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의 눈사람
토요일 아침, 서소리는 모처럼 느지막이 일어났다.
보통은 주말에 본가가 있는 원주를 다녀오곤 했는데, 오늘은 중요한 일정이 있었다. 바로 하늘이네 지붕을 고치고 도배를 하는 것. 옥분이 나서서 사람들을 모았지만, 호응이 좋지는 않았다. 대부분 고된 밭일을 하다 보니 여유가 없었고, 무엇보다 고령자들이라 힘을 쓰기가 어려웠다. 아이들이 있는 젊은 부부들이 앞장을 섰고, 서소리와 우렁찬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서소리는 간단히 세수를 하고 츄리닝을 입었다.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밖으로 나섰다. 주말에는 수업이 없었지만, 그녀는 두운리의 휴일을 좋아했다. 그 자체로 세상이 통째로 잠든 느낌. 실개천 주변으로 드리워진 짙은 안개가, 산보다 먼저 마을을 감쌌다. 이따금씩 들리는 소 울음소리, 이어지는 맹꽁이의 후렴, 그때마다 단속하듯 내지르는 개 짖는 소리.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와 밥 짓는 냄새. 아이들이 꺄르르 웃으며 나타났다가 다시 꺄악, 소리지르며 사라지는 소리. 이런 것들은 오직 두운리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서소리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보리밭 사이를 내달렸다. 짙푸르던 보리가, 어느새 조금씩 누런빛을 띠고 있었다. 그녀는 하늘이네 집이 있는 윗말까지 한참을 내달렸다. 경사진 언덕을 오르느라 숨이 턱에 받쳤지만, 운동을 하는 셈 치고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문득 하늘이가 통학할 때를 떠올려보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천천히 걸어도 숨이 턱 막히는데, 하늘이는 그동안 어떻게 이 길을 오고 갔을까. 단 한번도 하늘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서소리는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서소리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남자친구 준호의 문자가 와있었다.
- 오늘도 서울에서 못 보는 거야?
서소리는 뭐라고 답장을 하려다 말고,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문득 3년 전, 처음 두운초등학교에 부임했을 때가 떠올랐다. 서소리가 임용고사에 합격한 때로부터 꼬박 1년이 지났을 때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용 소식이 날아들었지만, 발령지가 강원도에서도 산골 중의 산골인 두운리, 그것도 분교라는 것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두메산골 중에서도 더 위쪽인 ‘윗말’과 중턱인 ‘아랫말’, 그리고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야 나오는 ‘절골’까지 다 합해도 인구는 채 백 명이 되지 않았고, 두운초등학교 학생은 전부 8명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곧 폐교될 예정이라고 했다.
모두가 그녀를 말렸다. 교사가 되었다며 현수막까지 내걸었던 부모님도, 두운리에 가는 것만큼은 결사 반대했다.
“거기 너무 외졌잖아. 다른 데 지원할 수 없어?”
“여자 혼자 깊은 산골에서 어떻게 버티려고?”
친구들은 또 다른 관점에서 반대했다.
“폐교 직전인데 그런 곳에 왜 가려고?”
“학교 없어지면 임용까지 또 기다려야 하잖아?”
남자친구 준호는 다짜고짜 성을 냈다.
“거기 가면 언제 만나? 주말마다 서울 오려는 거야?”
임용고사에 합격하자마자 소개팅으로 만난 준호는 대기업 회사원이었다. 사람도 성실했고, 부모님도 그를 좋아했다. 그러나 장거리 연애는 쉽지 않았다.
“경력 쌓으면 전근 가겠지. 조금만 기다려줄래?”
준호는 나름 이해해보려 했지만, 인내심은 금세 한계에 다다랐다. 거꾸로 서소리는 이곳이 점점 좋아졌다. 도시와는 다르게 사람들도 정이 많았고, 아이들도 순박했다. 무엇보다 모두 서소리의 관심과 손길을 필요로 했다. 산과 하천, 새소리, 그리고 계절마다 다르게 피고 지는 꽃들. 한때 종교를 떠나 자연 속에서 수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서소리는, 어느새 이곳 두운리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준호는 점점 조급해졌다.
“학교 언제 폐교돼? 그럼 전근 가는 거지?”
“이 학교 없어지면, 아이들은 어쩌구?”
“그럼 나는? 벌써 2년이야, 장인, 장모님도 걱정하시고.”
참다못한 준호는 급기야 최후통첩을 날리고 말았다.
“나야, 아이들이야?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우리 앞날은 어떻게 하고?”
어느 날, 서소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도… 강원도 발령 신청하면 어때? 이쪽에 지사가 있잖아.”
준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촌구석 발령? 너 미쳤어?”
“같이 살 수 있잖아.”
“그러면 승진이고 뭐고 커리어 끝나. 너도 알잖아.”
“그래도.”
“아파트도 준비해놨다고.”
서소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창밖을 보았다. 나는 이곳이 좋은데, 왜 나만 포기해야 하지. 서운했지만, 준호를 탓할 수도 없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말이었으니까.
언덕을 다 올라서자, 하늘이네 집이 나왔다. 서소리는 하늘이네 집 앞에 서서 잠시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5월의 햇살이 낮은 지붕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어느새 우렁찬이 먼저 와서 땀을 뻘뻘 흘리며 슬레이트 지붕을 갈고 있었다. 망치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여자들은 벽지를 벗겨낸 자리에, 새 벽지를 발랐다. 풀 냄새가 집 안을 가득 메웠다. 미루가 수진이, 은수를 데리고 고무줄놀이를 했고, 하늘이는 마루에 앉아 노래를 불러주었다. 맑고 가는 목소리가 마당까지 흘러나왔다. 이렇게 들으니 하늘이의 노랫소리가 참 맑고 좋네. 그동안은 천식 때문에라도 하늘이에게는 말도 노래도 길게 시키지 않았다.
한참 지붕을 가는 데 집중하고 있던 우렁찬도 하늘이의 노래에 귀 기울였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우렁찬이 미소를 머금은 채 하늘이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여전히 선글라스를 낀 채로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긴 팔 작업복에 목 수건까지 둘렀다.
렁찬에게 햇빛 알레르기가 있다는 소리를 옥분에게 들었을 때, 서소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어떤 심리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것 같다는 말에 그녀도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지금 우렁찬은 지붕 위에 올라가 있었다. 혹시 그게 하늘이 때문일까. 서소리는 다시금 깨달았다. 지금 렁찬은 단순히 지붕을 고치는 게 아니라, 안간힘을 다해 아이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면서 용기를 내어 제 안의 어둠을 조금씩 걷어내고 있음을.
서소리의 얼굴에도 가만히 미소가 번졌다.
“어? 선생님, 오셨어요?”
“와아! 선생니임!”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 그녀의 손을 붙들었고, 이정희가 허리를 숙이며 맞이해주었다.
“안녕하세요? 좀 늦었죠?”
“아이고, 와주신 것만으로 감사하죠!”
“선생님, 댁에 안 내려가셨어요?”
“어이구, 올라오느라 힘드셨죠?”
“이쪽으로 와서 좀 쉬세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저 쉬라며 물과 의자부터 내미는 사람들.
“고맙지만, 저도 일하러 왔습니다!”
서소리는 팔을 걷어붙이고 종이에 풀을 바르기 시작했다. 옥분이 반가워하며 그 종이를 받아서 벽에 붙였고, 이정희가 스트레이트 파마를 하듯 벽지가 울지 않게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내벽을 펴고, 또 폈다. 그러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금세 또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도 못 본 척 묵묵히 벽지를 발라주었다.
“어어, 어어?”
그때였다. 렁찬이 지붕에서 발을 헛디뎠는지,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순간적으로 서소리는 우렁찬과 땅을 번갈아 보며, 마당으로 달려나갔다.
- 쿵
다행히 밑으로 떨어진 건 슬레이트 조각이었다. 렁찬이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서서 머리를 긁적이며 마당을 살폈다. 그의 선글라스가 삐뚤어져 있었다. 여기저기서 모여든 사람들이 그를 보며 괜찮은지 물었고, 렁찬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외려 서소리를 걱정했다.
“괜찮으세요, 선생님?”
그 말에, 서소리는 고개를 들어 우렁찬을 보았다. 땀에 젖은 채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서 있는 커다란 눈사람. 그녀가 조용히 되물었다.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그것이, 몸을 뜻하는 건지 마음을 뜻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거의 동시에 이렇게 대답했다.
“휴, 다행이네요.”
누군가 ‘찌찌뽕’이라고 외쳤지만, 서소리는 머쓱하게 웃으며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부엌에서 부침개를 부치는 소리와 냄새가 밀려들었다. 아이들은 이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면서 마당을 가로질렀고, 마을 이장 순덕 할머니는 막걸리와 수육, 김치를 잔뜩 담은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들어섰다.
“새참 먹고들 합시다!”
“뭘 했다고 벌써 새참이에요?”
“자고로 농사는 밥심이니까.”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그래,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지. 핸드폰이 다시 진동했지만, 서소리는 그것을 꺼내 보지 않았다. 그 대신 손에 묻은 풀 자국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오직 찢기고 터진 자리에 풀칠을 할 뿐.