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운리 소아과는 오늘도 문을 엽니다 #16

- 세상에 없는 정류장

by 이하

어느새 두운리에도 한여름이 찾아왔다.


산이 우거져서 비교적 시원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7월은 힘든 계절이었다. 렁찬 또한 에어컨 바람을 크게 틀어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이들도 학교만 끝나면 보건지소로 달려왔다. 선풍기만 있는 집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보건지소 문이 거칠게 열리고, 한 마을 주민이 중학생 아이를 업고 들어왔다.


“선생님! 준호가 쓰러졌어요!”


읍내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였다. 얼굴은 군고구마처럼 달아올랐고, 피부도 검게 그을려서 뜨거웠다. 전형적인 열사병이었다.


“얼음팩! 수액 준비해 주세요!”


렁찬과 옥분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준호의 옷을 느슨하게 풀고, 체온 유지를 위해 미지근한 물로 씻어주었다.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따로 부채질을 하면서 머리를 식혀주었다. 수액이 혈관을 타고 들어가 체온을 낮췄다. 그렇게 30분쯤 흘렀을까. 준호의 체온이 38도 아래로 떨어졌다.


“으음…”


준호가 눈을 떴다. 우렁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이의 손을 잡았다.


“준호야, 정신이 드니?”


준호가 멍한 눈으로 천장을 보다가, 우렁찬을 보고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 학원…!”

“뭐?”

"엄마한테 혼나는데… 학원 늦었어요. 버스가, 버스가 안 와서…“


우렁찬은 말문이 막혔다. 죽다 살아난 아이가 처음 내뱉은 말이 ‘살려주세요’도 아니고 ‘아파요’도 아니고, ‘학원 늦었어요’라니. 준호는 땡볕 아래 그늘 하나 없는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한 시간이나 기다리다 쓰러진 것이었다.


우렁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날 저녁, 마을회관에서는 정기 반상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장 김순덕 여사가 마이크를 잡고 고추 작황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 드르륵


회관 미닫이문이 열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문 앞에 서 있는 건 덩치 큰 곰, 우렁찬이었다. 평소라면 사람들 눈을 피해 다니기 바빴던 그가 제 발로, 그것도 이 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어? 선생님?”

“여긴 웬일이셔?”

“발전 기금 내러 오셨어?”


퉁명스럽게 묻거나, 농을 거는 어르신도 있었지만, 렁찬은 식은땀을 닦아내며 쭈뼛쭈뼛 안으로 들어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수십 개의 눈동자가 그를 향하자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저기…”


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안 들려요! 크게 말해봐요.”


뒤쪽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우렁찬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리고 배에 힘을 주었다.


“버스가… 왜 없을까요?”

“예?”

“이 마을에, 버스가 하루에 세 대뿐이라면서요. 그늘막도 없고.”


장내가 조용해졌다.


“오늘 준호가 죽을 뻔했습니다.”


우렁찬이 고개를 들고 사람들을 똑바로 보았다. 선글라스 너머의 눈빛이 찬찬히 반짝이기 시작했다.


“땡볕에서 1시간을 기다리다가, 뇌가 익을 뻔했다고요. 그런데 깨어나서 제일 먼저 한 말이 뭔지 아십니까? ‘학원 늦었다’였습니다.”


마을 어른들이 웅성거렸다. 준호 할머니가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우렁찬이 말을 이었다.


“어른들은 차 타고 다니죠. 트럭 있고, 경운기 있으니까. 근데 아이들은요? 걔네들은 그 땡볕에 그냥 서 있어야 합니다.”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떨림은 여전했지만, 울림은 더 깊어졌다.


“한 아이가 쓰러졌습니다. 다음은 누구가 될까요?”


그는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옥분을, 그리고 그 옆에서 놀고 있는 은수와 하늘이를 가리켰다.


“이 아이들이 조금 있다가 중학교에 들어가면, 다음 차례가 되어야 할까요?”


그 말에, 누구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군거렸다. 렁찬은 숨을 몰아쉬며 호소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의견을 모아주세요. 의사가 할 수 있는 건 치료뿐입니다. 미리 예방할 수 있게, 방법을 같이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고는, 도망치듯 회관을 빠져나갔다. 여기저기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다음 날 아침, 등교 시간인 8시. 마을 입구 느티나무 아래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 털털털털!


경운기 한 대가 화려한 꽃방석을 깔고 대기 중이었다. 운전석엔 밀짚모자를 쓴 은수 아빠, 이철순 씨가 앉아 있었다. 새벽부터 밭일을 하다가, 아내 옥분에게 등 떠밀려 나온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그 뒤로 미루 아빠인 최민석 주무관의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김순덕 이장님도 친히 용달차를 끌고 나왔다. 오히려 우렁찬의 SUV는 그 꽁무니에 서 있었다.


“두운중학교 가는 준호는 여기 타라!”

“우와! 이장 할머니?”

“두운고등학교 가는 지수랑 연희는 어떻게, 나눠 탈래, 같이 탈래?”

“아빠, 늦지 않겠어요?”

“군청에 보고했어. 아이들 통학 문제로, 오늘부터는 정시에 간다고. 군수님도 흔쾌히 허락하셨단다.”

“우와, 진짜요?”


아이들이 가방을 멘 채 쭈뼛쭈뼛 차를 골라 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하늘이, 미루, 은수는 바로 앞 두운초에 경운기를 타고 가겠다며 떼를 썼다. 이철순 씨가 웃으며 아이들을 조심스레 뒤에 태웠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뒤에는 남은 차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학생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렁찬도 머쓱한 표정으로 보건지소에 들어섰다. 어제 잔뜩 흥분해서 저지른 사고, 그러니까 엉망진창 웅변이 이런 풍경을 빚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 경운기를 몰던 은수 아버지, 철순이 보건지소 창가에 서 있는 우렁찬을 발견하고는, 거수경례를 올려붙였다.


“충성! 군의관님 덕분에 정신 차렸습니다!”


처음 이곳에 그가 왔을 때, 옥분이 사사건건 보건지소 일을 돕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철순이었다. 그러나 렁찬 덕분에 은수가 더 많이 웃고, 옥분도 적게나마 월급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게 되면서 부부 금실도 좋아졌다. 무엇보다 마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저기, 그게, 그러니까…”


우렁찬은 벌게진 얼굴로 엉거주춤 경례를 했다. 그러면서도 슬금슬금 커튼 뒤로 몸을 피했다. 어차피 커다란 몸이 다 가려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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