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운리 소아과는 오늘도 문을 엽니다 #15(연재 재개)

도깨비불과 아이

by 이하

벌집 소동이 있고 며칠 뒤, 보건지소 대기실은 평소보다 소란스러웠다. 아이들이 창문에 옹기종기 붙어 산 쪽을 가리키며 수군거렸다.


“어제도 봤어? 진짜라니까!”

“파란 불이 뱅글뱅글 돌았어.”


미루가 심각한 얼굴로 우렁찬에게 다가왔다. 우렁찬은 아직 얼굴의 부기가 다 빠지지 않아 ‘반쯤 찌그러진 찐빵’ 같은 상태였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절골 산에 도깨비가 살아요.”

“도깨비?”

“네! 밤마다 불을 켜고 춤을 춰요. 어제 우리 할머니가 그랬는데, 애들 잡아가려고 신호 보내는 거래요.”


하늘이와 세희가 겁에 질려 울상을 지었다. 그때 은수가 토끼 인형을 안고 비장하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곰돌이 선생님이 있잖아!”

“맞아! 벌떼도 물리쳤는데 도깨비 쯤이야!”

“선생님, 이빨요정이잖아요. 도깨비 이빨도 뽑아버려요!”


우렁찬은 퉁퉁 부은 입술을 달싹였다.


‘아니… 물리친 게 아니라, 당한 거란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빛이 너무나 초롱초롱했다. 그는 차마 ‘도깨비 따위는 없다’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전혀 다른 말이지만, 렁찬에게는 왠지 ‘산타는 없다’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


“걱정들 하지 않아도 돼. 선생님이 좀 알아볼게.”

“정말요? 퉁퉁샘! 최고!”


아이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방방 뛰었다. 그러면서 스케치북에 도깨비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어?”


그런데 어쩐지 그 모습이 벌에 쏘인 자신의 모습과 흡사해서, 렁찬은 그게 어느 쪽을 그린 건지 알 수 없었다. 차마 묻지도 못했다. 행여 ‘퉁퉁샘’이란 대답이 나올까봐. 우렁찬은 엷게 웃으며 절골 쪽을 다시금 올려다보았다.


‘거기에도 아이가 산다고 했었지.’


옥분의 말을 떠올리며 렁찬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날 오후, 승복을 입은 노스님 한 분이 보건지소 문을 두드렸다. 절골 깊은 곳에 있는 작은 절, ‘두운사’의 주지 스님이었다.


“계십니까?”

“어서 오세요. 그런데 여긴 소아과…”


우렁찬이 우물쭈물하며 더듬거리자, 노스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합장하며 말했다.


“제가 아니라, 절에 있는 아이가 앓아누웠습니다.”

“아이가요?”

“예, 지원이라고… 여덟 살 된 동자승입니다. 며칠 전부터 곡기를 끊고 열이 펄펄 끓어서…”


우렁찬의 표정이 굳어졌다. 역시 산사에 아이가 있었구나. 게다가 열이 난다면 응급상황일 수도 있었다. 그는 즉시 왕진 가방을 챙겼다.


“잠시만요. 같이 가시죠.”


우렁찬이 곧바로 왕진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간호사 선생님, 잠깐 부탁드립니다.”


옥분이 손사래를 쳤다.


“걱정 마세요. 그리고 그냥 ‘옥분 씨’라고 부르시라니까.”

“아이구, 그럼 안 됩니다. 아무튼, 다녀올게요.”


렁찬이 밖으로 나서자, 놀이방에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따라 나왔다.


“선생님, 싸우러 가요?”

“으, 으응?”


아이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미루가 한 팔을 번쩍 치켜들고 소리쳤다.


“할아버지 스님, 그렇죠? 도깨비 나왔죠?”

“뭐, 뭐라구?”

“우와아! 도깨비 잡으러 간다!”

“퉁퉁샘! 도깨비 뿔 꼭 뽑아오세요!”

“지면 안 되요! 퉁퉁이 파워!”


우렁찬은 당황해서 뒷머리를 긁고 있는데, 노스님이 옆에서 흐뭇하게 거들었다.


“허허, 마을 아이들이 선생님을 장군처럼 따르는군요.”


그는 차마 해명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스님을 따라나섰다.


“퉁퉁이 파워! 퉁퉁이 출동!”


얼굴에 붓기가 많이 빠졌지만, 여전히 울긋불긋 상기되어 도깨비가 렁찬을 사천왕으로 보고 줄행랑을 치려나. 아이들 뒤에선 옥분이 미소를 지으며 혀를 내둘렀다.


노스님은 지팡이를 짚으며 성큼성큼 앞서나갔다. 산길의 경사는 가팔랐지만,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렁찬은 땀을 뻘뻘 흘리며 스님을 바짝 뒤쫓았다. 그렇게 15분쯤 올라가니 두운사가 보였다.


“저기랍니다.”


고즈넉한 절 마당을 지나 요사채로 들어가니, 조그만 아이가 이불을 쓰고 웅크리고 있었다. 빡빡 깎은 머리에 회색 승복. 하지만 얼굴은 영락없는 여덟 살 꼬마였다.


“지원아, 의사 선생님 오셨다.”


아이는 퀭한 눈으로 우렁찬을 올려다보았다. 우렁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아이 곁에 앉았다.


“안녕?”

“누, 누구세요?”

“의사샘이야. 많이 아프다며?”


지원이는 고개를 까딱하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렁찬이 청진기를 대보니, 심각한 질병은 아니었다. 가벼운 감기 기운에 영양실조 초기 증상. 하지만 아이의 눈빛이 너무 쓸쓸해 보였다. 렁찬은 청진기를 접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몸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구나. 세희가 겪었던 ‘장마 증후군’과 비슷한, 지독한 외로움이 원인이겠구나.


“스님, 지원이가… 언제부터 여기 있었죠?”

“작년 겨울, 어머니가 잠시 맡기고 갔는데… 소식이 끊겼습니다.”


우렁찬은 이 방에 들어서면서 댓돌 옆에 놓인 물건을 떠올려보았다. 다 타버린 깡통과 철사, 그리고 숯덩이들. 옛날 시골 아이들이 정월 대보름에나 하던 ‘쥐불놀이’ 도구였다.


“지원아, 밖에 있는 거, 쥐불놀이 도구 맞지?”


아이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밤에… 심심해서 만들었어요.”

“와, 대단하네. 혼자서 돌리고 노니?”

“네, 불을 돌리면… 예쁘거든요. 엄마가 저기 산 밑에서 볼 수도 있잖아요.”


우렁찬은 말문이 막혔다. 아이들이 무서워했던 도깨비불. 그것은 도깨비의 춤이 아니라, 엄마가 보고 싶어 불깡통을 돌리던 여덟 살 아이의 구조 신호였다. 아이는 엄마가 그리울 때마다 저것을 돌리고 또 돌렸으리라. 행여 이 불을 보면 엄마가 날 떠올리지 않을까. 행여 엄마가 자신을 찾아오다가 길을 잃지는 않을까. 최근 불이 안 보였던 건, 아이가 앓아누워 깡통을 돌릴 힘조차 없었기 때문이겠지.


렁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원이에게 말했다.


“엄마뿐 아니라, 많은 친구들이 보고 있어.”

“네?”

“그 아이들이 너를 궁금해 한단다.”


그 말 한 마디에, 동자승의 눈에 기대와 불안, 호기심 등이 빠르게 스쳤다. 그러면서 창백하던 얼굴에 설핏 혈기가 감도는 듯했다. 렁찬이 다시금 아이의 맥을 짚어보았다. 꺼져가는 불씨처럼 잠잠했다. 어떻게 이 아이에게 웃음을 되찾아줄 수 있을까. 렁찬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진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우렁찬이 스님에게 말했다.


“스님, 약은 드리고 가지만… 더 중요한 처방이 필요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하산(下山)입니다.”

“예?”

“지원이의 병명은 외로움입니다.”


그 말에 스님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스님 또한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다만 약이라도 먹으면 좀 안정될 줄 알고 달려간 것이었다. 다행히 약도 받았고, 처방도 받았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지원이에게, 또래 친구가 필요합니다.”


우렁찬은 멀리 보이는 보건지소를 가리켰다.


“다행히 직선거리고, 절골 어르신들이 밭에서 일하고 계셔서 지원이가 혼자 다녀오기에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네?”

“지원이 몸이 좀 나으면, 보건지소로 보내주세요.”

“하지만 지원이는 수행 중이라…”

“아이들과 같이 어울리며 울고 웃고 싸우고… 그것이 지금 지원이에는 최고의 수행이지 않을까요?”


노스님이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보통 분이 아니시군요. 하긴, 아이들이 부처님 대하듯 선생님을 따를 때 알아보았습니다.”

“네?”

“부처님께선 참으로 중요한 게 이심전심이라고 하셨지만, 동심과 통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 그 과업을 젊은 의사분이 하고 계시니까요. 게다가 마을을 구제하기 하기 위해 이렇게 깊은 산골까지…”

“하핫,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만…”

“고맙습니다.”


우렁찬도 스님을 따라 합장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보건지소 문이 빼꼼 열렸다.


“누구니?”


옥분이 고개를 내밀었지만, 방문객은 보이지 않았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듯 쪼르르, 숨을 때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러다가도 깔깔 웃으며 달려오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한참이나 기다려도 아이가 들어오지 않았다.


렁찬이 진료실에서 나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지원이니?”

“……”


그 말에 문이 다시 조심스럽게 열렸다. 승복을 입은 까까머리 꼬마가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동자승 지원이었다. 놀이방에서 놀던 아이들이 일제히 돌아보았다.


“어? 누구야?”

“스님이다! 꼬마 스님!”


우렁찬이 환하게 웃으며 지원이를 반겼다.


“어, 왔구나!”


그리고 아이들에게 소개했다.


“얘들아, 인사해. 선생님이 데려온 도깹, 아니… 친구야.”

“도깹?”


미루가 눈을 댕그랗게 떴다.


“혹시… 이 애가 도깨비였어요?”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우렁찬은 크게 손사래를 치며 지원이의 어깨를 감쌌다.


“아니, 이 친구가 도깨비를 잡았어. 선생님이 잡힐 뻔했는데, 지원이가 멋지게 나타나서 쥐불을 던졌어.”

“쥐불이요?”

“응, 그런 게 있어. 덕분에 선생님이 살아서 왔지.”

“우와!”


아이들이 경계심을 풀고 지원이에게 몰려들었다. 까까머리가 신기한지 만져보기도 하고, 손에 들고 있던 쥐불놀이 깡통을 구경하기도 했다. 금세 지원이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번졌다. 산 위에서 혼자 불을 돌릴 때는 볼 수 없었던 환한 미소였다.


“안녕…”


그때부터, 두운리 사람들은 더 이상 산 위에서 뱅글뱅글 도는 도깨비불을 볼 수 없었다. 그 대신, 보건지소 창문 너머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한층 더 크게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이 하입니다^^ 잠시 소설 후반부를 재정비하느라,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후반부 작업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여, 다시 연재를 재개하고자 합니다.


혹여 기다려주신 분께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두운리 소아과는 오늘도 문을 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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