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운리 소아과는 오늘도 문을 엽니다 #13

- 벌집과 퉁퉁이 선생님

by 이하

세희네가 보건지소에 다녀간 지 며칠이 지났다.


어느덧 6월의 초입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렁찬은 5월까지도 후드티를 고집했지만, 옥순의 잔소리에 긴 팔 셔츠를 입기 시작했다. 여전히 선글라스를 꼈지만, 전처럼 햇빛을 피하지는 않았다.


보건지소 놀이방은 이제 아이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하늘이와 세희가 거의 매일 들렸고, 미루와 수진이, 은수도 자주 찾았다. 옥분은 근무하는 날 외에도, 세탁소 일을 마치면 건너와서 아이들을 봐주었다.


“곰돌이샘!”


그날도 하늘이가 먼저 달려 들어왔다. 숨바꼭질하듯 세희와 미루도 뒤쫓아 들어왔다.


“아침부터 짹짹, 요란하구나.”

“어제 어디까지 읽었더라?”


하늘이가 한참 읽던 책을 찾았고, 세희와 미루는 새로운 인형을 집어 들었다. 하늘이의 뒤에서 같이 책을 고르던 세희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렁찬을 올려다보았다.


“응? 요즘은 배 안 아파?”


렁찬의 말에 세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요.”


옥순의 말에 따르면 세희네 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한결 줄었다고 한다. 사람살이가 다 그렇듯 아예 싸움을 멈출 순 없으리라. 그러나 ‘데시벨’이 줄었다는 사실만으로 많은 것을 유추할 순 있었다.


세희가 한 마디를 덧붙인다.


“배가… 덜 아파요.”

“다행이다.”


렁찬이 작게 웃으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창문 너머로 아이들이 보였다. 세희도 그림책 삼매경에 빠졌고, 하늘이는 한쪽에 스케치북을 펴더니 그림책 삽화를 따라 그렸다. 은수랑 미루가 하늘이의 그림이 신기한 듯 푹 빠져서 들여다보았다.


때때로 싸울 때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금세 울음을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시시덕거렸다.


그때, 렁찬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선생님, 저 서소리예요.”


목소리가 다급했다.


“무슨 일이세요?”

“학교 운동장에 벌집이 생겼어요.”

“벌집이요?”

“아침에 보니까 나무에 벌이 잔뜩 모여 있더라고요.”


렁찬이 통창으로 학교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른들 몇이 멀찌감치 서서 한쪽을 가리키는 게 보였다.


“소방서에 연락하셨어요?”

“했는데 먼저 처리할 일이 있으니, 끝나고 온대요.”

“그게, 언제죠?”

“2시간 후요.”

“아이들은요?”

“실내에 있게 했어요. 체육 시간이었는데 교실에서 하자고 했어요. 수업이 먼저 끝난 저학년 아이들은 쪽문으로 내보냈구요. 거기, 잘 있죠?


서소리도 아이들이 보건지소로 몰려간 걸 알고 있었다.


"네, 여기 잘 있어요."


렁찬이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물었다.


근데 말벌이에요, 꿀벌이에요?”

“잘 모르겠는데, 까맣고 노란색이에요.”

“크기는요? 손가락만 해요?”

“아니요, 작아요. 손톱만 해요.”

“그럼 꿀벌이네요.”


렁찬이 말했다.


“2시간이면 괜찮을 거예요. 꿀벌은 온순해서요.”

“정말요?”

“네, 자극하지 않으면 먼저 공격 안 해요. 아이들만 가까이 안 가게 하시면 돼요.”

“다행이다. 걱정했어요.”

“분봉인 것 같아요. 여왕벌 찾아서 이동하는 중이에요.”

“분봉이요?”

“네, 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벌들이 새로운 집을 찾아 떠나는 거예요. 보통 하루 이틀이면 자연스럽게 떠나요.”

“그렇구나. 재밌네요.”

“소방관들이 안전하게 처리해 줄 거예요. 걱정 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렁찬은 전화를 끊고, 다시 한번 운동장을 살폈다.


문득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어릴 적, 시골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갔을 때였다. 할아버지는 작은 양봉장을 했는데, 벌통이 일곱 개쯤 있었다. 렁찬은 벌이 무서워서 멀리서만 보았다.


“렁찬아, 이리 온?”


할아버지가 불렀다.


“무, 무서워요.”

“괜찮아. 벌은 자극하지 않으면 먼저 공격 안 해.”


할아버지는 방호복도 안 입고 벌통을 열었다. 벌들이 웅웅거리며 날아다녔다. 렁찬은 숨을 죽였다.


“봐라, 이게 여왕벌이야.”


할아버지가 한 마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른 벌들보다 컸다.


“이 세계는 여왕벌을 중심으로 모든 게 돌아간다. 얘네들은 여왕벌을 지키려고 사는 거야.”

“할아버지, 안 무서워요?”

“무서워. 그래도 이 녀석들을 알고 나면, 존중하게 돼.”

“침으로 쏘면요?”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었다.


“살살 대하면, 예네도 안 물어.”


렁찬은 그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벌들이 날아다녔지만 공격하지 않았다.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아보는 걸까. 그 사실이 무척 신기했다.


“할아버지…”


렁찬은 그때를 떠올리며 다시금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눈이 부셨지만, 두드러기가 일지는 않았다.


“아이들만 실내에 있으면 괜찮겠지?”


렁찬은 창가를 떠나지 않았다.



벌집은 바로 교문 옆 느티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선생님, 집에는 어떻게 가요?”


순호가 묻자, 서소리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쪽문도 있고, 소방관 아저씨들 오면 나갈 수 있어.”

“언제요?”

“곧 올 거야.”


하지만 시계를 보니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 서소리는 한숨을 쉬었다. 아이들이 실내 체육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지쳐 보였다.


“선생님!”


현우가 손을 들었다.


“응?”

“교문은 이쪽에서 멀잖아요.”


현우가 창밖을 가리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저학년 아이라면 모르겠지만, 고학년들은 조금씩 활동을 하게 해줄 필요도 있었다.


서소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앞으로 아이들이 모여들어 간절한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꿀벌은 온순하다는 렁찬의 말도 떠올랐다.


“그래, 알았어. 단, 벌집 쪽은 절대 가면 안 돼?”

“네!”


아이들이 환호하며 우르르, 뛰어나갔다.


초여름의 햇살이 따뜻했다. 남자아이들 둘은 이내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찼고, 여자아이들 둘은 고무줄놀이를 했다. 그 사이,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서소리도 교문 쪽을 등지고 선 채 아이들을 살폈다.


“패스!”


3학년 순호가 공을 몰고 가더니, 다시 4학년 현우에게 패스를 했다. 현우는 다시 순호에게 공을 보냈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골키퍼를 맡은 서소리는 다시금 교문 쪽을 돌아보았다. 벌들은 여전히 나무에 모여 있었다. 크게 밖으로 벗어나지 않았다.


“괜찮겠지?”


순호가 웃으며 공을 힘껏 골대로 찼다.


“우와아!”


서소리가 두 팔을 쫙 펼쳤지만, 공은 그대로 골대 위를 벗어났다.


“노골이야!”


순호가 아쉬운 표정으로 소리쳤고, 현우가 공이 날아간 쪽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어어? 안 돼!”


힘껏 날아간 공이 돌부리를 맞고는 높이 솟구쳤다. 그러더니 느티나무의 벌집이 매달린 가지를 건드리고 말았다.


“아악!”


서소리가 크게 외쳤다.


“모두 교실로 들어가!”


벌집이 흔들리더니, 놀란 벌들이 웅웅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러더니 자신들을 위협한 이들이 누군지 살피는 듯하더니, 이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 우우우웅


벌들은 금세 세를 불리더니, 이내 누가 봐도 벌떼인 걸 알아볼 정도로 크게 뭉쳐서 날아왔다.


“선생님!”


아이들이 소리쳤다. 하지만 서소리는 그들과 한참 떨어진 상태로 벌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이대로 같이 복도로 들어서면, 자칫하다가 아이들까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으니까.


“선생님, 어떡해요!”


그러나 벌들은 그럴수록 점점 더 세를 불리더니, 이제는 아예 서소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으아아앙!”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고, 교무실에서 교장이 달려 나왔다. 순호와 현우가 발을 동동 구르다가 밖으로 나서려 하자, 교장이 팔을 붙들었다.


“안 된다. 지금 나가면 위험해!”

“그럼 어떡해요!”

“소방서에, 소방서에!”


다른 선생님이 급히 전화를 걸었지만, 소방서에서는 한 시간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모두들 망연한 눈으로 벌떼와 서소리를 보았다.


“선생니이이임!”


바로 그때였다.


교문 쪽에서 웬 덩치 큰 남자가 미친 듯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곰처럼 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에 들어서더니, 두 팔을 벌리고 소리쳤다.


“이놈들!”


온몸에 챙이 넓은 농부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와 장갑, 후드티에 청바지, 그리고 고무장화까지 쓴 남자가, 흰 가운까지 펄럭이며 벌떼를 자극했다.


“여기다, 이 녀석들아!”


말 그대로 백곰이 춤을 추며 물고기를 쫓는 모양새였다.


- 우우우우웅


벌떼는 금세 타깃을 서소리에서, 백곰으로 바꾸더니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선생님! 빨리 들어가요!”


누가 봐도 렁찬의 모습, 렁찬의 목소리였다.


“선생님은 어떡하고요!”


서소리가 온몸을 웅크린 채로 우렁찬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많이 물려봐서, 괜찮아요. 빨리요!”


렁찬은 아예 흰 가운을 벗더니, 마치 투우를 하듯 크게 휘저었다. 벌떼가 몰려드는 대로 녀석들을 교란하거나 쳐내려는 것 같았다.


“어어? 어어, 수진아!”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수진이가 교문 옆의 정글짐, 그 사이로 이어진 타이어에서 고개를 쏙 내밀었다. 은수를 찾아 세탁소에 왔다가 혼자 놀이터에 잠시 들린 것 같았다.


“수진아!”


서소리가 소리를 지르며 그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나 우렁찬이 먼저 수진이를 발견했다.


“오지 마세요!”


그러더니 벌떼를 교문 밖으로 유인하려고 했다. 그러나 영리한 벌들은, 벌집과 더 가까운 아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수진아!”


우렁찬은 생각했다. 존중하면 벌도 함부로 안 문다고 했지. 그러나 이미 벌집을 건드린 이상 더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렁찬은 이를 악 물고는 수진이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그 자체로 커다란 이글루가 되어 수진이를 온몸으로 덮었다. 그리고는 흰 가운으로 다시 한번 안전하게 수진이를 감쌌다.


- 우우우우우웅


벌들이 한풀이를 하듯 렁찬에게 달려들었고, 서소리도 차마 다가설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가까운 곳에서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들 사이로 렁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아윽, 아따거! 꿀벌들아 미안, 한 번만 봐줄래?”


곧바로 소방관들이, 렁찬의 등에 물대포를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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