄마 마음도 너무 따뜻해졌어.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는 말 알아?”


세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엄마 마음이 더 단단해진 거 같아.”

“그럼 좋은 거지?”

“그동안 세희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해.”

“나도 엄마, 아빠 싸우게 해서 미안.”


이번에는 세희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는 안 싸울게. 아니, 조금만 싸울게.”

“응, 약속?”

“약속할게. 엄마가 많이 미안하고, 고마워.”


그제야 세희가 환하게 웃으며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옥분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수도 그랬다. 철순과 부부싸움을 할 때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겁을 먹은 채 옷가지 사이로 숨더니, 언젠가는 귀가 아프다며 세탁기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었다. 기겁을 한 옥분은 그날 밤 달님을 바라보며 맹세했다. 저 지긋지긋한 철순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은수가 무서워서라도 내가 성불을 하여 철순의 못난 성정을 다 받아내리라고. 그리하여 은수가 다 컸을 때 이혼을 하든 졸혼을 하든 그때 가서 저 화상과 결단을 내리라고.


그런데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날 철순도 밤하늘을 바라보며 비슷한 다짐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부모는 부모로서, 또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구나, 싶었지만 그래놓고도 몇 번이나 이혼 위기를 넘긴 옥분과 철순이었다. 살아온 환경이 지난했고, 공교롭게도 가장 약한 마음의 상처가 맞물렸다. 그래서 상처는 자녀에게 업보처럼 대물림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이번 대에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것을 끊어내야 하리라. 옥분은 새벽에 일어나면 마을 입구에 서낭당처럼 쌓아놓은 돌탑 앞에서 남몰래 빌고는 했다. 그래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진정한 아버지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그냥 되어지는 게 아님을 옥분 또한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옥분은 고개를 돌려 가만히 렁찬을 바라보았다. 렁찬은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서 뒷짐을 진 채 통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목 부근에 두드러기가 일어났지만, 렁찬은 긁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지. 렁찬이 오면서 두운리가, 이걸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조금씩 체기가 내려가고 있다고 할까. 마치 바늘로 손을 딴 것처럼 아이 한 명, 한 명이 웃음을 되찾으며, 그로 인해 가정의 숨통이 트이고 있었다. 정말로 신기한 일이지. 그 말을 해줄까 하다가, 옥분은 피식 웃으며 진료실 문을 닫아주었다.




우렁찬은 뒷짐을 진 채 통창을 바라보았다.


“어?”


그런데 아까부터 누군가가 보건지소 문 앞에서 서성이는 게 보였다. 잔뜩 걱정스러운 눈으로 안쪽을 살피며 안절부절못하는 남자. 그러더니 세희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들이밀고 귀를 기울이던 남자.


아, 세희 아빠구나.


남자는 아예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한 채, 그대로 서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마도 딸과 아내가 나누는 대화를 모두 들은 것 같았다. 세희가 계속 아파서 이날만큼은 휴전(?)을 한 채 같이 보건지소를 찾았나 보다.


렁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기실 쪽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그 사이, 세희가 꺄르륵 웃으며 매트를 깔아놓은 놀이방을 뛰어다녔고, 하늘이도 신나서 펄쩍 뛰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은 언제나, 부모보다 먼저 부모를 용서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어른을 용서한다. 그렇기에 언제나 빚을 지는 것은 어른이다.


렁찬은 다시 선글라스를 끼려다 말고, 커튼을 내렸다. 행여 세희 아빠랑 눈이 마주치면, 그가 민망해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려다가 직사광선만 피할 정도로 살짝, 다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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