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을 피해도, 벌에 쏘이더라
잠시 후 렁찬은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옥분이 벌침을 빼주었다. 목에 세 군데, 팔에 다섯 군데, 발목에 네 군데, 얼굴의 양 볼에 연지곤지처럼 두 군데, 드러난 곳만 모두 열네 군데였다. 소방관들은 렁찬에게 읍내의 병원으로 가겠냐고 물었지만, 렁찬은 퉁퉁 부은 얼굴로 거절했다.
“선생님, 항히스타민제 드셔야 해요.”
“네.”
렁찬이 약을 먹고, 진료대에 그대로 누웠다.
“얼음 찜질 하세요.”
옥분이 얼음팩을 건넸다.
“아차거, 앗, 차차거…”
한참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옥분이, 그 모습을 보더니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저, 저기 선생님, 거울 좀…”
“네?”
옥분이 거울을 가져왔고, 렁찬이 가만히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렁찬의 얼굴이 곰처럼 벌겋게 불어있었다. 눈꺼풀은 퉁퉁 부어서 반쯤 감겨있었고, 양 볼은 볼록 솟아오른 데다가 입술도 소시지처럼 부어올랐다.
“저기, 이게 저예요?”
“풉, 죄송해요.”
옥분이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아프진 않으세요?”
“화끈거려요.”
렁찬은 다시 거울을 보았다. 고개를 저으려 해도 돌아가지 않았다. 밑도 끝도 없는 긴 한숨이 나왔다.
“당분간 부기가 안 빠지겠네요.”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문밖에서 소곤소곤 소리가 들렸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잔뜩 걱정하며 훌쩍거렸고, 몇몇 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발을 굴렀다.
“아이들이 와있어요?”
“네, 다들 선생님 걱정하고 있어요.”
렁찬이 몸을 일으켰다.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이대로 아이들을 걱정하게 둘 순 없었다.
“선생님 괜찮으실까?”
미루 목소리였다.
“들어가 볼까?”
이번엔 하늘이 목소리.
“무서워.”
세희 목소리.
“나 때문에, 그랬어.”
훌쩍이는 수진이와, 언니를 달래는 은수. 문고리를 쥔 렁찬이 가만히 웃었다. 그리곤 이내 문을 빼꼼 열었다.
“얘들아, 안녕?”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이밀고는 렁찬을 보았다.
“어어?”
“곰돌이샘!”
“으응?”
미루의 눈은 커졌고, 하늘이는 입을 막았다. 세희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살짝 손가락을 벌렸다. 그리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크크크큭.”
어디선가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다못한 미루가 소리쳤다.
“크큭, 선생님!”
“응?”
“복어 같아요!”
렁찬이 멈칫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쏟아졌다.
“복어?”
“네! 진짜 복어!”
하늘이도 키득거렸다.
“아니야, 만두 같아!”
“호빵!”
세희도 웃었고, 은수도 발을 동동 굴렀다.
“북극곰!”
수진이도 환하게 웃었다.
“햄스터!”
아이들이 다 같이 배꼽을 잡았다. 옥분이 당황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나무랄까 하다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렁찬도 따라서 웃었다.
“하하, 그러니? 그러면, 다행이네.”
“너무 귀여워요.”
“곰돌이샘!”
렁찬이 반쯤 감긴 눈꺼풀에 얼음팩을 문질렀다.
“그나저나 얘들아, 너희는 괜찮아?”
“네!”
미루가 대답했다.
“선생님이 구해줬어요.”
“저희는 안 다쳤어요.”
하늘이도 말했다.
“선생님만 다쳤어요.”
세희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괜찮아. 다행이야.”
렁찬이 퉁퉁 부은 얼굴로 웃었다. 렁찬이 가만 보니, 아이들의 이가 저마다 한두 개씩 빠져있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렁찬이 직접 만든 이빨요정 이야기였다.
“근데 곰돌이샘!”
미루가 손을 들었다.
“응?”
“이제 뭐라고 불러요?”
“선생님이… 선생님이지?”
“퉁퉁이 선생님!”
미루가 외치자 아이들이 따라 불렀다.
“퉁퉁이샘!”
렁찬은 어이없어하다가, 결국 웃고 말았다.
“알았어, 퉁퉁이 선생님.”
아이들이 집으로 간 저녁, 서소리가 보건지소에 찾아왔다. 그녀는 다짜고짜 우렁찬에게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아이들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는 말씀을 허투루 듣고 그만…”
서소리 또한 갑작스러운 벌집 사태에 놀란 것 같았다. 더군다나 아이들을 운동장에 내보낸 것에 대해 크게 자책하고 있었다.
“제가 방심했어요. 아이들이 나가고 싶다고 해도, 소방관이 오기 전까지 내보내지 말았어야 하는데…”
서소리는 혹여 벌에 쏘인 아이들이 있을까,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렁찬이 얼음팩을 거두고 답했다.
“그럴 수도 있죠 뭐.”
“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해요. 실수가 아니라도, 피치 못하게 일이 흘러갈 때가 있어요. 선생님 잘못이 아니에요. 사는 게 그런 거 같아요.”
렁찬이 재차 말했다.
“선생님 잘못이… 아니에요.”
보건지소에 들어서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서소리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들었다.
“말씀 감사해요. 그리고 아이들 살펴주셔서, 무엇보다 지켜주셔서…”
그런데 서소리의 눈에 렁찬이 들어온 순간.
“푸웁-”
심각하던 서소리가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저기, 선생님… 큼큼.”
서소리가 헛기침을 하며 애써 표정을 추슬렀다.
“저기, 죄송해요.”
우렁찬이 퉁퉁 부은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이 얼굴 보고 웃음이 안 나오면, 이상하죠.”
“그, 그래요? 그럼 조금 웃어도…”
“웃으세요.”
“하핫, 하하하하!”
서소리가 한바탕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근래 들어 언제 이렇게 웃어본 적이 있던가. 단순히 웃겨서가 아니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았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덕분이었다. 렁찬이 해준 말들이, 그녀에게 힘이 되어준 덕분이었다.
-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해요. 실수가 아니라도, 피치 못하게 일이 흘러갈 때가 있어요. 선생님 잘못이 아니에요. 사는 게 그런 거 같아요.
계속되는 웃음에 눈가에 살짝 물기가 서렸다. 정말, 그가 고마웠다.
우렁찬도 결국 따라 웃었다.
“하하, 퉁퉁이샘이래요. 이제 어쩌죠?”
“퉁퉁이샘이요? 하핫, 하하하하!”
한동안 웃음보가 터진 둘은, 손사래를 치며 같이 웃었다. 창밖으로 짙은 노을이 드리워졌다.
“아참!”
잠시 후, 서소리가 따로 보닝백에 챙겨 온 얼음팩을 건넸다.
“이거 쓰세요. 오래갈 거예요. 다른 것들은 냉동실에 넣어두고, 한 번씩 교체해 주시고요.”
보건지소에 따로 얼음팩을 구비해 둘 생각은 못 했기에, 서소리가 가져온 것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서소리가 또 다른 얼음팩을 집어 저도 모르게 렁찬의 볼에 대었다.
“어어?”
렁찬이 놀랐고, 서소리도 놀랐다.
“앗, 미안해요.”
서소리가 손을 거두었다가, 재차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렁찬이 눈사람처럼 굳은 채 그녀의 손길에 얼굴을 내맡겼다. 누가 보면 서소리가 의사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어, 그래요…”
“그런데 우렁찬 선생님.”
“네?”
“대체 선생님 별명이 몇 개예요? 곰돌이샘, 이빨요정샘, 털북숭이샘, 퉁퉁이샘…”
“하핫, 그러게요.”
서소리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덧붙였다.
“그리고, 궁금해요.”
“뭐가요?”
서소리는 한동안 뜸을 들였다. 알고 싶었다. 알고 싶으면서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껏 묻지 않았던 것들. 렁찬의 과거, 그리고 상처. 그 얘기를 몹시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주제넘는 생각이겠지.
“뭐든, 물어보세요.”
렁찬이 퉁퉁 부은 얼굴로, 간신이 말을 이었다.
“아, 목까지 부으셨네요.”
그렇다면 말을 오래 하기 더 힘들 것이었다. 서소리는 괜한 궁금증을 거두기로 했다. 그랬다가 자칫 렁찬의 상처가 덧나면 어찌 될까.
“뭐가 궁금해요?”
우렁찬이 재차 물었지만, 서소리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이제 렁찬도 쉬어야 할 시간.
서소리는 얼음팩을 옆에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쉬셔야 되는데, 제가 귀찮게 해드렸네요.”
렁찬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조금 화끈거리는데, 선생님 덕분에 시원해져서, 좋았어요.”
서소리가 미소를 지으며 문을 나섰다. 렁찬이 그 뒤로 한 발자국 따라나서며 배웅했다.
“안녕히, 가세요.”
그 말에 서소리는 가만히 뒤돌아섰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뭐, 뭐요?”
“아까 해준 말씀, 무슨 뜻인지 알고 제게 해주신 거냐고요.”
“네? 제가, 무슨 말을 했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면서요.”
“아…”
서소리가 다시 말했다.
“그 말씀, 선생님께도 돌려드리고 싶어서요.”
“그, 그게…”
서소리는 그 말을 듣고는,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었기에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우렁찬 선생님! 누가 그러는데,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대요. 실수가 아니라도, 피치 못하게 일이 흘러갈 때가 있다네요. 그분이 그러는데, 선생님 잘못이 아니래요. 사는 게 다 그런 거 같다고, 그러니까… 어깨 피시라고요!”
서소리가 그 말을 하고는, 그대로 학교로 달리기 시작했다. 흰 운동화가 보리밭 사이를 가로질렀다. 쏴아아, 바람이 그녀를 호위하듯 좌우로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우렁찬은 무엇엔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굳은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건넨 말, 누군가를 위로해주고자 했던 말이, 자신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음을, 렁찬은 비로소 깨달았다.
멀리 사라져 가는 서소리의 모습을 바라보던 렁찬의 시선이, 통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으로 옮겨갔다.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퉁퉁 부은 얼굴. 오늘따라 더욱 낯설게 느껴지기에, 렁찬은 그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만큼은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찬아. 네 잘못이 아니야.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해. 사는 게 그렇더라. 벌을 피해도, 벌에 쏘이더라. 그런데 많이 쏘여보니, 아이들도 지켜줄 용기가 났어. 그게 좋더라. 찬아, 그러니까 아픈 곳에 여기 얼음팩…”
렁찬은 가만히 자기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보았다. 노을이 지는 두운리가 더없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저기 멀리 절골 쪽의 가파른 산길 쪽에서 불빛이 뱅뱅 돌았다. 그건 마치 도깨비불처럼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가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깨비불?”
안 그래도 몇몇 아이들이 요즘 밤마다 도깨비불이 나타난다며 무섭다고 하던 참이었다. 윗말에 사는 하늘이는 진짜 도깨비를 봤다고도 했고, 미루는 꿈에 도깨비와 나와서 오줌을 쌌다고도 했다.
렁찬이 간신히 눈을 크게 뜨고 그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래, 도깨비불…”
어릴 때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도깨비가 사람을 흉내 낸다는 이야기. 내가 이쪽으로 가면 도깨비도 이쪽으로 움직이고, 저쪽으로 가면 저쪽으로 따라 움직이고. 그것을 보고 있자면 도깨비가 정말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했던가. 그러나 할아버지도 젊을 때 산을 넘다가 그것을 보고는, 가까이 가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어느새 짙게 어스름이 깔리고,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졌다.
“어어? 이상하네?”
그러자 정말 이상하게도, 도깨비불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